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7] 한국인, 현지인, 그리고...
다국적 연합 직원들을 관리하다.
솔로몬 군도에 입국한 지 어느덧 한 달이 넘어가고 시기는 6월로 접어드는 시점이었다.
내가 위치한 캠프는 초이셀섬의 남쪽 끝 자락에 위치한 랜가바나 지역이고 우리는 지역 이름을 따서 랜가바나 캠프로 불렀다. 좀 더 있어보니 이곳이 좋은 이유가 섬이긴 하지만 약간 만과 같은 위치라 선박이나 배가 접안하기에 좋고 잔잔한 bay라서 벌목한 원목들을 모선(Mother Vessel)으로 싣기에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었다. 이미 이곳은 나의 선임이신 과장님께서 많은 것들을 홀로 감당하셨고 회사의 중요한 생산을 감당하는데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계셨다.
[구글지도를 검색해보니 '슈아췔섬'이라 발음을 표기하고 있다. 네이버 검색을 하면 '초이셀'하면 관련 기사가 몇몇 나오니 관심있는 독자들은 찾아보기 바란다. 아래 붉은 색 원이 '랜가바나 캠프 지역이다'
[랜가바나 캠프]는 주변 섬들에 의해 파도의 영향을 받지 않아 선박들이 정박해 선적을 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우측 아래 Posarae 지역에 보건소가 있어 현지인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었다.]
우리 회사는 많은 벌채권을 확보하였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 조림작업을 통해 '지속적인 환경구성'을 이 땅의 주인인 솔로로 군도 주민들에게 자연유산을 되돌려 주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어 그 점이 다른 외국계 기업하고는 차이점이 난다. (보통 중국회사라 부르는데 실제 중화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을 뜻하는 것이 아닌 동남아시아의 화교들을 통칭하여 불렀다. 국적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그렇지만 그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화교였기 때문에 그냥 중국회사라 불렀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는 세계적으로도 산림자원이 풍부하였던 나라이고, 자원주의를 통해 그들의 자원을 무기로 삼기도 하였다. 그래서 일찍이 목재, 벌목, 가공에 관한 산업이 발달하여 기술과 장비 그리고 생산에 대한 노하우가 풍부하다. 이런 중국계 회사들이 남태평양의 솔로몬 군도나 파퓨아 뉴기니에서도 땅을 계약하여 벌목을 하고 그것을 수출하여 이익을 보고 있었고 분명 우리 회사가 벌채권을 확보한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뇌물과 향응을 제공하여 독자적으로 계약 후 원목을 벌목하여 벌채가 완료되면 그 지역을 미련 없이 빠져나온다. 그래서 일부 의식 있는 현지인들은 이런 중국계 회사들의 스타일을 알고 있어 우리와 계약을 하고 싶어 하고 협조도 많이 하지만, 문중사람들이 돈을 받고 이중계약을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하여 우리는 이럴 때 '방어'한다는 표현을 하며 경쟁 상대인 중국회사와의 일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현지인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차원에서 정도를 찾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상호 윈윈 할 수 있는 전력과 마음을 움직이려고 하는데 이게 시간도 오래 걸리고 상대방들은 뭐든지 쉽게 돈과 뇌물을 통하여 작업을 하기 때문에 방어하는데 어려운 점이 분명히 있다. 그래도 우리의 진정성을 아는 부족들은 끝까지 의리를 지켜주고 도와주고 대신 끝 조림작업을 통해 자연이 훼손되지 않고 그리고 후손들에게 꼭 다시 물려주길 원한다.
아무튼, 우리는 캠프에서 작업을 할 때 기본적으로 현지의 부족들을 고용해서 해당지역의 일자리 창출에도 신경을 쓰지만, 장비를 다루고 기술을 요구로 하는 작업은 한국인도 아닌, 현지인도 아닌 삼국인을 계약하여 일을 한다. 제3국의 직원들을 통칭하여 '삼국인'으로 불렀으며 여기는 필리핀인, 말레이시아인, 인도네시아인이 있다. 이들은 자기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본인에게 이르러 이것을 업으로 받아들여 일을 하기 때문에 벌목과 장비운용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더 전문가였다. 때로는 현지인들이 자기들은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는 것이 비해 삼국인들이 장비를 다루고 '슈퍼바이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질투심에 종종 대들고 질서를 저해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특히 술을 먹고 그러면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진다. (안타깝게도 내가 겪어본 솔로몬 군도 사람들은 대부분 술에 약하고 그래서 주사도 심하고 소위 꼬장을 부려서 그럴 때 캠프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한국인은 힘들다. 더군다나 남의 나라에서 말도 안 통하고 절대다수로 현지인들이 많기 때문에......)
