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엘리오의 관심이 드러나는 순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낯선 방문자를 향하는 엘리오(티모시 살라메)의 응시에서 시작된다. 올리버(아미 해머)가 엘리오의 집에 들어올 때, 댄스홀에서 여자와 춤을 출 때, 바다를 향하여 걸어갈 때 올리버의 모습은 줄곧 엘리오의 시선 속에서 부드럽게 포착된다. 엘리오는 줄곧 낯선 남자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올리버의 말투가 건방지다 말할 때("later"), 이 순간 인상 깊은 것은 엘리오가 올리버의 말투를 똑같이 따라 할 정도로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그를 지켜보았다는 사실이다.
엘리오의 심정은 음악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엘리오는 악보에 가작을 하고 있다. 이때 마팔다가 종을 울리고, 엘리오는 방에 들어가서 자는 올리버를 깨운다. 악보, 종, 올리버로 이어지는 로맨틱한 연결. 올리버와 둘이서 수영을 하던 순간에도 엘리오는 악보를 그리고 있다. 엘리오가 처음으로 올리버를 도발하는 것도 피아노를 통해서다. 바하의 선율을 둘러싼 간지러운 밀고 당기기. 결국 올리버가 떠나기 직전 엘리오는 그가 원하는 곡을 들려준다.
올리버의 마음이 표현되는 장면
반면 엘리오를 향한 올리버의 관심은 훨씬 은밀하게 드러난다. 처음 올리버가 엘리오의 침대에 누웠을 때, 카메라는 올리버의 발치에서 엘리오를 바라본다. 이는 올리버가 엘리오를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리버가 엘리오의 침대에 풀썩 뛰어들 때, 이것은 엘리오의 채취에 몸을 내맡기는 행위로도 보인다. 이때 올리버는 정말 잠들었을까. 아니면 잠든 척 엘리오를 의식하고 있었을까. 잠시 후 엘리오가 방문 밖에서 올리버를 부르며 깨울 때 올리버는 정말 듣지 못했을까. 아니면 들어와서 깨워주길 기다렸을까. 둘의 만남을 표현하는 장면에는 수상한 에로스가 넘친다.
올리버는 엘리오의 말 한마디에 "친절하다(kind)"라고 말하며 물에 풍덩 뛰어든다. 이 장면은 앞의 침대 장면과 연결된다. 올리버는 매번 엘리오의 행동에 맥을 못 추리고 침대에 풀썩 뛰어들거나 물속으로 풍덩 빠져든다. 이것은 올리버가 엘리오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사랑에 빠졌음을 보여준다. 또한 올리버는 엘리오와의 접촉 후 매번 무언가를 탐닉한다. 그는 첫 식사에서도 게걸스레 계란을 먹고 주스를 마신다. 그는 광장에서 고백을 들은 후에도, 함께 자전거를 탄 뒤에도 물을 마신다. 엘리오는 올리버로 하여금 갈증을 일으키는 존재다. 매번 엘리오에게 반응하는 올리버의 행동은 "처음부터 올리버가 너를 더 좋아했다"는 엄마의 말이 맞았음을 알게 한다.
물의 의미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물'은 둘의 사랑을 은밀하게 품는 물질이다. 물 가운데서 조각상에 건져지고, 이 조각상은 먼 과거의 사랑을 품은 것이며, 올리버와 엘리오는 함께 조각상을 어루만진다. 둘은 엘리오의 공간이라는 물가에서 처음으로 키스한다. 그 물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다. 이것은 둘의 마지막 여행에서 보이는 폭포수로 연결된다. 초반에 그들의 발치에 잔잔하게 고여있던 물은 마지막에 이르러 화면 가득 쏟아져 내린다. 카메라가 오로지 폭포수만을 가득히 비출 때, 영화가 이들의 사랑을 얼마나 힘껏 응원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아래를 뛰어가는 둘의 모습은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다.
넘쳐나는 에너지, 어긋나는 방향
엘리오와 올리버가 접촉한 뒤에는 늘 활력 넘치는 장면이 이어진다. 둘은 함께 유대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를 하고서 자전거로 집에 돌아온다. 이때 올리버가 엘리오의 어깨를 잠시 터치한다. 올리버의 손이 엘리오의 몸에 처음 닿은 순간이다. 재기 넘치는 음악이 터져 나오고, 그다음 장면에서 올리버는 살구 주스를 마시며 살구의 어원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는 어딘가 신이 나 보인다. 올리버가 말이 마쳤을 때 엘리오의 엄마와 아빠는 잠시 어색하게 침묵하며, 아버지 펄먼(마이클 스털버그)은 손으로 성호를 긋고 '완패'라고 말한다. 이때 눈에 띄는 것은 '엘리오와의 외출', 그리고 '주스를 들이켜고 수다를 떠는 올리버'로 이어지는 상승의 흐름이다. 엘리오와의 외출이 그의 상태를 상승시킨 것이다. 엄마의 침묵과 아빠의 패배 인정은 둘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향한 것일지도 모른다.
