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본(Spinning Globe)-요네즈 켄시'
무척 오랜만에 꺼내보는 음악 리뷰에서도 내가 가져온 음악이 다시 일본 음악인 건 우연일까. 평소에 굳이 일본음악만을 듣는 것도 아닌데, 유난히 와닿는 의미를 가진 가사는 일본 노래를 듣다가 자주 발견하곤 한다. 어쩌면 번역의 힘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일본 음악은 언제나 나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준다. 감정을 잔잔하게 흔들며, 생각지도 못했던 철학적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데, '지구본'도 그런 노래 중 하나였다.
요네즈 켄시의 '지구본'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작품이었던 애니메이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처음 들었다. 가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 여운이 크게 남거나 엔딩곡이 좋을 때면 곧장 자리를 떠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스크린을 바라볼 때가 있다. '지구본'이 내겐 그랬다. 애니메이션 자체가 가진 상징성과 심오함의 철학 역시도 많은 생각을 하게끔 했는데, 이어지는 엔딩곡이 마치 그 철학에 멜로디를 붙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많이 갈렸던 기억이 난다. 기존 지브리 특유의 상업적 영화를 기대하고 간 사람들은 추상적인 내용과 상징적인 소재들 탓에 해석이 어려워 난색을 표했으나, 일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생을 상징하는 이야기들에 감명을 받는 모습이었다. 나는 후자였다.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느껴졌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그가 성장하던 시기를 관통하고 있었던 시대적 소재인 전쟁, 그리고 세계의 균형과 불균형에 대한 이야기, 선과 악에 대한 철학적 고찰들이 진하게 묻어났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시간 속의 그것들을 전부 늘어놓은 그는 우리에게 그저 묻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나의 생은 이러했다네. 나의 이야기를 들은 그대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고 말이다.
자, 다시 노래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 영화의 엔딩곡이었던 요네지 켄시의 '지구본'은 청소년의 성장과 인생에 대한 고민을 다루는 영화의 주제 캐릭터들의 여정을 가사에 담긴 메세지로 강화하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영화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생을 상징하는 이야기였다면, 지구본은 인간의 생을 관통하는 철학적 의미를 담아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래 글에는 일부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구본'과 영화의 상징성
지구본은 영화의 주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지구본은 세계의 형태를 나타내는 도구이지만 이 노래에서는 단순히 물리적 도구가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과 인생의 복잡한 구조를 상징하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끊임없이 나아가고, 자신만의 이정표를 가지고 삶을 이어나가는 존재이다. 노래에서 '이 목적지의 끝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어' 라던가 '만족하지 말고 계속 그려가, 지구본을 돌리는 것처럼'라고 말하 듯이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는 늘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때로 그 미지를 향해 도전해야 하는 순간들을 직면하기도 하는데, 영화에서 주인공 마호토는 현실의 슬픔과 갈등을 넘어 상상과 모험의 세계로 들어가는 선택을 한다. 사람마다 선택은 다를 수 있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탐구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미지를 향해 나아가기로 선택한 이, 마호토는 익숙한 일상을 떠나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며, 자신의 내면과 외부의 세계를 진리를 발견하고자 노력한다. 이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묻는 영화의 철학적 질문과도 맞닿아 있는 모습이다.
'지구본'의 제목과 가사는 영화의 핵심 질문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은유적 답변을 전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인생을 하나의 여정으로 비유하는데, 우리가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선택해 나아가느냐에 따라 도달하는 곳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 그렇게 각자의 선택과 행동이 세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를 묻고 있는데, 우리가 세상에 미칠 영향력을 생각하면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 역시도 보다 선명해짐을 알 수 있다.
요네즈 켄시는 노래 속에서 '지구는 멈추지 않고 돌고 있어'라고 말한다. 삶은 결국 이어진다. 삶은 고난 속에서도 계속되고, 우리는 그러한 삶을 살아나간다. 싫든 좋든 결국 이어질 생임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각자의 선택이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졌다는 영화의 메세지와 동일한 맥락 아래에 있다. 요네즈 켄시의 부드럽고도 단호한 목소리는 가사의 메시지와 조화를 이루며, 마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듯 우리에게 말을 건다.
관계와 연결, 그리고 삶의 지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이어져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데, '지구본'의 가사에는 우리가 서로의 세계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한다는 메세지가 담겨있다. '우리는 서로의 작은 세계가 되어준다'라며 서로의 영향력에 대해 전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다. 영화 속에서 마호토가 다양한 인물들과 상호작용하며 삶의 지혜를 배우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성을 찾아나가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언제나 균형을 맞추고자 한다. 그걸 업보라던가 덕이라던가, 카르마, 천벌 등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부르지만, 결국 가리키고자 하는 것은같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고 알게 모르게 어떠한 영향력을 전하고 있음이다. 그리고 기울어진 추를 바로 잡기 위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언제나 무언가를 되돌려준다. 그게 덕이든 벌이든.
때로는 새로운 관점과 배움을 전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기도 하고 말이다. 예를 들자면 영화 속에서 마호토는 나아간 상상 속의 세계에서 고모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마호토는 고모로부터 도움을 받고, 그리고 이별하고, 상상의 새를 만나는 등의 과정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받는다. 결국 사람의 인연은 그렇다고 한다. 서로가 서로를 만나는 것은 무언가를 전하기 위함이라고. 우리는 전해받는 무언가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며 삶을 살아나간다.
희망과 상상력의 재발견
가사에는 긍정적인 가사가 많다. 그 중에서도 '문을 지금 열어젖히라는 가사의 내용 '어디에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영화가 가진 상상력의 힘과 맞닿아 있다. 우리의 생에는 굴곡이 존재한다. 그 굴곡 안에서 슬퍼하기도, 좌절하기도 하나 내리막이 있다면 오르막도 존재하듯 극복의 과정이 있다. '빛이 비추는 꿈'을 꾸며 우리는 여러 고난을 거쳐 끝내 도달하고자 하는 각자의 꿈을 꾼다.
