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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May 12. 2024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진화를 이뤄낼 수 있을까?

관객을 유혹하기 위한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의 전략

※'스브스 프리미엄'에 기고한 글입니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스틸컷

진화하는 유인원. 위기를 맞은 인류. 두 종 사이의 전쟁. 역동하는 세계. <혹성탈출> 시리즈가 다시 돌아왔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로.


이 영화는 <아바타: 물의 길>(2022)에 이어 블록버스터 시리즈의 계보를 잇는 또 하나의 속편으로 꼽힌다. 뚜껑을 열어보니 장단점이 있지만, 제법 준수하다는 인상이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CG(컴퓨터 그래픽)가 놀랍고, 영화가 펼치는 대서사시는 비록 익숙하지만 웅장하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이 영화의 테마다. 바로 '진화와 전쟁'.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에서 유인원은 진화를 욕망하며, 그것을 위해 전쟁을 벌인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것은 영화의 태도와 일치한다.


이 영화는 시리즈의 진화를 욕망한다. <혹성탈출> 시리즈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러닝타임 동안 자기만의 전쟁을 벌인다. 관객인 우리를 붙잡기 위한 은밀한 전쟁. 영화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당신을 유혹하고, 시리즈를 영속시킬 전략 말이다. 아래부터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내용에 관한 스포일링이 있으니 유의해 읽어주기를 바란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스틸컷

먼저 영화는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새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한다. 전편의 영웅 '시저(앤디 서키스)'는 사라졌고, '노아(오웬 티그)'가 나타났다. 그러면서 방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런데 이것이 얼핏 새로울지 몰라도,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익숙하다. 우리가 익히 아는 신화 혹은 역사를 재료로 썼기 때문이다.


노아와 아버지의 이야기는 익숙한 부계 서사다. 엄격한 아버지. 인정받고 싶은 아들. 아버지의 희생적인 죽음. 복수의 칼을 가는 아들. 스승과의 만남. 마침내 성장해 아버지의 뒤를 잇는 남자. 이토록 익숙한 이야기가 새롭게 보이는 이유는, 유인원을 중심으로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프록시무스(케빈 듀랜드)의 통치는 로마시대를 연상하게 한다. 그는 죽은 시저의 뜻을 왜곡해 폭력을 행사하며 자신을 '새로운 시저'라고 칭한다. 죽은 시저를 잇는다는 뜻이겠지만, 로마시대 전제군주를 의미하는 '시저'도 연상된다. 둘의 발음이 같다는 점은 이야기의 연결쇠로 작용한다.


부족을 이끄는 노아를 볼 때는, 두말할 것 없이 '노아의 방주'가 떠오른다. 그는 물을 헤치고 자기 부족을 구원의 길로 이끈다. 마지막에 메이(프레야 앨런)가 푸른 옷을 입고 말을 타고 와 노아와 만나는 장면은, 메시아와의 만남을 연상케 한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익히 아는 서사를 풍성하게 가져와, 재주 좋게 엮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다. 손님이 먹어본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창조한 셈이다. 익숙함에 기반하되 새롭게. 그것이 영화가 구사하는 첫 번째 전략이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스틸컷

다음으로 영화는 CG에 승부를 건다. 유인원의 표정, 동작, 발자국, 털 한 올까지 모두 생생하다. 어디까지 허구(CG)고, 어디부터 실사인지 헷갈릴 정도다. 재밌는 건 실사가 분명한 부분이 도리어 CG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메이가 햇살을 받고 앉아 있을 때, 이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완벽한 이미지 같다.


영화에서 유인원과 인류의 지위가 뒤바뀐 것처럼, 실사와 CG의 위치도 뒤집어져 분간하기 힘들다. 적어도 스크린 위에서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가 선보이는 이미지는 모두 현실로 보인다. 영화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게 보여줄 것. 그것이 영화가 구사하는 두 번째 전략이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다음 챕터를 열기 위한 포석을 깐다. 엔딩 장면에 노아와 메이가 등장한다. 이들은 비슷한 듯 다르다. 노아와 메이는 각각 유인원과 인간을 우선에 둔다. 하지만 다른 종을 경계하면서도, 함께 어울리며 우정을 쌓는다는 점은 비슷하다. 이들이 지속적인 공생을 바랄지는 미지수다. 노아와 메이는 같고도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전개가 가능하다. 다음 편을 위한 가능성을 폭넓게 열어두는 것.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의 마지막 전략이다.


어쩌면 이것은 최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리즈가 공유하는 공식일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서사를 엮어 스토리를 짜고, CG에 공을 들여 멋진 비주얼을 뽑아내고, 다음 속편이 잘 나올 수 있도록 가능성을 남기는 것. <아바타: 물의 길>도 이 공식을 그대로 따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알려진 전략이라 하여, 구사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주어진 미션을 야무지게 달성한다. 그렇다면 다시 묻자. 이 영화가 관객을 사로잡고, <혹성탈출> 시리즈의 진화를 이뤄낼 수 있을까? 내 대답은 긍정이다.


※ 원문 https://premium.sbs.co.kr/article/V_MgmdTW8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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