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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May 30. 2024

K-콘텐츠의 계급비판은 낡았다, <The 8 Show>

한재림 감독이 연출한 <The 8 Show>를 보고 든 생각.


<The 8 Show> 예고편 캡처

사실 이 작품은 현대사회의 계급을 꽤 정치하고 세밀하게 풍자하며, 재미있는 우화극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한계가 엿보이는데, 이는 사실 <The 8 Show>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 등장하는 기획형 K-콘텐츠의 공통된 특성이다. 그러므로 <The 8 Show>를 내세워 이런 글을 쓰는 게 자칫 억울하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틀린 말도 아니니까 그냥 시원하게 말해보겠다.


 <The 8 Show>에서 엿보이는 K-콘텐츠의 한계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물리적으로 지나치게 잔인하며, 참혹한 정서를 쥐어짜 낸다. 이에 관한 내용 <PD저널>에 기고한 글에 담았고 곧 발행된다.


두 번째는 사회 구조를 비판한답시고 이미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이야기를 들고 나와 포장만 바꿔 끼워 판다는 것이다. 지금 사회의 빈부격차가 심화되다 못해 계급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 인간 존중이라는 우아한 허울 뒤로 서로의 존엄을 철저히 짓밟는 일들이 버젓이 자행된다는 것. 뉴스에서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기에 이 명제를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콘텐츠로 소비된 지 벌써 얼마인가. 대충 생각해도 영화 <기생충>(2019),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2021) 등이 떠오른다. 모두가 동의하는 명제라는 것은 그만큼 익숙하다는 것이다.


다만  <The 8 Show>는 8개의 단계로 계급을 세분화했고, 이들이 이리저리 연합하는 상황을 예리하게 가정해 연출한다. 또 스스로를 상품으로 전시하고 착취하는 현상도 폭로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솔직히 익숙하다. 그러니까 <The 8 Show>는 아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상징화했다는 점에서 인정받을 만하지만,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포착해 새롭게 제시하지는 못한다.


문제는 이런 한계가 최근 한국 콘텐츠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들은 대게 뭉툭하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 산재한 구조적 문제들, 이를테면 부동산을 둘러싼 갈등, 투자를 향한 절박한 열기와 그로 인해 파괴되는 것들, 더욱 기괴하게 심화되는 학벌주의, 플랫폼과 IT 산업에 나타나는 변화, 이 모든 것들 뒤로 펼쳐지는 자본의 은밀한 세습을 건드리지 못한다. 


다만 계급을 투박하게 나누고 위 쪽이 아래쪽을 착취하고 학대하는 현상을 선정적으로 연출하며 이슈몰이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생각해 보자. 최근 나온 작품 중에서 한국의 구조적 문제를 새로운 시선으로 짚어,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 작품이 뭐가 있었나. 대형 투자사의 투자를 받고 나온 작품 중에는 없다시피 하다. 독립 작품 중에는 이런 구조에 아래 놓인 개인의 무기력한 초상을 보여주는 작품이 몇 눈에 띌 뿐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다루기 편한 과거로 돌아가, 역사를 다룬 작품들은 늘어나고 있다. 


예술은 우리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콘텐츠판의 거울은 너무 흐릿하거나 왜곡됐다. 보기에는 재밌으나, 보는 이를 선명하게 비추지 못한다. 이미 낡을 대로 낡은 투박한 계급론에 약간의 채색을 가미한 다음에, '현대 사회 풍자'라는 간판을 들고 나오는 것이 민망하지 않은가? 우리의 현재를 인지하고 예술로 표현하는 것과, 계급 격차를 활용해 말초적인 자극을 쥐어짜는 것. 지금의 콘텐츠들이 이 둘 중 어느 쪽에 진짜 관심이 있는 건지 궁금하다. 후자라면 이건 너무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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