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픔이 사라질 수 있다면
나는 심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오랫동안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는 편이었고, 내게 무거운 상처가 존재하는 만큼 상대가 지고 있는 무게에 대한 이해도 역시 높은 편이었다. 그리고 각자가 가진 고민은 서로 비교할 수 없이 개개인에게 가장 무겁다는 사실 역시 모르지 않았기에 나는 타인의 아픔에 민감했다.
그렇지만 나는 누군가의 문제를 감히 직접 개입하여 해결할 수 없었고, 대부분의 고민의 답은 본인에게 존재했으므로 나는 그저 그들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하며, 답에 이를 때까지 그저 듣고 있을 뿐이었다. 언젠가 그런 말을 들었다. 모든 고민은 꺼내어 말하는 순간, 이미 반은 해결된 것이라고. 나는 그 말에 동의하며, 내가 너의 고민에 절반 정도를 덜어주었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나를 찾는 이들이 끊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음을 느낄 때마다,
‘세상에는 아픈 사람이 왜 이리도 많은 걸까’
그런 생각을 했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자주 느끼는 사실 중 하나는, 나와 함께 심리학을 공부하는 이들 모두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자신의 상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내가 가진 상처의 근원을 찾아 더 깊이 이해하고, 치유하고자 심리학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가 내가 누군가의 고민을 덜어주고자 하는 마음에 조금이나마 더 도움이 되기를 바라게 된 것은 나중 일이었다.
다만, 내가 하는 일이 전문적이건 그렇지 않건 난 늘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어차피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본질은 ‘치유’이지 전문성에 무게를 두지는 않았으므로. 부족한 나라도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이다. 지금의 나는 사람들의 고민에 익명으로 손편지로 답장을 적어주는 일을 하고 있는데, 매번 쏟아져 들어오는 고민을 읽고 있노라면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는 모두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저마다의 고민을 품은 채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를 무겁게 깨닫는다. 어린아이부터 나이가 많은 사람까지 각양각색의 고민들을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놓은 것을 읽을 때마다 어릴 적 했던 생각이 다시금 떠오른다. 여전히 세상에는 여러 아픔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여전히 세상에는 무수한 아픔이 존재한다. 나의 미약한 힘으로는 감히 어쩌지 못할 만큼이나 거대한 슬픔이 파도친다. 태풍이 할퀴고 간 자리에 남은 상처들 역시 그대로 남아 사람들을 오래도록 괴롭히는 모습을 나는 자주 마주한다. 나는 과연 이들을 어디까지 도울 수 있을까. 나는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
오늘 수거한 것만 800여 통. 나의 부족한 힘에 자주 고개 숙여지는 이유이다. 나는 그저 내 힘이 닿는 데까지 정성스럽게 정리하고, 글을 쓸 뿐이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마음은 없으니까. 한 글자 적어 내려갈 때마다 그들의 마음을 어렵게 하는 고민은 해결되고, 가슴을 뛰게 하는 소원은 이루어지길 바란다. 내가 가진 온기는 미약하기 짝이 없으나, 내가 가진 온기만큼이라도 세상이 따뜻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