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펀트

챕터 6 : 옥가락지의 대가

by BumBoo

저 멀리, 아침 안갯속에 뿌옇게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태경이었다.


놀란 마음에 그에게 달려가 손목을 낚아챘다.


차가운 새벽 공기 속에서 그의 팔은 뼈대만 느껴질 정도로 가늘었다.


“야, 여기서 뭐 해. 도망가다 잡히면 이번에는 매 타작으로 안 끝나.”


“도망? 내가 도망을 왜 가? 그냥 아침 공기 쐬면서 생각 좀 하려고 나온 거야.


잠깐 나 혼자 생각 좀 정리하게 놔둬 줄래?”


태경이는 내 손을 뿌리치며 차갑게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새벽의 차가운 이슬처럼 감정 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머쓱해진 나는


“어… 그래. 방해해서 미안.”


하고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의 침상을 보았다.


이불과 베개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래, 도망갈 놈이 저렇게 침구를 정리하고 갈 리가 없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잠자리에 누워 기상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이제 모든 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나의 이 바람은 채 한 시간이 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났다.


모두 등교 준비로 분주하던 참이었다.


낡은 보육원 방 안은 아이들의 부산스러운 움직임과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그때, 태경이의 목소리가 그 모든 소음을 뚫고 낮게 울려 퍼졌다.


“내 옥가락지 돌려줘.”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강철 같은 결의가 담겨 있었다.


태경이는 기철이의 침상 앞에 서 있었다.


“이 새끼가 아직 덜 맞았나. 이상한 놈인 건 진작 알았다만 알고 보니 미친놈이구만, 이거.”


기철이는 코웃음을 쳤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그때의 굴욕감과 함께 짜증이 가득했다.


“기철아, 네가 상대할 거 없어. 우리가 처리할게.”


기철이 무리들 중 하나가 우쭐대며 나섰다.


그들의 눈에는 새로운 폭력을 향한 기대감이 번뜩였다.


“야, 씨발 너희가 제대로 안 하니까 이 새끼가 또 이러는 거 아냐?


이번에는 내가 다시는 못 기어오르게 손 봐주마.


뒈졌다는 네 어미를 보고 싶은가 보구나.”


기철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비수처럼 날카로웠다.


태경이의 얼굴에 아주 미세한 경련이 스쳤다.


그 순간, 기철이가 어슬렁어슬렁 태경이 에게 다가가던 그 순간,


태경이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기철이의 발을 내리찍었다.


“으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방 안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핏물이 튀었다.


태경이의 손에는 깨진 유리병 조각이 들려 있었고,


바닥에는 태경이의 손에서 난 피인지 아니면 기철이의 발에서 난 피인지 모를 핏물이 흥건했다.


유리 조각은 마치 그의 손에 착 달라붙은 무기처럼 보였다.


“어느 새끼던 나서기만 해. 내가 이 걸로 눈깔을 후벼 파 버릴 테니까.”


태경이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그의 눈은 마치 짐승처럼 번뜩였다.


그 뒤로 기철이가 발을 부여잡고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쉽사리 태경이 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의 눈빛은 주변의 모든 움직임을 꿰뚫어 보는 듯했고,


그의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아무도 나서지 못하도록 제압한 태경이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기철이 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기철이의 오른손을 발로 밟고는,


유리 조각으로 그 손을 내리찍었다.


'찍' 하는 소리와 함께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크-아-악!! 씨-발- 그만해!!”


다시 한번 기철이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의 비명은 고통과 함께 절망을 담고 있었다.


태연한 표정의 태경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내 옥가락지 어디 있어?”


이 사건으로 태경이는 노 원장에게 또 한 번 정신을 놓을 정도로 심하게 맞은 것은 물론,


학교도 가지 못하고 2주간 독방에서 지내야 했다.


그의 얼굴은 멍으로 뒤덮여 있었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단단했다.


이제 아무도 태경이 에게 함부로 하지 못했고,


더불어 나와 용주 형에게도 함부로 하지 않게 되었다.


태경이는 보육원의 서열을 단숨에 뒤바꿔 놓은 존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