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8] 첫 선적의 추억]
싣고 싣고 또 싣고
현장에서 제일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이고, 야적장의 원목이 곧 곳간의 쌀과 같은 존재라 보관도 잘해야 하고(원목이니 파손되거나 옹이 지거나 그러면 당연히 가치가 떨어진다.) 사전에 생산량과 재고량등을 고려하여 선적 일정에 맞게 작업을 진행해야 나중에 선적 시 Shortage가 안 난다.
무역에 관심 있거나 무역 쪽으로 근무하고 있는 분들은 무슨 말인지 집작 하실 것이다.
L/C, B/L, FOB(본선인도 조건으로 보통 원목이나 벌크선에서 많이 사용하는 조건), Shortage, Demurrage
이렇게 야적장의 원목을 모선(M/V Mother Vessel)에 보내기 위해 바지선에 싣고서 예인선이 모선까지 끌고 가서 크레인을 통해 싣게 된다. (모선은 크기가 커서 얕은 바닷가까지 오지 못하기 때문에 예인선이 바지를 끌고 가는 것이다.) 크기도 1만 톤급 이상부터 3만 톤급까지 다양한 모선이 들어와서 싣게 된다.
사진을 보면 선미(배의 끝부분)에 선교(브릿지, 배를 조종할 수 있는 공간)를 위치하여 보다 많은 선적을 하는데 도움이 되고 (비록 시야확보는 어렵지만 경제 논리에 따라 선미에 많이 만든다.)
1만 톤급만 해도 길이가 100M가 넘는다.
높이도 십 미터 이상으로 선박에 올라 선장님을 뵈러 가게 되면 사다리 의지하여 올라가야 하는데 파도라도 좀 일어나면 멀미가 제대로 난다. 예인선에서 올라가야 하므로 정말 위험하고 담력 + 근력이 필요하다.
전에도 언급한 것처럼 캠프의 총책임자가 한국인이고, 내가 있는 곳은 2명이 있었는데 50명 남짓의 직원을 관리하고 장비 관리(유지보수, 부품요청, 자재공급) 뿐 아니라 선박은 그야말로 수익과 직결되는 부분으로 많은 신경이 쓰이는 작업이다. 일반적으로 야적장에 재고를 다 쌓고 선적을 하지 않는다. 선적하는 동안 (보통 바지선이 한번 싣고 모선까지 갔다 오는 시간은 대략 빨라야 5시간 정도 소요가 된다. 그래서 바지선이 1개보다 2개, 3개 되면 한꺼번에 보낼 수 있어 시간이 단축되겠지만, 장비도 부족하고 인력도 부족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1개만 운용이 된다.)
그래서 얼마나 Arrange를 잘하고, 계산과 예측을 잘해야 Demurrage 없이 모선에 선적할 수 있다.
시간은 돈이다. 모선이 무작정 기다려 주고 있는 게 아니라 양에 따라 정박 시간도 정해지고 그 이상 지체되면 그에 대한 비용을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시간을 단축하면 그만큼 비용이 절감되지만 대부분 지연되어 추가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머릿속에 계산되고 그려지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의 시간과 비용으로 작업을 지시하고 움직여야 코스트가 절감이 되고 그게 회사의 이익으로 남는다. 하지만 이렇게 머릿속에 그려지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베테랑은 그냥 시간이 지나면 태어나지 않는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느낀 것은, 실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패를 통하여 얻은 교훈을 다음에는 그 확률을 줄이고 성공의 길로 갈 수 있게 점점 확률을 높여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만약 시행착오는 겪고 싶지 않아 혹은 실패를 인정하지 않아 답이 뻔히 보이는 안전 위주로 행동하고 움직이면 발전이 없다. 한정된 역할만 할 수 있다.
때로는 회사에 깨지고 잔소리 듣고 욕먹어도 그것을 받아들여 그 후에 개선되고 수익이 더 생기게 되면 결국 그런 사람이 나중에 더 큰 일을 맡게 되고 더 큰 책임을 맡게 된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 안타깝게도, 실패를 인정하지 않거나, 인정이 되지 않아 처음부터 완벽하려 했고 완벽하지 않으면 시도를 잘하지 않았기에 일이 더디고(대신 실패는 당시에 적어 보인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내 안에 스트레스가 많았었다.
