엘리펀트

챕터 12: 에덴의 불길

by BumBoo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돈을 받아쳐 먹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나를 무시해.


너도 내가 우스워?


대답해 봐, 이 아비한테 버림받은 년아!”


그날따라 노도술 원장은 유난히 술에 만취한 듯했다.


밤이 깊었지만, 사택에서부터 들려오는 그의 고함소리와 함께


한수련 부원장의 비명 소리가 보육원 아이들이 자는 숙소의 얇은 벽을 뚫고 들어와 귓가를 때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부원장님의 고통에 찬 신음이 이어졌다.


심장이 마구 요동쳤다.


나는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나와 태경이만 알고 있던 비밀스러운 개구멍으로 몰래 보육원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흙냄새와 풀 냄새가 뒤섞인 차가운 겨울밤공기가 폐 속 깊이 파고들었다.


익숙한 길을 따라 사택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발아래 마른 나뭇가지가 '파사삭'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사택의 창문은 희미한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바싹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창문 안을 들여다보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믿을 수 없었다.


노 원장의 잔혹한 폭행이 계속되고 있었다.


한수련 부원장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옴짝달싹 못 하고 무기력하게 맞기만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폭행의 강도가 달랐다.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무자비함이 느껴졌다.


한 부원장님도 그걸 알아챘는지, 필사적으로 노 원장의 폭행에서 벗어나려고 저항했다.


그녀의 몸부림은 절규에 가까웠다.


노 원장의 주먹이 또다시 그녀의 얼굴을 향하는 순간, 한수련 부원장은 비틀거리며 몸을 피했다.


그녀의 눈은 공포와 함께 알 수 없는 결심으로 번뜩였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주방으로 향했다.


짧은 침묵 끝에, 이내 번뜩이는 칼날이 희미한 불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것은 분명 식칼이었다.


그녀의 손은 미세하게 떨렸지만, 칼끝은 노 원장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방어하려는 듯, 칼을 휘두르며 노 원장과의 거리를 벌리려 애썼다.


그녀의 얼굴에는 공포와 함께 일말의 저항 의지가 교차했다.


그러나 술에 취해 이성을 잃은 노 원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입가에는 비열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감히 네까짓 게!"


그의 거친 손이 칼을 든 부원장님의 손목을 낚아챘다.


짧은 실랑이 끝에, 부원장님의 손에서 칼이 힘없이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칼날이 차가운 바닥에 부딪히며 섬뜩한 소리를 냈다.


그녀의 눈빛에서 마지막 저항의 불씨마저 꺼지는 것이 보였다.


다시 무자비한 폭행이 시작됐다.


노 원장의 발길질이 부원장님의 몸을 향했고,


부원장님은 고통에 신음하다 이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나는 창 밖에서 그 모든 장면을 아무것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눈물이 뜨겁게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음속에서는 노 원장에 대한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


내 어린 주먹으로 라도 당장 달려가 저 악마 같은 자를 찢어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무력한 아이에 불과했다.


그렇게 끔찍한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노 원장은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보육원을 순찰했다.


그의 얼굴에는 밤새 벌어진 폭행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모습에 나는 더욱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더 이상 혼자서는 그 분노를 감당할 수 없었던 나는


태경이 에게 어젯밤의 사건과 내 감정을 모두 털어놓았다.


무자비한 폭행의 밤을, 그리고 나의 무력감과 분노까지.


평소 내 모든 말에 시큰둥하던 태경이가 이번에는 웬일로 관심을 가졌다.


그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했다.


그는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듣더니, 이내 차분하게 자신의 계획을 들려주었다.


태경이의 계획은 이러했다.


우선 본인이 어떻게 해서든 주변 농가에서 농약을 구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사택 내부의 출입이 자유로운 점을 이용해


노도술의 사무실 주전자에 몰래 농약을 타기로 했다.


