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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을 수 없는 전화

외삼촌의 고해성사

오늘은 아침부터 바쁜 날이었다. 와이프 출근 시켜주기, 아이들 등교시켜 주기, 만보 걷기, 빨래 돌리고 널기, 셀프염색하기 그리고 10시 30분에 둘째 공개수업 가기...


빡빡한 일정들을 하나하나 마무리하고 셀프염색을 하던 중에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올해 70이신 외삼촌은 영양에서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고 계신다. 오전시간에는 차량운행을 하시느라 바쁘실 텐데 전화를 주셔서 의아했다.


"여보세요. 삼촌 잘 지내시죠? 무슨 일 있으세요?" "그래 잘 지내고 있지. 오늘은 직원이 차량운행을 나가서 너랑 통화하고 싶어서 전화했다. 별일 없니?" "예. 참, 숙모님 발가락 골절은 괜찮으세요?" "응. 다행히 넷째 발가락이라서 입원은 안 하고 내가 업고 다닌다. 숙모가 마른 체형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허허허."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가볍게 시작했다. 5분 정도 통화를 하면 될 것 같았다. "요즘 엄마는 어떠시니? 건강은 괜찮으시니? 엄마 때문에 힘든 일은 없니?" "네. 얼마 전부터 엄마의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엄마가 나에게 집착했던 모든 것들, 타인의 시선을 너무나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모든 것들, 자존감이 낮은 삶의 모습 등등 제가 싫어했던 모든 것들을요." "무슨 계기가 있었니?" "사실, 얼마 전에 누나로부터 엄마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들었어요. 엄마, 아빠가 결혼하실 때, 엄마는 초혼이고, 아빠는 재혼이셨잖아요. 그 사실이 엄마한테는 무척 큰 상처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두 번의 사업실패로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지셨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저도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 순간 엄마의 상처가 제 마음속 깊이 들어왔어요. 그때부터 선택적이 아닌, 엄마의 모든 것을 이해하기로 했어요." "잘했다. 나도 사실, 엄마랑 10살 차이가 나다 보니, 엄마의 지나친 관심과 사랑이 너무나 부담스러워서 어긋난 행동을 일부러 많이 했어. 그 당시에는 속박과 잔소리로만 느껴졌어."


그 순간 시간을 보니,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지금 샤워를 하고 둘째 학교를 가도 늦을 것 같았다. 그러나 삼촌의 착 가라앉은 음성과 마음의 빗장을 풀고 무언가 말씀하시려고 하는 진심 어린 느낌은 나의 입을 묶어버렸다. "너와 소주 한잔하면서 하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게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는 걸 깨달았어. 사실, 너희 아빠가 인쇄소를 하실 때, 내가 일하러 왔잖아. 사람들은 내가 처남이니까 돈도 많이 벌고 권력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나 봐. 그래서 그렇게 나한 술을 사달라고 부담을 줬었지. 혹시 두 번이나 야반도주했던 거 기억나니? 내가 친구 트럭을 빌려서 그 밤에 이사시키느라 정말 힘들었어. 나는 네가 나의 생질이라서 정말 사랑스럽고 잘 키워야겠다는 부담감도 컸어. 내가 도망 다닐 때도 네가 다니는 학교에 찾아갔던 거야. 너도 알다시피, 내가 젊었을 때 조직도 거느려보고, 집안 종중 땅도 팔아서 도망도 다니고, 교도소도 들어가 보고, 또 정신 못 차리고 다단계도 해서 도망 다니고 또 교도소에 들어가고... 참, 많이도 돈을 쫓아다녔지. 지나고 보니, 돈은 주인이 따로 있더라. 쫓아가서 잡았다 싶으면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나버리는 것이 돈이야. 그렇게 허송세월을 많이 보냈지. 내가 종중 땅을 팔고 큰돈이 생겼을 때, 너희가 부도나서 힘든 걸 알면서도 도와줄 수가 없었어. 내 돈이 아닌지라 불안해서 내 마음대로 쓸 수가 없었어. 미안하다. 엄마도 그때의 오해가 아직도 풀리지 않은 것 같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이 세상에 남매 딱 둘뿐인데... 그리고 너는 잘 모르겠지만, 아빠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찾아뵙고 그 간에 있던 오해는 풀었어. 아빠 돌아가시고 내가 도망 다니느라 장례식에 가지 못한 건 정말 미안하다." 무슨 고해성사를 하시 듯, 마른침을 삼키시며 삼촌은 말을 이어 나가셨다.


"내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서 지난주에 갑자기 저혈당 쇼크로 쓰러지셔서 급하게 내가 설교를 했었어. 평소에 잔기침이 많아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설교 내내 한 번도 기침이 나오질 않는 거야. 정말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어. 그리고 내가 매주 차량봉사를 하는데, 겨울에 1000미터 고지를 수없이 넘어 다녔는데도, 사고 한번 나지 않았어. 이게 하나님 은혜가 아니고 뭐겠니? 학주야 돈욕심부리지 말고 주님 옷자락만 꼭 붙잡고 살면 된다. 나 같이 벌레보다 못한 사람도 하나님이 사용해 주시지 않니? 요즘 나의 기도제목은 돈이나 건강을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주님께서 세워 주신 자리를 온전히 감당할만한 능력을 부어주시라고 기도드려. 오랜 시간 내 얘기 잘 들어줘서 고맙다. 너한테 죄스러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신 것 같다. 다음에 얼굴 볼 때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삼촌의 말을 듣는 내내, 나의 마음은 복잡한 감정들로 요동쳤다. 같은 사실이라도 어떤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은 천차만별이다. 사실, 삼촌에 대한 서운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쌀 한말 살 돈이 없을 때를 생각하면, 삼촌이 미웠고 싫었다. 하지만, 삼촌입장과 삼촌의 진심을 듣고 나니, 마음에 있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린 것 같다. 인간관계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은 오해이다. 이 오해를 풀 수 있는 키는 진심 어린 인정과 사과이다. 삼촌의 진심을 다한 통화는 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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