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5: 숨겨진 유물
기철이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마치 해부용 칼날처럼 내 속을 꿰뚫는 듯했다.
"코끼리 바위. 그곳의 위치와 거기에 숨겨진 물건들에 대해 말해."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압력은 쇠사슬처럼 나를 조여왔다.
나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태경이나 너를 만나기 전까지 '꿩사냥'이니 '코끼리 바위'니 하는 건 까맣게 잊고 살았어.
너무 오래전 일이기도 하고 이상한 약에 취한 상태에서 끌려 다녔던 곳이라 기억도 잘 나지 않고."
내 말에 기철이는 코웃음을 쳤다.
그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스쳤다.
그 미소에는 깊은 불신과 함께, 마치 내가 그의 지독한 불행의 원인이라도 되는 양,
알 수 없는 혐오감이 담겨 있었다.
"거짓말 마. 너처럼 교활한 놈이 그곳을 잊을 리 없어.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거다."
그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그의 눈은 나를 더욱 집요하게 응시했고,
그의 입은 코끼리 바위의 정확한 위치와 그곳에 숨겨진 '물건'들의 정체에 대해 끈질기게 추궁했다.
나는 침을 한번 삼켰다.
"일단… 이 밧줄부터 풀어주면 이야기하겠어."
나는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기철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위치부터 말하면 풀어주지. 네놈이 먼저 신뢰를 보여야 할 차례 아닌가?"
그의 말은 논리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상황에서 내가 가진 유일한 패가 정보임을 알고 있었다.
내가 망설이는 것을 본 기철이는 어디선가 날카로운 유리 조각 하나를 꺼내 들었다.
'쨍그랑'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희미한 불빛 아래, 유리 조각의 날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그는 자신의 오른 손등을 내밀었다.
태경이가 남긴 흉측한 상처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네 놈에게도 이런 예쁜 흉터를 새겨줄까? 어때, 마음에 들 것 같지?"
그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조롱이 섞여 있었다.
나는 유리 조각의 날카로운 끝이 내 피부를 스치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그 상상은 내 안의 무언가를 일깨웠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런 걸로 날 겁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어릴 때 내 별명이 뭔지 알지? 도꾸.
근데 보육원에 몇몇은 나를 성까지 붙여 '깡다구'라고도 불렀어. 기억나?"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기철이의 반응을 살폈다.
그의 눈빛에 아주 미세한 흔들림이 스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뇌리에도 어렴풋이 과거의 '깡다구'라는 별명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왜 깡다구였는지 기억 안 나?
보육원 꼬맹이들이 동네 불량배들한테 고아 새끼라고 놀림당하고
피떡이 되도록 맞고 온 날 말이야."
기철이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시선을 피하려 했지만, 나는 그의 눈을 놓아주지 않았다.
"다들 무서워서 피해 다녔지만, 난 아니었어.
꼬맹이들 복수를 한답시고, 덩치가 두 배나 되는 녀석들에게 찾아갔지.
'사과해!' 내가 뱉은 말은 딱 이 한마디였어.
그리고… 나 역시 피떡이 되도록 맞았지."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날의 통증이 다시금 온몸을 휘감는 듯했다.
"주먹과 발길질이 비 오듯 쏟아졌어. 피가 터지고, 뼈가 부서지는 것 같았어.
눈앞이 깜깜해지고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난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어.
'사과해!' 그 한마디만 되뇌었지. 네놈도 그때 거기 있었잖아?
무서워서 모른 척했지?
정작 꼬맹이들을 때린 녀석들보다 네놈이 더 원망스러웠어."
기철이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그의 눈은 흔들렸고, 입술은 굳게 다물렸다.
"마침 지나가던 마을 주민이 말리지 않았다면, 아마 그때 맞아서 죽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녀석들에게 겁먹거나 피하지 않았어.
그게 '깡다구'야.
난 말이야, 하기 싫은 일은 때려죽여도 하지 않아.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거든.
무력으로? 협박? 그런 건 나한테 통하지 않아.
네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점에서는 나를 잘못 봤어."
기철이는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듯한 묘한 표정이었다.
그는 유리 조각을 거두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의 어깨에서 미세한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무력으로 나를 협박해 봐야 효과가 없음을 직감한 듯했다.
그는 유리 조각을 거두고는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한수련 부원장의 행방이 궁금하지 않나?"
그의 말은 마치 마법처럼 내 모든 방어기제를 무너뜨렸다.
그동안의 긴장감이 한순간 눈 녹듯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한 부원장님… 살아계신 거야? 어디 가면 만날 수 있어?"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
기철이는 나의 흔들리는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승기를 잡았다는 듯한 냉정한 미소였다.
"코끼리 바위의 위치가 먼저다."
그는 단호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내가 코끼리 바위의 위치를 기억해 낼 수 있을까.
그러나 한수련 부원장님의 행방을 알 수 있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부원장님의 행방을 알려준다면…
코끼리 바위를 찾는 데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어."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기철이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코끼리 바위에 숨겨진 물건의 정체는 무엇이지?"
나는 망설이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
"아마… 경주의 고분에서 도굴된 신라시대 유물일 거야."
내 말이 끝나자마자, 기철이의 눈에서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탐욕스러운 광채라기보다는, 마치 오래된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는 듯한 냉철한 빛이 번뜩였다.
그의 얼굴에 드러난 것은 흥분 이라기보다, 목적 달성에 대한 강한 집착이었다.
"혹시… 네놈이 이미 혼자서 그 유물들을 다른 곳에 빼돌린 건 아니겠지?
내가 찾아갔을 때 남은 물건이 아무것도 없다면?"
기철이는 계속해서 나를 추궁했다.
그의 의심은 끝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맹세코 그런 일은 없어.”
나는 거듭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기철이는 여전히 나를 못 미더워하는 눈치였다.
그는 팔짱을 끼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네 놈 말을 어떻게 믿지?”
나는 피식 웃었다.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이미 내가 사는 집도 알고, 근무하고 있는 학교도 알잖아?
만약 내가 거짓말을 하거나 코끼리 바위를 찾는 일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지금처럼 나를 다시 잡아 와. 도망치지 않을 테니."
내 말에 기철이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의 표정에서 설득당했다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일부터 나와 코끼리 바위를 찾아 나서자."
그의 말과 함께 밧줄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몸은 쑤시고 아팠지만,
한수련 부원장님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이 고통을 잊게 했다.
동시에 기철이와의 위험한 동행이 시작된다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코끼리 바위에 숨겨진 유물, 그리고 그 유물을 둘러싼 과거의 비밀들이
이제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낼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