나는 그나마 군대에서(KATUSA)에서 다양한 인종과 같이 복무했고 히스패닉계, 필리핀계, 유럽계(독일, 프랑스 등), 아프리카계, 아메리카계 등 정말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인종과 민족들을 경험한 적이 없었는데 이게 그래도 꽤 도움이 되긴 하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땅 덩어리도 크고 인구도 많고 인종도 많기 때문이다.)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비결
우리 캠프의 삼국인들은 2가지 부류가 있었다. 하나는 회사에 소속된 직원으로 주로 필리핀 사람들이고 장비운전, 장비 정비(메카닉이라 불렀다.) 그리고 중간 관리자 정도이고 나이는 40대 중후반에서 50대 중반까지 있었는데 당시 내가 갓 서른을 막 넘겼을 때라 군대에서 신임소대장이 온 것과 비슷한 분위기지 않았을까 예상한다. 캠프의 총괄 관리자로 왔기 때문에 나이에 상관없이 내가 책임자이지만, 사실은 경험, 숙련도 모든 면에서 삼국인들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책임자이기 때문에 나는 캠프 모든 업무를 책임지고 본사와 캠프와의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언어 뿐 아니라 일을 배우기도 열심히 배워야 했고 사람관리 (Human Resource Mangement , HMR)도 또한 소홀히 할 수 없기에 일(Work)뿐 아니라 삶(Life)도 책임자로서 모범을 보이려 많은 노력을 다해야 했다. (이 부분에서 내가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이 큰 무기가 되었다. 적어도 나는 술을 마셔서 실수를 할 일이 없었고, 담배도 피우지 않아 늘 깨끗하게 몸과 마음을 관리했다. 다만 한국인 특성상 어려 보여 회사에서는 나이 들어 보이게 콧수염을 기르라 해서 한 동안 어울리지도 않은 콧수염을 기른 적은 있었다.)
또 하나의 부류는 도급계약을 맺은 업체의 사람들로 주로 중국계 말레이시아 사람들이었으며 화교다.
그래서 말레이시아어, 영어보다 이들은 중국어를 사용하고 그들만의 화교 네트워크가 있어 일도 수월하게 하고 정보도 많았다. 솔로몬 군도에서도 차이나타운이 많이 발달되었고 상권은 다 장악했다. (나중에 이것이 폭동의 원인이 되기도 했었다.) 이들 대부분은 야생에서 보고 배운 그대로 노하우가 많았고, 장비도 잘 다루고 또 헝그리 정신도 투철했다. 벌목을 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는 장비와 장비의 관리라 생각하는데 이들은 그런 면에서 정말 베테랑들이다. 예를 들면 벌목작업할 때 필요한 톱(Saw, Chain) 같은 것도 창고에 보관하기보다는 그들이 사는 방에 걸어놓고 비가 오거나 작업을 못하면 수시로 정비하고 기름칠하고 닦으니 언제 작업에 투입돼도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고 또 현지에는 도난 사고, 파손도 많은데 이렇게 본인이 직접 관리를 하니 (소위 '이고 자는' 것이다.) 분실의 우려도 없고 누구보다 본인이 제일 장비를 잘 알기에 설사 고장이 나더라도 쉽게 대처가 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차량 관리도 잘하고 무엇보다 어떻게 하면 생산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수많은 데이터와 경험이 녹아있어 그야말로 빼꼬미다.
왜 중국인들이 장사를 잘하는지? 이익에 밝은지 이들을 보면 그 답이 나올 정도였다.
부지런하고 근면하고 일에 대한 자부심 그런 게 탁월하였다. 지금 중국도 많이 발전하고 A.I도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당시만 해도 (2000년대 초반) 인식이 별로 안 좋았던 시기다. 속이기도 많이 속이고, 또 위생적인 면도 많이 떨어지고, 시끄럽고, 민폐 끼치는...... 그러나 당시 내가 겪은 중국인(화교)들은 그렇지 않았다. 정말 사업에 밝고, 매너도 좋고, 말도(생각하는 거) 잘 통했다. 중국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은 아직 그 이면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힘든 일은 싫어하고 편한 일만 하려는 반면에 중국인들은 벌목 작업도 자기 할아버지, 아버지가 쭉 해오던 일을 가업으로 이어받아하고 심지어 대학공부를 마친 자녀도 선친의 사업을 이어받아 벌목관련된 회사에서 일을 하거나 아니면 자기가 조그만 회사를 차려 독립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또 잘한다.) 그것이 어려서부터 보고 배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직업에 대한 귀천이 없어 자부심으로 일해서 그런 것인지 어느 쪽이든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는 대단하였고 또한 결과도 좋았다.
다만 처음부터 사이가 좋고 그런 것은 아니고 관계를 맺고 신뢰가 생기고 친해지면 그때부터는 허물없이 서로 신의 아래 좋은 관계가 (비즈니스 혹은 인간적 교류) 유지되는 것이다. 그리고 도급자이기 때문에 본인들이 손해를 볼 것 같은 계약은 처음부터 하지 않으려 하는 특성도 있는 것 같다. 소위 돈이 되지 않는 사업은 아예 시작도 안 하는 것인데 이게 나쁘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게 과연 돈이 되는 것이지? 수익성이 있는지 적어도 그 판단은 금방 내리기 때문이다. 하기야 눈만 뜨면 산에서 작업하고 장비 고치고, 수십 년 동안 이어온 노하우를 자연스레 몸으로 익혔기에 남이 보지 못하는 안목이 놀랍지만은 않은 것 같다.
현지인들, 삼국인들을 적절히 관리하고 필요한 곳에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효율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관리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이고 그것을 잘할 때 직원들도 믿고 따르고 일할 수 있어서 서로가 편한 것이다. 대부분 직원들은 또 현지 부족의 문중사람들이기에 직원인 동시에 또 토지 소유주이기 때문에 그런 관계를 정말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일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때 내가 깨달은 게 일도 일이지만 모든 부분이 관계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고 이 관계가 실패하면 일도 실패하는 것이고 관계가 성공하면 일도 성공하는 것이다.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이 힘들기 때문이다. 사람관리가 잘 되면 나머지는 따라오는 것 같다. 그것을 잘하면 나의 캠프 생활, 나아가 솔로몬 군도의 생활도 수월하게 지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