태경이의 계획대로만 된다면 노도술을 생각보다 쉽게 죽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


나는 태경이가 구해온 농약을 몰래 노 원장의 사무실 주전자에 섞어 두었다.


농약 특유의 냄새를 숨기려 물을 가득 채웠다.


이제 노 원장이 그 물을 마시기만 하면 된다. 나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날따라 노 원장이 한참 동안 물을 마시지 않아 속이 타 들어갔다.


심장이 발소리에 맞춰 쿵쾅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노 원장이 주전자를 들어 물을 마시는 찰나,


그는 물을 조금 맛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여름이라 물이 상했나?"


그는 중얼거리며 주전자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곤 '콸콸' 소리를 내며 주전자 안의 물을 모두 버리고 말았다.


계획은 허무하게 실패로 돌아갔다.



첫 번째 계획을 실패한 우리는 다시 계획을 세웠다.


노 원장이 술에 취해서 돌아오는 날이 잦아졌고,


계획을 실행하기로 한 그날 역시 그는 술에 만취해 있었다.


우리의 계획은 이러했다.


내가 한수련 부원장에게 고민이 있다고 이야기하여 사택 밖으로 유인해 내면,


태경이 몰래 사택 안으로 들어가 노 원장이 마실 물에 농약을 타 두는 것이었다.


만취한 상태이니 농약이 섞인 물인지 모르고 벌컥벌컥 들이켤 것이고


분명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계획대로 한수련 부원장을 몰래 사택 밖으로 불러내어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의 모든 신경은 사택 안의 상황에 곤두서 있었다.


부원장님에게는 의미 없는 말들을 횡설수설하며 시간을 끌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뺨을 스쳤지만, 내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때였다.


사택 안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다.


붉은 불꽃이 창문을 뚫고 솟아오르는 것을 본 나는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태경아!"


나는 본능적으로 소리치며 헐레벌떡 사택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매캐한 연기가 폐 속을 긁어 내렸다. 눈은 따가웠고, 숨쉬기가 힘들었다.


불길 속, 희미하게 보이는 태경이는 피범벅이 된 채 손에는 피 묻은 칼이 들려 있었고,


노 원장은 피를 흘리며 바닥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의 비대한 몸은 이미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태경아! 얼른 달아나자!"


나는 태경이의 손을 잡고 필사적으로 끌어당겼다.


하지만 태경이는 내 손을 뿌리쳤다.


그의 눈은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광기에 가까운 집착이 그의 얼굴에 서려 있었다.


"옥가락지를 챙겨가야 해! 너 먼저 나가!"


그는 외치며 다시 보육원 건물로 향했다.


나는 더 이상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이미 사택 전체가 불길에 휩싸여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로웠다.


뜨거운 열기가 피부를 태울 듯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사택을 빠져나왔다.


어느새 불길은 사택을 넘어 보육원 건물까지 번지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붉은 불꽃이 춤을 추는 것이 보였다.


보육원 앞에서 초조하게 태경이를 기다리던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보육원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낡은 보육원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원생들이 밤에 야반도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밖에서 쇠사슬과 자물쇠로 잠겨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문을 흔들었다.


쇠사슬이 '찰그랑' 소리를 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안에서부터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불이야! 살려줘!" "엄마!"


절규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찢는 듯했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붉은 불길이 보육원 건물을 집어삼키고, 아이들의 비명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그 끔찍한 광경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몸은 돌처럼 굳어버렸다.


불길이 내 얼굴을 태울 듯 뜨거웠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결국, 겁에 질린 나는 불타는 보육원 건물을 뒤로한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지만, 나는 그 소리를 외면한 채 필사적으로 달렸다.


폐 속에서는 매캐한 연기가 타 들어가는 듯했고, 다리는 끊어질 듯 아팠다.


그날 밤의 지옥 같은 풍경은 평생 내 뇌리에 깊이 박혔다.


잿더미가 된 보육원, 그리고 그 속에서 사라져 간 아이들의 비명은


영원히 나를 따라다닐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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