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5 : 불길 속의 진실
“어… 그래, 반갑다. 잘 지냈냐?”
내 목소리는 내 것이 아닌 듯 낯설었다.
네가 어떻게 이 자리에 앉아있느냐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지만,
얼떨결에 마음에도 없는 인사가 튀어나왔다.
현실감이 희박한 순간이었다.
“시간 많으니까 서로 살아왔던 이야기는 차차하고, 일단 앉자. 근데 일식 좋아하냐?”
태경이는 능숙하게 종업원을 불러 술과 음식을 주문했다.
잠시 동안의 비현실적이던 순간이 지나고, 차츰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따뜻한 사케가 목을 타고 넘어갔지만, 내 안의 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근데, 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니, 그 불구덩이에서 어떻게 살아 나온 거야?
나는 네가 죽은 줄만 알았어.”
태경이는 질문에 대답 대신 싱긋 웃었다.
그 웃음은 어딘가 모르게 차가웠다.
“야, 이야기하자면 길다. 천천히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해 줄게.
오늘 내 이야기 다 들으려면 아마 밤을 새야 할 거다.
자, 일단 여기 내 명함.”
그는 검은색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검은색 바탕에 금색 글씨로 선명하게 새겨진 이름과 직함.
『㈜ 에덴 설루션 CEO 유택영』
나는 명함을 든 손을 들어 올렸다.
“유택영? 너 유태경 아니었어?”
내 질문에 태경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피식 웃었다.
“에덴을 나온 후에 이리저리 다른 보육원을 옮겨 다니다가,
어디서 잘못 적었는지 태경이 택영으로 바뀌어 버렸어. 웃기지?”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태경이는 연신 호탕하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왠지 모르게 공허하게 들렸다.
그 오래전 내가 알던 조용하고 말수 없던 태경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의 세련된 옷차림, 딱 벌어진 어깨, 그리고 여유로운 미소는
내가 알던 에덴의 유태경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찾았니? 쉽지 않았을 텐데.”
그의 능력이 궁금했다.
동시에 나를 찾아냈다는 사실이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그러게. 너는 아예 성도 이름도 다 바꾸고, 에덴에서의 흔적도 다 지우고 살고 있더구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어. 4학년 3반 한준호 선생님.”
등골이 오싹했다. 그는 내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내가 벗어나려 했던 과거의 그림자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 같았다.
“아직 내 질문에 대답을 안 했잖아? 대체 나를 어떻게 찾은 거야?”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냐?
흥신소에 가서 강덕구라는 이름, 나이, 우리가 에덴을 나왔던 시기 같은 거 이야기해 주니까 금방 찾아주던데.
원래 흔적이란 게 지우고 싶다고 쉽게 막 지워지고 그런 게 아니거든.”
그의 목소리에는 묘한 비아냥거림이 섞여 있었다.
과거의 흔적을 쉽게 지울 수 없다는 태경이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내 평범한 삶이 그의 한마디에 송두리째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구나. 아무튼 다시 만나니까 반갑다.”
나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나의 표정은 이미 굳어 있었다.
“에-이, 표정은 전혀 반갑지가 않은데. 너는 에덴에서 있었던 일을 다 잊고 싶었나 보네.
개명까지 한 걸 보니.”
그의 날카로운 지적에 나는 움찔했다.
“당연하지. 지옥 같은 기억들이었으니까.”
“한수련 부원장에 대한 기억도?”
그 질문에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부원장님에 대한 기억만은 지옥 같은 시간 속에서도 유일한 빛이었다.
그녀의 따뜻한 손길, 인자한 미소는 나의 유년 시절을 지탱해 준 유일한 온기였다.
“아니, 그건…”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튼 반갑지 않더라도 반가운 척 좀 해줘라. 30년 만인데.”
태경이의 말에 나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가면처럼 어색했다.
술이 몇 잔 들어가고 나니 그 지옥 같던 에덴에서의 시간들이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심지어 아름다운 추억이라도 된 것처럼 포장되었다.
알코올이 기억을 미화시키는 마법이라도 부린 듯했다.
씁쓸한 기분이었다.
“야, 너 용주 형 기억나지? 그 형이 어리숙 하기는 해도 우리 많이 감싸줬는데.
우리 대신 매를 맞아준 적도 많았지.”
“용주 형 보고 싶네. 용주 형도 너처럼 어딘가에 살아 있으면 좋으련만.”
“흥신소에 용주 형도 한번 찾아봐 달라고 의뢰해 볼까? 그 형 성이 조 씨였지?”
태경이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주 형이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참, 그나저나 너는 그날 어떻게 살아 나온 거야?”
나는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태경이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스쳤다.
그의 눈빛은 순간 아득한 과거를 응시하는 듯했다.
“말도 마라. 옥가락지를 찾으러 다시 보육원 건물로 들어갔을 때,
불길은 이미 사방을 집어삼키고 있었어.
매캐한 연기가 폐 속 깊이 파고들어 숨쉬기가 고통스러웠지.
사방은 온통 붉은 불꽃과 검은 연기로 뒤덮여 앞을 분간하기 힘들었어.
이대로 있다가는 나도 불길에 갇혀 죽겠더라고.
필사적으로 옥가락지를 찾아 품에 넣는 순간, 정신이 아득 해졌어.
사방이 붉은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하는 듯했지.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어.
아득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순간 누군가 나를 강하게 끌어안는 힘이 느껴졌어.
희미하게 열린 문틈 사이로, 거대한 불길이 춤추는 바깥세상이 보였지.
내 몸이 불길 밖으로 끌려나가는 듯했어.
흐릿한 시야 속에서, 나를 안고 있는 그 사람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어.
그게 누구였는지 상상도 못 할 거야.”
나는 숨을 죽였다.
“누구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