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7: 숨겨진 진실
"한수련.”
그 이름이 귓속에 박히는 순간, 뇌리를 강타하는 차가운 파도가 밀려왔다.
술기운이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정신이 또렷해졌다.
“부원장님이… 부원장님이 널 구해줬다는 말이야?
그래서 부원장님은? 같이 살아서 나온 거야?”
내 목소리는 다급함에 갈라져 나왔다.
태경이는 내 질문에 대답 대신 싱긋 웃었다.
그의 눈빛은 아득한 과거를 응시하는 듯했다.
“나를 구하고 난 뒤… 부원장님은 다른 아이들을 구하러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셨어.”
태경이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안에 묘한 슬픔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래서 부원장님은 어떻게 됐냐고? 살아 계신 거냐고!”
나는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날 밤의 비명 소리, 무너져 내리는 보육원 건물의 모습이 다시 눈앞에 아른거렸다.
“밖으로 나온 뒤 정신을 잃어서 나도 잘 몰라.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고, 회복한 뒤에는 다른 보육원으로 보내졌거든.”
태경이는 풀이 죽은 듯 대답했다.
그의 표정은 마치 깊은 상처를 간직한 아이처럼 보였다.
“그랬구나…”
나는 더 이상 캐물을 수 없었다.
그의 이야기가 진실 이기를 바랐지만, 동시에 어딘가 비어 있는 퍼즐 조각처럼 느껴졌다.
“야, 우울한 이야기는 이쯤 하고 이제 네 이야기 좀 해봐. 자!”
태경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활기찬 목소리로 잔을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까의 우울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잔을 부딪치며, 한수련 부원장님이 살아 있다면 꼭 한번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만으로도 메마른 마음에 희미한 온기가 돌았다.
그렇게 잔을 기울이며 보육원에서의 서로의 기억 조각들로 퍼즐 맞추기 놀이를 하다 보니,
어느새 둘 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것 같았다.
태경이는 혀가 반쯤 꼬부라져서 하는 말의 반은 알아듣기 힘들 정도였다.
그의 몸은 비틀거렸고, 눈은 풀려 있었다.
나 역시 더 이상 속에서 술을 받아주지 못하는지 구토가 올라올 것 같았다.
밖에서는 종업원들이 마감 준비를 하는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접시 부딪히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여기 문 닫는 모양이야. 이제 그만 일어날까? 여긴 내가 낼 게.”
“무슨 소리야, 초등학교 선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내가 보자고 했는데 내가 내야지.”
태경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거의 바닥에 고꾸라질 뻔했다.
그의 몸은 휘청거렸고, 나는 그를 부축했다.
그렇게 일식집을 나와 가게 앞에 나란히 섰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 속으로 파고들자 술기운이 조금 가시는 듯했다.
‘못 본 사이에 태경이는 키도 덩치도 많이 컸구나.’
앉아 있을 때는 몰랐는데, 그는 나보다 키가 한 뼘은 더 큰 것 같았다.
그의 어깨는 단단했고, 손은 거칠었다.
더 이상 보육원에서 나와 도토리 키 재기를 하던 꼬마가 아니란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의 옆에 서 있는 나는 왠지 모르게 작아 보였다.
“태경아, 오늘 진심으로 반가웠다. 이제 자주 연락하고 지내자. 혹시 차 가져왔어?”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2차 가야지, 2차.”
방금 까지 몸도 제대로 못 가누던 태경이는 바깥공기를 쐬더니 술이 조금 깬 듯 보였다.
“시간도 늦었고, 오랜만에 마셔서 그런지 속이 안 좋네. 오늘만 날이냐? 이제 서로 연락처도 아니까 조만간 또 보자.”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아쉽네. 그럼 다음에는 날 밝을 때까지 마시는 거다. 알았지?”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아쉬움이 가득했다.
“오냐, 다음에는 술 덜 취하는 약이라도 챙겨 먹고 오마.
너 차 가지고 왔니? 나는 대리 불러야겠다.”
“아니, 나는 술 마시는 날에는 차 안 가지고 다녀.
나는 요 앞에서 바로 택시 타면 되니까 대리 올 때까지 같이 기다려 줄게.”
“아냐, 피곤할 텐데 먼저 들어가. 번화가라 대리 부르면 금방 올 거야.”
“괜찮아, 인마. 혼자 기다리기 심심할 텐데 같이 있어 줄게.”
나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고맙다, 태경아. 너야말로 못 본 사이 모습도 성격도 많이 변한 것 같네.
원래 이렇게 배려심 있는 캐릭터였냐?”
내 말에 그는 피식 웃었다.
“보육원 생활할 때는 내가 좀 이기적이긴 했지. 미안.”
“뭘 또 미안하기까지. 아무튼 이렇게 오랜만에 보니까 좋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태경이는 문득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했다.
“근데, 덕구야.”
그의 목소리가 문득 낮아졌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 던지는 말이었다.
“너 혹시… 노도술이랑 매달 어디를 그렇게 간 거야?”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너 매달 꼭 한 번씩 노도술 원장 차 타고 몇 시간씩 어디 다녀오곤 했잖아.
거기 다녀온 날이면 어디 다녀왔냐고 물어도 대답도 안 하고 내리 잠만 자고.”
♬-♬-♬
나는 주머니 속에서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도 무시한 채,
호기심 어린 태경이의 얼굴을 차분히 바라보았다.
그 질문은 마치 잊고 있던 퍼즐 조각처럼,
내 기억의 깊은 곳을 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