엘리오의 말(kind) 끝에 올리버가 물에 빠지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올리버는 댄스홀에서 신나게 춤추고 있다. 이것은 엘리오도 마찬가지다. 올리버를 떠올린 후 엘리오는 자주 마르치아와 데이트한다. 서로 간의 접촉은 그들을 흥분시키지만, 그 에너지는 서로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향한다. 마지막 데이트에서 엘리오와 키스한 후 올리버는 다시 한번 길가의 여성과 춤을 춘다. 이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엘리오는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토를 한다. 주변의 여성으로, 음식으로, 음악으로 향하는 그들의 어긋난 발산은 아름다운 동시에 서글프다.
엘리오의 도발과 변화
올리버에 대한 엘리오의 접근 방식은 꽤나 도발적이다. 아빠 펄먼은 조각을 보며 '불멸의 모호성', '도발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때 쇼파에 누운 엘리오의 모습이 비친다. 그는 바흐의 곡을 피아노로 칠 때조차 올리브를 유혹하는 듯 보인다.
첫 관계 후 서로를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 영화는 이들의 모습을 상하가 역전된 구도로(거꾸로) 찍는다. 이 장면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이 불안한 구도는 그들의 관계의 변화를 예고한다. 그 후 엘리오의 태도는 달라진다. 그는 대범했던 예전과 달리, 누군가 그들을 보지는 않을지, 간 밤의 소리를 마팔다가 듣지는 않았을지를 걱정한다. 그토록 갈망한 관계가 성립되자 엘리오는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는 충실하나, '관계'에는 서투르다.
반면 올리브는 엘리오의 반대에 가깝다. 그는 감정을 숨기고 절제하는 것에 능숙하며, 관계가 형성된 후 훨씬 대범하다. 광장에서 엘리오의 손을 잡기도 하고, (뒤의 할아버지를 신경 쓰지 않고) 너와 자서 행복하다는 말을 전한다. 이것은 올리브가 많은 사랑과 관계를 경험해 온 어른임을 느끼게 한다.
의미심장한 장면이 있다. 올리버는 화장실 문 앞에서 엘리오를 부른 뒤, 그를 애무하고서 "희망적"이라며 문을 닫는다. 이 장면은 그들의 관계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나눈 뒤, 문이 닫히는 형태로 종결될 것임을 드러낸다. 화장실의 문이 닫히는 장면은 마지막에 이르러, 올리버가 탄 기차의 문이 닫히는 것으로 연결된다. 첫 장면에서 올리버가 자고 있을 때 엘리오가 그의 방문을 열었던 것을 기억해 보자. 그들의 관계는 도발적인 엘리오가 문을 열고, 겁에 질린 엘리오를 위하여 올리버가 문을 닫는 형태로 끝이 난다.
응시하며 포용하는 여자들
이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은 그들의 관계에 주로 방해가 된다. 어린 여자들은 자신을 좋아하는 줄 알고 다가오고, 나이 많은 여자들은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방에서 일을 하는 할머니 '마팔다'다. 영화에서 외국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다른 인간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는데(엘리오의 부모들은 외국어에 능하다) 마팔다는 영어를 하지 못하며, 올리브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녀는 집을 나서는 엘리오에게 밤에 어딜 쏘다니냐고 꼬집는다. 엘리오가 올리브와의 관계 후 가장 먼저 의식하는 인물 역시 마팔다다.
엄마 아넬라는 기본적으로 아들의 감정을 이해한다. 올리버의 마음을 엘리오에게 전하는 것도, 마지막 여행을 추천하는 것도 아넬라다. 하지만 그녀는 아들이 언젠가 그 감정을 정리하길 바란다. 엘리오에게 (유대인임을 뜻하는) 별 목걸이를 하지 말라고 하고, 목걸이를 보고서 손으로 가리는 제스처를 한다. 남들과 다른 면을 감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둘의 관계 후 엘리오를 유심히 쳐다보기도 한다. 그녀의 마음을 올리브도 알았던 것 같다. 꼭 다시 돌아오라는 작별의 말에 올리브는 "말만 그런 거죠?"라고 되묻는다.
