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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장모님을 막을 수 없다.

완전한 장모님 사랑

올해 추석도 우리는 처가식구들과 함께 떠났다. 추석과 설에 여행을 함께 다닌 지 5년째이다. 40년 동안 시댁 식구에게 타의 반 자의 반 충성하시던 장모님이 마음을 바꾸신 지 5년째이다. 의무가 아닌,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족에게 밥상을 차려 주신지 5년째이다.

그렇게 우리는 경주로 떠났다. 우리 집, 처형네 집, 처남네 집은 각자 경주에서 만나기로 했다. 장인장모님은 처남이 항상 모시고 온다. 여행 때마다 처남차는 장모님이 준비하신 먹거리로 손가락 집어넣을 틈도 없을 정도다. 손주 녀석들이 커가면서 먹거리는 더욱 풍성해지는 것 같다. 8명의 손주 중 먹성 좋은 손자가 7명이니 그도 그럴 것이다. 이번 여행도 어김없이 처남차는 테트리스 하 듯, 먹거리가 꽉 들어차 있었다. 형님과 나의 손수레에 꽉 채워 2번은 옮길 양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장모님 먹방투어는 시작되었다. 다음 날, 잠결에 쾅쾅 우리 가족 숙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비몽사몽간에 시계를 보니, 7시였다. 눈을 비비며 문을 열어보니, 장모님께서 서 계셨다. "아침밥 먹어 "라고 한마디 하시고 본인 숙소로 가셨다. 원래 우리 가족은 아침밥을 먹지 않는다. 밥보다는 잠을 좋았다. 장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서둘러 식구들을 깨우고 장모님 숙소로 향했다. 입이 떡 벌어졌다. 돼지갈비, 내 손보다 큰 조기구이, 여러 종류의 밑반찬들... 군침이 싹 돌았다. 그렇게 입맛이 깔깔했던 나는  밥 두 공기를 싹싹 비웠다. 여쭤보니, 새벽 5시부터 준비하셨단다.

다음날 아침도 예외 없이 문은 쾅쾅 울리고, 우리는 어느새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어제 과음한 가족들을 위해 누룽지탕과 물갈비와 소시지가 차려져 있었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장모님이 손수 준비하신 음식은 마술처럼 소화가 잘된다. 이래서 집밥, 집밥 하는 것 같다.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도 진수성찬이었다. 1등급 소고기로 끓인 뭇국과 떡갈비였다. 떡갈비는 장모님께서 한 땀 한 땀 빚으신 수제떡갈비였다. 마지막 아침도 든든하게 내 배를, 내 마음을 채워주었다.

식사 후, 티타임 시간에 장모님께 여쭤보았다. "장모님, 아침마다 힘들지 않으세요? 피곤하실 텐데, 좀 더 주무시지 그러셨어요." "나는 맛난 음식을 해서 가족을 먹이는 게 기쁨이야. 특히, 아버님은 아침을 꼭 드시거든. 그리고 내가 살아봤자 얼마나 살겠나. 내가 원래 선천적으로 심장병이 있어서 언제 멈출지 몰라." 그 순간, 가족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어머님께서 말씀을 이어가셨다. "그냥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내가 잘할 수 있는 요리를 해서 가족들 먹이는 게 행복이야."라고 말씀하셨다. 장모님의 아침식사에는 참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밥 한 톨 안 남기고 싹 싹 긁어먹은 내가 '참 잘했다' 싶었다. "장모님 아침밥 한 달만 먹으면 100kg 찍겠어요."라는 나의 농담에 장모님은 환하게 웃으셨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3일 내내 장모님의 사랑을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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