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9] 일일 휴가
새벽부터 카누를 타고 바다를 가른다.
내가 위치해 있는 초이셀 섬의 남쪽 랜가바나 캠프에서 웨스턴 주도의 Gizo 섬에 출장을 가려면
캠프에서 카누를 타고 대략 2시간 넘게 달려야 도착하는 거리이다.
직선거리로 90km가 넘으니 실제로는 수로를 따라가면 약 100km 정도면 되지 않을까 한다.
남태평양 바다를 가로질러 가야 하기 때문에 파도가 잔잔한 이른 아침에 출발을 하면 약 2시간 지나면
도착하는데 GPS도 없고 순전히 카누 드라이버의 실력에 의존해 간다. 중간에 '콜롬방가라'라는 둥근
모양의 섬이 있는데 이 섬이 일종의 등대 역할을 하여 콜롬방가라의 실루엣이 보이면 어느새 Gizo가
가까이 있음을 인지한다.
해뜨기 전의 바다는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Gizo는 공항도 가깝고, 우체국(전화/인터넷사용), 호텔에, 마켓까지 그야말로 각종 편의 시설이 함께 있는
도시로서 모든 업무도 처리하고 캠프에 긴급히 필요한 여러 생필품도 같이 구매할 수 있다.
보통은 지루한 캠프생활(전화 x, 인터넷 x, TVx)에서 머리도 식힐 겸 호니아라 법인 사무실 보고 겸 또 생필품
구입 겸사겸사 갔다 오곤 한다. 섬 자체가 크지 않아 도보로 다녀도 시내 중심은 전부 돌아다닐 수 있고 또
이곳에 회사의 연락사무소도 있어 캠프에서 오면 반갑게 맞이해 주고 숙소(Lodge)나 배편(카누 정박)
그리고 쇼핑할 장소까지 안내를 해주곤 한다.
Gizo Harbour, Port, Hotel, Hospital, 좌측 동그라미 표시 된 곳은 Telekam(Telecom) 전화국인데
여기서 호니아라 보내는 보고서나 한국의 가족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곤 하는데 시간당 비용이 꽤 비싸다.
내 기억으로는 30분당 2만 원이 넘었던 것 갔다. (2004년 기준)
특히 Gizo 호텔 2층 바에서 Port를 보면 여객선이 들어올 때나 석양이 지는 모습을 보면 캠프 생활의 모든
피로가 풀리고 마음도 평안해지고 진정 무공해 남태평양에 온 것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자주 올 수는 없지만, 선적이 끝나거나 특별한 이슈가 있으면 언제든지 Gizo를 가려고 했는데
나와 같이 근무한 캠프장 이 과장님께서 배려를 많이 해주셔서 덕분에 2-3개월에 한 번씩은 온 것 같다.
다이빙, 수중탐험 그리고 치열한 전투의 흔적
Gizo가 또 유명한 것이 있다면 다양한 해상 레저를 즐길 수 있어서 서양인들이 많이 찾아온다.
특히나 2차 세계대전 중 미국과 일본의 격전지였기도 하며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미국의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PT 109(어뢰정)가 일본의 군함에 부딪혀 침몰한 지역이 바로 Gizo다.
' 역사를 들여보면 1943년 8월 2일 일본 구축함의 함포사격을 받고 선체가 두 동강 났다.
케네디와 그의 부하 10명은 무려 15시간을 수영, 인근 섬에 닿았다고 한다'
이미 영화도 제작이 많이 되었고 책으로도 많이 출간되었다. 미국은 영웅 만드는 것을 잘하고 또 나라
전체가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이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기념하고 있다.
수도가 있는 호니아라의 과달카날 비행장도 또한 미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쟁탈전이 있었고,
바다에서도 서로 간의 맹렬한 전투가 끊임없이 펼쳐졌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평온하다
못해 언제 저런 전쟁의 포화가 일어났는지 전혀 예측이 불가할 정도이다.
치열한 격전지였기 때문에 수도 호니아라도 미군과 일본군의 전투 잔재가 곳곳에 널려 있다.
고요한 바닷속에 그날의 함성이 매몰되어 있으나 바다는 고요히 잔해를 간직하므로 그 현장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흔적을 찾아 전쟁 애호가들도 많이 찾아오고, 때 묻지 않은 남태평양에 매료되어 찾아오는 이들도
제법 된다. 다만 교통이 발달하지 않고 말라리아모기도 많아 일반적인 관광코스이지는 않아 붐빌정도는 또
아니다.
카누를 타고 Gizo에 도착하면 조그만 보트를 타고 다이빙 명소를 찾아가는 서양 관광객들을 보면 같은 외국인인데 누구는 돈 벌러 오고 누구는 관광/레저로 오고 참 장난 같은 운명이다 생각도 들 때가 있다.
그렇지만 이내 바다와 사람들을 보면 자연이 주는 선물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고 잠시
짧았던 나의 식견을 반성하고 다시 힐링을 얻게 된다. 캠프도 풍족하게 전기가 들어오고 문명을 값없이 사용했다면 Gizo가 주는 문명의 편리함과 또 남태평양이 주는 아름다운 자연경관도 제대로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Gizo에서의 하룻밤은 언제든지 지친 몸과 맘을 힐링하여 주기 때문에 언제나 좋은 추억으로 남는
장소이다. 지금 가라고 하면... 거리도 멀고, 또 시간도 오래 걸려서 잠깐 머뭇 거리겠지만 그래도 가슴
한편으로는 언젠가 한번 다시 가고 싶은 섬이기도 하다.
그리운 Gi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