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쉼표를 선물 받다
지난 며칠 간은 모처럼의 늦잠을 잤다. 이렇게 늘어지도록 원없이 푹 잔 게 얼마만인지 모른다. 언제부턴가 하고싶은 일보다는 해야하는 일이 더 많아지면서, 나는 내 인생에서 후순위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포기해 나갔다. 사람들은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는 삶을 살겠다며 일찍 일어나고 부지런하게 사는 삶을 하나의 도전 과제로 삼던데, 나는 왜 늦잠을 자는 일이 감히 삶에 도전하는 일이 되어버렸을까.
친한 동생이 놀러오고, 동생이 불편하지 않게 몇 년간 꺼질 틈이 없었던 알람을 모두 껐다. 조금 미뤄도 되는 일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잠시 삶의 속도를 늦추었다. 그렇게 며칠 원없이 놀고 자다보니 이게 얼마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것도 무작정 시도하는 나의 소소한 시도라면 시도랄 수 있겠다. 자는 것도 나중에, 노는 것도 나중에. 나는 삶의 낙이랄 것들을 참 많이 포기해왔구나.
동생이 떠나고 나면 다시 나는 바쁘게 달려 나가야할 테다. 조금은 숨 막히고 서글픈 현실이지만, 해야하는 일은 말 그대로 해야하는 일이니까 나의 선택에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나를 나답게 만드는 사람에 대하여 조금 생각해보게 한다. 해야하는 일을 우선으로 두고 사는 삶은 나에게 언제나 적절한 '페르소나'를 요구한다.
'페르소나'란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가면을 의미하는 말로, 심리학적으로는 심리적, 사회적으로 우리에게 요구하는 가면을 의미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엄마로, 직장에서는 어떤 직위의 한 사람으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쓰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것들은 모두 나의 일부이지만 진실된 나 자신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보니 조금은 지치는 것이 아닐까. 가면을 오래 쓰고 있다보면 가면 속에서 조금은 숨이 차듯이.
해야하는 일로 가득찬 삶 속에서 하고 싶은 일들은 늘어나기만 하던 어느 날. 잠시 해야하는 일을 미뤄두고 후순위에만 머물러 있던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사는 시간은 가면 밖의 상쾌한 바람을 내게 선사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감히 내게 시도하게 하는 데에는 또다시 '사람'이 존재한다. 언제나 사람과 인연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사는 나지만 오늘따라 크게 와닿는다. 똑같이 좋은 사람과 함께하면서도 나를 나답게 만드는 사람은 흔치 않은 법이라서, 지금 나와 함께하고 있는 상대에게 참 많이 감사하게 된다.
서슴없이 '야, 우리 이거 하러가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걸 망설임없이 같이 하러 가주는 인연은 귀하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수많은 인연 중에 과연 몇이나 될까. 그렇게 나는 몇 년간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늦잠을 자고 일어나,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 다녀와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수다를 떤다. 그리고 오늘의 시간은 나를 다시 달려나가게 할 원동력이 될 테다.
그 원동력을 바탕으로 달려나가던 어느 날에는 내가 누군가에게 귀한 쉼을 선사할수 있는 사람이 될 수있을까 꿈꾼다. 나의 부지런함이 누군가의 마음에 쉼표로 남을 수 있기를. 내가 달려나가기 시작한 그 이유를 잊지는 말아야 겠지. 그렇게 나는 나의 마음에 새겨진 쉼표 하나를 조심스럽게 움켜 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