엘리오가 이별 후 울면서 전화를 할 때도, 뒤편에 앉은 할머니가 전화 내용을 엿듣고 있다. 여자들은 늘 그들의 관계를 응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엘리오의 사랑을 포용한다. 엄마는 우는 엘리오를 위로하고, 마르치아는 악수를 건넨다. 가장 뭉클한 장면은 이것이다. 마팔다와 친구들은 주방에서 수다를 떨며 이런 말들을 한다. 이제 세상은 변하고 있어요. 우리가 어쩌겠어요. 그저 지켜보자고요. 이것은 완고한 마팔다조차도 엘리오의 사랑을 포용하려 노력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어떤 남자들의 연대
남자들은 주로 조력자로 등장한다. 가장 큰 조력자는 물론 아빠 펄먼이다. 지금 몇 시냐는 올리브의 질문을 받은 뒤부터 엘리오는 자신의 시계를 신경 쓰는데(마르치아와의 관계 중에도 벗어 놓은 시계를 쳐다봄), 엘리오가 피아노에 시계를 놓고 가자 아빠가 다시 시계를 챙겨 준다. 엘리오가 올리브와 차에서 싸운 뒤 조수석에 앉지 말라고 하는데, 이때 아빠는 다시 올리브에게 조수석에 앉으라고 말한다. 펄먼은 둘의 관계가 틀어질 때마다 조용히 나타나 이를 원상태로 돌려놓는다.
늘 어디선가 나타나는 말 없는 할아버지도 그들을 따듯한 시선으로 응시하며, 그들의 자전거를 고쳐준다. 처음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쳐주는 곡은 바하가 '형을 위하여' 작곡하였다는 곡이다. 후에 올리브는 엘리오에게 '형에게서 배웠다는' 마사지를 해준다. 이 장면들은 '형'이란 단어가 가진 의미의 여백을 생각하게 한다. 마지막에 아빠는 엘리오와 유사했던 과거의 감정을 고백한다. 이 영화에는 서로를 응원하는 어떤 남자들 간의 은밀한 연대가 존재한다.
엘리오가 느낀 두려움의 이유
영화는 엘리오가 느끼는 두려움의 이유로 뚜렷한 사건이나 말을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오롯이 공기로서 전달된다. 이 평화로운 마을에는 동성애에 대한 사유가 없다. 그렇기에 엘리오의 감정은 오히려 부재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가깝다. 그는 낯설고 다른 것을 접하며 어찌할 바 몰라한다.
짐작컨대 엘리오는 동성애에 무지했던 것 같다. 그는 게이 커플이 선물한 옷을 입기 싫어하며, 펄먼은 그의 태도에 크게 화를 낸다. 그 후 똑같은 옷을 맞춰 입은 게이 커플 사이로, 엘리오가 선물 받은 옷을 입고서 춤추며 지나간다. 이는 게이 커플을 향한 조롱처럼 보이기도 하며, 다소 유치한 태도가 엿보인다. 그의 태도는 정치적이라기보다 감정적이다. 그는 아마 동성애에 대하여 줄곧 이런 태도를 가져왔던 것 같다. 낯설고 이질적이며 가벼이 대하던 그 무언가. 반면 그의 이런 태도는 자신이 가지는 두려움의 근원이라고도 볼 수 있다. 게이 커플에게 피아노를 쳐준 후 엘리오는 무심결에 시계를 두고 떠난다. 이 행동에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두려움이 묻어난다. 펄먼은 이것을 다시 아들에게 챙겨준다.
이것은 엘리오가 올리버의 놀림에 울음을 터뜨리던 장면으로 연결된다. 올리버는 살구에 자위를 한 엘리오에게 식물로 넘어간 것이냐고 놀려 댄다. 엘리오는 농담에도 웃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이질적인 성애에 대한 올리버의 농담은 본의 아니게 엘리오의 두려움을 건드린 것이다. 반면 올리버는 스스로를 동물이라고 할 정도로 이런 농담에 익숙해 보인다. 올리버는 혼란스러워 하는 엘리오를 따듯하게 안아준다.
관계의 단절과 은폐
바다에서 엘리오가 악수를 건네자 올리버는 조각의 손을 건넨다. 그들은 온전히 연결되지 못하고 무언가를 사이에 두고서 접촉한다. 반면 벽장 밑, 어두운 골목처럼 단 둘이 있을 때 그들은 편안히 몸을 맞댄다. 그렇기에 그들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은폐성을 띤다. 그들의 관계는 단절되고 은폐되며 고립된 곳으로 이끌린다(둘이 떠난 마지막 여행).
