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에게
J에게
공부하기에 적절한 나이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요즘이에요. 예전처럼 영어 단어가 안 외워지더라 하는 그런 문제도 없는 건 아니지만, 공부만 하는 게 그렇게 지겨웠던 그 시절만큼 공부만 할 수 있는 때도 없다는 걸 이젠 알아버린 탓이에요. 뒤늦게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는 지금, 공부 말고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어쩜 그리도 많은지요. 강의를 듣고, 공부하고, 과제를 해야 하는 그 와중에도 난 돈을 벌어야 하고, 집안일은 쌓여있네요.
세 시간 전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아직도 공부는 손도 못 대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에요. 공부가 하고 싶어 죽겠는데 못하는 상황이라니. 그 어렸던 학생 땐 상상도 못 할 일이라구요. 밥을 차려 먹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지쳐 늘어져 있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새벽이에요. 전 도대체 언제 공부하고 언제 잘 수 있을까요. 오늘도 밤이 길겠어요.
무엇이든 제 나이에 맞는 일에 집중한다는 것은 엄청난 시너지를 내는 것 같아요. 흔히 그런 이야기들 하잖아요. 정해진 때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의 때는 모두 다르다. 저 역시 그 말에 동의하고, 붙든 채로 여지껏 달려왔지만 어쩌면 그 ‘때’라는 것은 약간의 차이를 둘 뿐,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자신의 때를 알고, 때에 맞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어도 빛이 난다는 걸 느껴요. 나에게는 또 다른 결의 빛이 일렁이고 있겠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빛과는 다르겠죠. 그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조금은 서글퍼지지만 지나간 일에 후회하고 있기엔 제가 너무 바쁘니까요. 저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수밖에요.
쉴 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긴 하지만, 선생님, 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제 삶을 온전히 살아가고 있어요. 몸은 지쳐도 그 사실 하나가 저를 이렇게 또 달리게 만들어요. 공부도 제 꿈에서부터 시작되어 제 미래로 이어져 있는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일도, 집안일도. 모두가 결국 제 삶의 일부니까요. 이런 일상도 제 삶에 집중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만족해요. 제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살고 있어요, 저는. 앞으로도 열심히 달려볼게요. 늘 감사해요,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