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변화와 용기
뭐든지 결정적 시기가 존재한다
마음을 먹은 직후이니만큼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다면 좋았겠지만, 나의 현실은 사뭇 달랐다. 질문을 하려면 적어도 내가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입시를 잊고 산 지가 10년이 다 되어가는 평범한 성인이었다. 그 긴 세월 속에 우리나라 입시는 이미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고, 나 홀로 이해하기엔 그 내용이 너무 복잡했다.
내가 처음 들어보는 입시 용어들도 많았고, 방식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줄줄이 늘어진 과목들 목록을 보면서 난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채점이 되는지조차 무지한 상태였다. 이런 기본적인 내용들은 이미 모두가 아는 듯 자세한 설명을 찾기도 어려웠다. 그래, 그렇겠지. 대다수 학생들은 19살의 나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니만큼 입시 정보라면 학교나 학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들과 사정이 달랐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직업을 가진 직장인이었고, 그들 역시 입시를 떠나온 지 오래된 것은 나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내 주변에 최신 입시 동향 따위의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지. 허둥거리는 나를 위해 지인들은 알음알음으로 구해온 입시 정보를 내게 전했고, 나는 또 그것들을 토대로 검색하고 조사하는 일상의 시작이었다.
공부는 시작하기도 전부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를 보며 불안은 점점 커졌다. 나와 경쟁할 다른 이들은 부모님이며 선생님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고 있었다. 공부만 하면 될 그들과 달리 나는 시험 일정이며, 서류접수나 입시 정보까지 일일이 발로 뛰고 손품 팔아 알아봐야 했으니 부담되는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뭐든지 때가 있다는 말에 절절히 공감했다. 단순히 암기력이나 유연성의 문제만 가리킨 게 아니었다. 그 ‘때’이기 때문에 따라오는 주변의 조력과 분위기가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겪어보고서야 진정으로 이해했다. 그 시기가 멀어질수록 삶의 난이도는 더더욱 올라간다. 내가 선택한 길은 그런 것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변에 도움을 구하는 일조차도 나 스스로가 시작해야 하는 일.
나의 직업과 학습의 재도전을 심리학적 결정적 시기에 비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학교를 벗어나 10년이 넘도록 사회에서 일하던 내가 학교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것만으로도 적절한 시기를 지나 크게 길을 벗어나는 것임은 다르지 않았다. 영어단어를 암기하는 것조차 낯설어져 버린 그 나이에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적절한 시기를 놓친 나는 이것을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시기를 벗어난 나의 도전의 결과는 여전히 알 수 없고, 진행형에 있다. 아직은 이 길의 끝이 보이지 않아 시작점 위에서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서 있지만. 그래, 조금씩 내딛다 보면 길 끝에도 도달할 수 있겠지. 내가 한 걸음이라도 걷겠다는데 어찌 나아가지 못하랴. 다만, 언젠가 문득 이 길이 맞았던 걸까 고민하는 순간이 찾아와도 이미 고민하고 있을 나는 많이 성장해 있을 것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