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는 P처럼, 수습은 J처럼

무작정 시작하기

by 홍연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어쩜 질리지도 않게 다양할 수가 있는지, 무언가를 하는 자체보다 하기 위해 신청하는 과정이 더 길어질 때가 많을 정도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대단하다 추켜세우기도 하고, 그러다 쓰러지는 거 아니냐며 걱정을 해주기도 하는 모습을 보며 '아 지금 내가 잘하고 있구나'하며 현재 내 모습을 가늠하기도 한다. 남들에게는 도태된 모습으로 비치기 보다는 열정적으로 보이는 편이 나을 테니까.



아무리 함께 지내는 이들처럼 젊은 척하며 지내도, 이젠 나도 어쩔 수 없는 30대인지라 자꾸만 현실의 문제에 부딪히는 순간들도 존재한다. 이를테면 건강 문제라던가, 돈 문제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때문에, 여전히 세상은 재미있고 할 일이 넘쳐 나지만, 언젠가부터는 포기해야하는 순간들이 늘어난다. 후순위에서부터 천천히 앞으로 앞으로.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순순히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머리라도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띵하게 아찔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새로운 것을 더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일만큼은 포기할 수가 없어서 나는 잠시 눈 감아버린 채 일을 늘려간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순간만큼은 남아있는 내 체력이라던가 시간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잠시 잊어버리고야 만다.



언젠가 내 MBTI를 들은 친구가 있었다. 나는 대부분의 성향이 극단적이지 않고 중간 어느 지점에 위치한 편이라 필요한 상황에 따라 내 성향도 바뀌는 사람이었다. 즉흥적인지(P) 계획적인지(J)에 대한 부분역시 마찬가지 였는데, 늘 보이는 족족 고민할 겨를도 없이 지르고야 말더니 그걸 또 기어코 해내는 나를 보며 그러더라.



'일 벌리는 거 보면 P인데, 수습할 때는 정말 J처럼 살아'



정확한 표현이었다. 늘 시작은 무작정 시작했지만, 그 모든 것들을 수행해내기 위해서는 빈틈없는 계획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늘 나의 일정표는 빌 틈이 없었다. 그런 일상이 지치는 순간들도 존재했음은 부정할 수 없지만, 어느 순간 뒤돌아 본 나의 모습이 또 한걸음 성장해있음을 느낄 때의 그 희열을 나는 포기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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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다시 벽에 부딪혔다. 이미 제법 오래 지쳐있던 터라 무작정 시도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이리저리 나의 빈 시간과 체력을 찾아보며 가능성이라도 점쳐보고자 했지만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더는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 내 코 앞까지 다가서 있었다. 내내 아쉬워하며 또 한가지 포기했고, 나느 그것을 오랫동안 후회하리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눈 질끈 감고 신청 기한이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문자 알림이 왔다. 이미 지났어야할 기한이 연장되어 마음을 흔들었다. 정말 더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시간이 지나 지금의 포기들을 과연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도전들을 무작정 시작해왔고, 잘 해내왔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끝으로.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나의 남은 생은 남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다고 다짐하고 시작했으니, 나태해지지 말아야겠지. 그렇게 오늘 나는 보건의료통합봉사회의 본부원 지원서를 써내려간다. 나의 무모한 시도들을 미래의 나는 이해해주겠지. 그리고 결국은 또 해내겠지. 나를 다시 한번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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