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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Mar 24. 2018

안시환 평론가의 <패터슨> 비평에 대한 단상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21>에 기고된 안시환 평론가의 <패터슨> 비평('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패터슨>이 묻는다' http://www.cine21.com/news/view/?idx=6&mag_id=89159)을 읽었다. 예전에도 읽었지만 어제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찾아 읽은 것인데, 읽기를 마치고서야 다시 찾아본 이유가 떠올랐다.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서 간단한 요약을 하자면, <패터슨>은 동일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 '차이'의 반복을 끄집어내었고 우리의 일상을 예술화하는 데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영화 <패터슨>을 보며 매일 반복되는 단순한 삶이 예술과 맞닿을 수 있음을 본다. 그리고 영화가 매일의 차이를 섬세하게 포착하는 것 역시 자명해 보인다. 분명 패터슨의 일상 속 작은 차이는 영화 여기저기에 산재 해 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의심이 든다. 과연 이 영화의 성취는 그런 '차이'에서 오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고 본다면 이 영화는 기만적이다. 우리가 패터슨의 일상을 보며 매일의 차이를 예민하게 느끼는 이유는 이 영화가 제시하는 '시간'과, 그것이 유지하는 '거리'에 있다.

영화는 단 일주일의 시간 동안 패터슨을 지켜본다. 그의 일상 속 차이들(성냥갑을 보고, 어린 소녀와 마주치고, 동료의 불만을 듣는 것)이 흥미롭게 보이는 이유는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처음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그의 일상을 10년간 지켜보게 된다면 어떨까. 새로운 것들도 점차 반복되며 어느 순간에는 패턴을 그린다. 동료의 불만도 예측 가능해지고 버스 손님들의 이야기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매일의 일상이 흥미로운 이유이자, 나이 든 사람들이 "어차피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고 말하는 이유다. 물론 예민한 시선은 작은 차이조차 흥미로운 사건으로 보이게 하지만, 그것들은 한없이 긴 시간 앞에 종국에는 바래진다. <패터슨>은 딱 일주일, 그러니까 그의 일상이 다채롭게 느껴질 시간만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또한 영화는 일상 속 에피소드가 선명하게 보이는 거리를 유지한다. 패터슨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달아나서 그를 지켜본다고 가정해 보자. 어느 순간부터 일상 속 작은 차이들은 보이지 않을 것이며, 그의 하루는 패터슨 시를 돌고 도는 버스 노선으로 단조롭게 반복될 것이다. 우리가 그의 하루는 흥미롭게 지켜보면서도, 스스로의 일상은 무료하다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에게 짐 자무쉬의 눈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을 반복해 온 시간과 그것으로부터의 거리가, <패터슨>의 그것과 비교도 안 되게 길고, 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이 영화의 성취가 일상의 '차이'에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시간과 거리의 마법에 빚진 기만적인 성과다.



그러나 적어도 내게 있어 <패터슨>은 기만적이지 않다. 오히려 영화는 매우 단단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무언가를 응시한다. 패터슨의 창작 행위는 아름답지만 어딘가 불안한 정념이 일렁인다. 노트 가득 채운 시들은 고작 개의 장난에 산산조각 나고, 일본인이 건넨 노트의 공백은 광활한 가능성을 지닌 동시에 '아무것도 없음'을 드러낸다. 오히려 그의 일상을 예술화 하는 것은 매일 타는 버스와 매일 걷는 산책길이다. 언제나 같은 곳에 존재하는 그 길. 바다가 물결을 삼키며 제자리를 지키 길은 같은 곳에서 조금씩 흔들리는 패터슨의 일상을 단단하게 붙잡는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은 안시환 평론가가 언급한 이중 인화 장면(시를 쓸 때마다 패터슨이 바라본 대상과 시를 쓰는 노트, 그리고 패터슨의 모습을 이중 인화하여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의 근거에 동의하고 결론에 부동의 하는 셈이다. 이 장면들은 익숙한 길에 낯선 영감이 찾아오는 순간을 시각화한다. 일상과 예술이 합일되는 아름다운 순간. 이 순간들은 매번 홀연히 사라진다. 그러나 길은 늘 같은 곳에 있기에 패터슨은 내일도 그 길을 걷을 것이고, 새로운 영감을 한 줄의 시로 남길 것이다. 산산조각 난 시집을 앞에 두고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오로지 반복되는 것들, 자리를 지키는 것들이 이 영화를 지탱하며 추동하고, 다시 찾아올 시를 묵묵히 기다린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언제나처럼 패터슨은 그 길에 있을 것이다. '패터슨 시'에 있는 '패터슨'을 보여주는 영화 <패터슨>. 반복되는 것들이 있기에 그 틈을 비집고 사유가 찾아들어 우리의 하루를 흔들고 채색한다. 매일을 조금씩 다른 색으로. <패터슨>은 수 없는 반복을 긍정하며 그 틈새를 물끄럼히 응시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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