영화의 마호토가 상상의 세계를 여행하며 현실에서 느꼈던 슬픔과 혼란을 극복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마호토는 상상의 세계에서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간다. 이러한 모습은 희망적 메세지를 전하고자 하는 '지구본'의 가사와 연결된다. 영화는 상상의 세계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마주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결국 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희망과 회복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상상의 세계란 결국 본인이 만들어 낸 허구의 세계. 사람에게는 자신의 문제를 극복하고 해결해낼 힘이 내면에 존재한다. 본인이 알고 있던 모르고 있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스스로의 힘은 결국 우리가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에 필요한 힘을 전하는 동시에 어려움을 극복할 중요한 열쇠가 된다. 내가 상담을 진행하면서 자주 되새기는 내용 중 하나이다. 나는 상대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 주는 이가 아니라, 스스로가 가진 열쇠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존재라는 것. 모든 문제의 열쇠는 본인에게 있다. 그것을 해결할 힘 역시도 본인 안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잘 모를 뿐.
요네즈 켄시의 '지구본'은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철학적 주제를 음악으로 강화하며,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감정적인 깊이를 더하고 있다. 가사가 내포하는 희망과 가능성은 마호토의 여정과 연결되며, 관객에게 삶의 의미와 방향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결국 이 노래는 단순한 OST를 넘어 영화의 핵심 메시지와 조화를 이루며, 감정적으로나 서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어쩌면 그 날 영화관 의자에 앉은 내겐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전달되었던 건 아닐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호토가 고모와 헤어지고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지구본'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그때 느낀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가만히 영화관 좌석에 앉아 가사를 보며 끊임없이 달리고 있는 내 삶을 생각했다. 내가 달리는 이 여정의 끝에도 과연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까. 나 역시 나의 옳은 바람을 쥐고서 시작했고, 그 길 위에서 홀로 서있는 순간들이 지독하게 외로웠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국 나도 끝까지 나아가겠지. 바람을 맞아도, 잔해를 넘어가면서도.
나는 여전히 내 여정의 어디쯤에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구본'의 메시지를 가슴에 새기며, 나의 방향성을 찾아 나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요네즈 켄시- 지구본
僕ぼくが生うまれた日ひの空そらは 高たかく遠とおく晴はれ渡わたっていた
내가 태어난 날의 하늘은 높고 아득하게 개어 있었어
行いっておいでと背せ中なかを撫なでる 声こえを聞きいたあの日ひ
다녀오라며 등을 어루만지는 목소리를 들었던 그날
季き節せつの中なかですれ違ちがい 時ときに人ひとを傷きずつけながら
계절 속에서의 엇갈림 속에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서
光ひかりに触ふれて影かげを伸のばして 更さらに空そらは遠とおく
빛에 닿아 그림자를 뻗어 하늘은 더욱 아득히
風かぜを受うけ走はしり出だす 瓦礫がれきを越こえていく
바람을 맞으며 달리기 시작해 잔해를 넘어가
この道みちの行ゆく先さきに 誰だれかが待まっている
이 길이 향하는 곳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어
光ひかりさす夢ゆめを見みる いつの日ひも
언제나 빛이 비치는 꿈을 꿔
扉とびらを今いま開あけ放はなつ 秘ひ密みつを暴あばくように
지금 문을 열어젖혀, 비밀을 파헤치듯
飽あき足たらず思おもい馳はせる 地ち球きゅう儀ぎを回まわすように
질리지도 않고 떠올려, 지구본을 돌리듯이
僕ぼくが愛あいしたあの人ひとは 誰だれも知しらないところへ行いった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갔어
あの日ひのままの優やさしい顔かおで 今いまもどこか遠とおく
그날 그대로의 상냥한 얼굴로 지금도 어딘가 먼 곳에
雨あめを受うけ歌うたい出だす 人ひと目めも構かまわず
비를 맞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남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고
この道みちが続つづくのは 続つづけと願ねがったから
이 길이 계속되는 건 계속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야
また出で会あう夢ゆめを見みる いつまでも
언제까지나 다시 만나는 꿈을 꿔
一ひと欠片かけら握にぎり込こんだ 秘ひ密みつを忘わすれぬように
한 조각 움켜쥔 비밀을 잊지 않도록
最さい後ごまで思おもい馳はせる 地ち球きゅう儀ぎを回まわすように
끝까지 떠올려, 지구본을 돌리듯이
小ちいさな自じ分ぶんの 正ただしい願ねがいから始はじまるもの
작은 나의 올곧은 소망에서 비롯되는 것
ひとつ寂さびしさを抱かかえ 僕ぼくは道みちを曲まがる
외로움 하나를 껴안고 나는 길의 방향을 바꿔
風かぜを受うけ走はしり出だす 瓦礫がれきを越こえていく
바람을 맞으며 달리기 시작해 잔해를 넘어가
この道みちの行ゆく先さきに 誰だれかが待まっている
이 길이 향하는 곳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어
光ひかりさす夢ゆめを見みる いつの日ひも
언제나 빛이 비치는 꿈을 꿔
扉とびらを今いま開あけ放はなつ 秘ひ密みつを暴あばくように
지금 문을 열어젖혀, 비밀을 파헤치듯
手てが触ふれ合あう喜よろこびも 手て放ばなした悲かなしみも
손이 맞닿는 기쁨도, 놓아주었던 슬픔도
飽あき足たらず描えがいていく 地ち球きゅう儀ぎを回まわすように
질리지도 않고 그려가, 지구본을 돌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