이 영화의 세계는 줄곧 그들을 방해한다. 음악의 선율은 갑작스레 끝나기 일쑤다. 둘이 함께 자전거를 갈 때, 함께 산을 오를 때 들리던 음악은 다음 장면에서 갑작스레 끊어진다. 침대에 잠든 엘리오를 올리버가 지그시 바라볼 때 불현듯 기차의 경적 소리가 그들을 방해한다. 뒤돌아보는 올리버의 모습 뒤에 기차가 오는 장면이 이어진다. 둘은 평화롭던 침대에서 갑작스럽게 이별의 장소로 끌려간다. 올리버가 기차에 타자 차장이 문을 닫는다. 영화의 세계는 그들 사이를 무심히도 끊어놓는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이유
서로를 향하여 던진 그들의 사랑은 상대를 향하여 뻗어나가지 못하고 좌절되기에, 그저 자기의 주변에 머물게 된다. 강하게 던진 막대기가 벽에 부딪히고 튕겨 나오면 자신의 발치에 되돌아오는 것과 비슷하다. 그들을 둘러싼 단절과 은폐의 벽은 그들의 사랑이 마치 부메랑처럼 자기 주변에만 맴돌게 한다. 그렇기에 상대를 향한 호명은 자신에 대한 외침으로 굴절된다. 상대를 향한 사랑이 좌절되고 굴곡되어 자기애적 사랑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이는 엘리오가 살구에 자위를 하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영화에서 엘리오는 줄곧 살구와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올리버는 엘리오와 만나고서 살구 주스를 마신다. 영화는 엘리오의 주변에 파리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파리의 소리까지 넣어가며). 그 이유는 아버지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쳐다봐주는 사람도 없어지니 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하라는 말. 한창 감정이 무르익은 아름다운 시기의 엘리오는 살구와 동일시된다. 그런 그가 살구에 자위를 하는 것은 자기애적인 성애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자신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과 비슷한 행위다. 그러므로 자신의 이름을 호명하는 행위는, 단절되고 유폐된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올리버의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자고 먼저 제안한 것은 올리버다. 올리버는 때때로 옆구리에 난 상처를 본다. 이것은 펄먼이 엘리오에게 말하던 '상처가 아프다고 떼어내선 안 된다'는 가르침과 연결된다. 올리버는 펄먼의 생각대로 아픈 감정을 느끼고 감내하는 성숙한 인간이다. 그는 아마도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쉽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올리버는 서로의 이름을 소리내어 부르는 대신 각자의 이름을 부르자고 한다. 이것을 올리버가 자신의 셔츠를 엘리오에게 주는 것과 비슷한 행위다. 엘리오는 기뻐하며 셔츠를 입는데, 이는 게이 커플의 옷을 끝내 싫어하던 모습과 대조된다. 하지만 그는 셔츠를 입고서도 마르티아의 질문에(우리 사귀는 사이 맞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자는 제안은, 노출을 두려워하는 엘리오를 위하여 올리버가 제안하는 호명법이다.
너의 아름다운 시기를 위하여
엘리오는 열렬히 사랑하고도 싶고, 낯선 관계에 겁을 먹기도 하는 17세의 소년이다. 영화는 세상의 차가운 속성을 숨기지 않기에 그의 사랑은 끊임없이 단절되고 고립된다. 그러나 루카 구아다니노는 그러는 중간에도 계속해서 그들에게 따듯한 말을 건넨다. 엘리오의 엄마, 아빠, 마르티아, 심지어는 물을 건네는 친절한 아주머니까지. 이 영화적 세계는 목소리를 바꿔가며 계속해서 그들을 다독인다. 그것은 마지막에 이르러 펄먼의 말로 마무리된다. 가장 예민하고도 아름다운 시기, 너의 감정을 놓치지 말고 모두 느끼고 기억하라는 이야기 말이다.
이제 이곳에는 온통 눈이 내린다. 그것은 엘리오와 올리버가 바라보던 폭포수가 얼어서 떨어지는 모습 같기도 하다. 이때 엘리오가 쇼파에 누워서 고개를 뒤로 젖힌다. 거꾸로 보이는 그의 얼굴은 결정적인 장면을 연상시킨다.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라고 속삭이던 장면 말이다. 이에 응답하듯 전화벨이 울리고, 올리버의 음성이 들려온다. 둘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이렇게 상대에 대한 기억은 각자의 이름에 각인된다.
마지막 순간, 엘리오는 불 앞에 앉아 있다. 일렁이는 불, 터져 나오는 눈물. 그는 분명 이 순간을 생생히 감각하고 있는 것 같다. 불빛에 비친 그의 얼굴이 아름다워 보인다면, 그건 이 장면이 우리의 어떤 순간을 회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뜨거워서 아프고도 생생했던 어떤 순간들 말이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그렇게 살아있는 감정들을 채색하는 데 성공한다. 영화가 끝나기 직전, 뒤편의 누군가가 엘리오의 이름을 부른다. 엘리오. 그 순간 우리는 그들이 사랑을 속삭이던 아름다운 장면 앞으로 소환된다. 다시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