하필 첫 선적에 인부들이 실수로 선적하는 과정에 로프가 끊어져 바지에서 모선으로 들어 올리는 중 끊어져 모선에 피해가 생겨 그 비용까지 물게 되었다. 당시 캠프에서 선적작업 중인 것을 망원경으로 지켜보는데 그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다행히 인부들은 다치지 않았지만, 그보다 피해금액이 얼마나 나올지? 회사에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정말 막막했다. 모선에서 일하는 인부들은 도급으로 일하는 직원들이고 우리가 비용을 지불하여 일을 하기 때문에 그들의 실수도 우리 책임이다. 어찌어찌해서 해결은 되었는데 내겐 너무 큰 일이었다.
한편으로 처음부터 큰 사고가 나서 다음에 이보다 설마 더 큰 사고가 뭐가 있을까 하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고 겁도 나지 않게 되었다. (이게 나중에 큰 자양분이 된다. 그러므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숨기지 말아야 한다.)
원목들의 등급과 검목원과의 신경전
바이어는 검목원(검수원과 같이 원목을 측정하는 사람)을 현장에 보내 자기네들이 원하는 수종과 수량을 파악하여 보고한다. 갑을관계처럼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검목원이 오게 되면 캠프 내 책임자와 신경전이 오고 간다.
현장에서는 가급적 좋은 등급을 받으려 하고, 검목원은 엄격하게 기준을 적용하고 (사실은 A급을 B급으로 분류하면 그 차액분은 바이어가 얻는 수익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럴 때 가끔 언쟁도 벌어지고 얼굴도 붉히지만 결국은 서로 합의가 되어 선적을 진행하게 된다.
노란색 표시는 등급
영어는 원목의 종류 표기
숫자는 전체 재고의 수
이렇게 표시를 하면서 일부 품질이 좋지 않은 것은 별도의 표시를 통해 선적할 때 빼달라고 하기도 하는데 현장에서는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하기 때문에 이거 가져가지 않으면 전체를 다 팔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물론 이렇게 까지 한 이유가 다양하게 있기 때문에 뭐가 옳고 그른지 정할 수 없다. 각자 사정이 다 있으므로 자기 회사의 이익을 위해 모두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을 해야 한다.)
수종이 좋은 원목은 몇 그루만 있어도 당시 한국인이 받는 급여를 훨씬 상회한다. 우스갯소리로 몇 그루 바다에 띄워 인천까지 보내면 급여 뽑고도 남는다고 했는데 가능성 제로 인걸 알면서도 잠시나마 긴장을 풀고 웃고자 얘기한 것이다. (괜히 진지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
대부분 검목원들은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이고 서로 말은 달라도 피진어 혹은 漢文으로 의사소통이 된다.
작업할 때는 우리 쪽 직원(솔로몬군도 현지인)과 함께 동행하며 페인트로 칠하면서 하는데 야적장에 그늘도 없고 적재된 원목 사이 이동할 때 위험하기도 해서 보통 작업은 아니다.
그렇게 우리 캠프에 작업이 끝나면 또 다른 캠프로 카누를 타고 이동해서 거기서 또 작업하고 또 현장 책임자와 다투고....... 뭐 비즈니스로 하다 보니 개인적인 감정은 서로 전혀 없다. 나중에 몇 번 같이 작업하면 신상도 알고, 캐릭터도 서로 잘 알기에 비교적 협의가 빨리 진행되고 해결이 된다. 불필요한 마찰은 줄이는 게 서로가 편하기 때문이다.
캠프에 있으면서 점점 다양한 일과 사건의 경험을 통해 한국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할 것들을 겪어보고 지내니 이 또한 신기하고 뭔가 탐험가의 모험적인 내용들이 나오는 것 같아서 남태평양의 잔잔함속에서도 흥미진진한 일은 계속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