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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Mar 15. 2021

과거가 현재를 침범할 때, <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콜> 스틸이미지

지난 11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콜>을 걸작이라고 평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자신만의 작고 단단한 성취를 거뒀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이 영화는 하나의 감각에 집중해 그것을 자신만의 이미지로 표현해내고야 만다. 그것은 바로 ‘침범’의 감각이다. 열리지 말아야 했던 문이 열리고,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듯 과거가 현재를 먹어 삼키며, 혼자만의 작은 비밀이 안온해야 할 일상을 송두리째 뒤엎을 때 느껴지는 오싹한 침범의 감각. <콜>은 그 감각을 관객의 각막에 새기는 데 성공한다. 

<콜>의 줄거리는 이렇다. 영화는 잘못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다. 2019년대에 살고 있는 서연(박신혜)은 우연히 옛 집을 찾았다가, 1999년에 살고 있는 영숙(전종서)으로부터 전화를 받게 된다. 20년의 시간차가 있음에도 동갑내기인 둘은 곧 가까운 친구가 된다. 영숙은 과거를 바꾸어서 죽었던 서연의 아버지를 살려주고, 서연도 영숙에게 벌어질 비극을 미리 알려주어 미래를 바꾼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곧 삐걱대기 시작한다. 자신의 범죄에 서연을 끌어들이던 영숙은 그녀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자 그녀를 집요하게 협박하기 시작한다. 서연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던 전화는 이제, 그녀를 옥죄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


영화 <콜> 스틸이미지

영화 <콜>은 영숙과 서연이 시간차를 두고 공유한 하나의 주택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서연이 처음 옛 집에 들어설 때, 그 장면은 천장에서 내려보듯 찍는 부감 샷으로 찍혔다. 이 장면에서 서연은 마치 좁은 새 장에 갇힌 것처럼 보이는데, 그녀가 곧 이 집에서 비극적 사건을 겪을 것이며 그 사건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하리란 것을 예고하는 것 같다. 

서연과 영숙의 전화가 시작되며, 서연은 집의 벽면에서 지하실로 향하는 커다란 구멍을 찾게 된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에서도 그랬듯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이 숨겨둔 음습한 비밀이 드러나는 통로로 비유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서연이 통화에서 영숙의 비명을 들은 후, 이 계단에서 서서히 불이 피어올라 서연을 덮쳐오는 장면만은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 이 이미지는 잘못 열린 통로를 통하여 과거의 무언가가 현재를 향해 침범해 오리라는 것을 선언한다. 또 화기(火氣)가 가득한 그 접촉이 결국 서연에게 뜨거운 상흔을 입힐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듯하다. 결국 영화 후반부에 서연은 영숙의 공격을 받아 말 그대로 ‘화를 입게’ 된다. 소통이 침범으로 이어지고, 종국에 흉터를 남기는 것이다.

영숙의 선택으로 바뀌는 서연의 미래는 시시각각 바뀌는 집의 모습을 통해 시각화된다. 변화의 과정은 CG를 통해 표현되는데, 이 이미지가 그다지 놀랍지는 않다. 그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서연과 영숙이 집을 통해 둘만의 소통을 이어가는 과정이다. 벽에 남긴 손자국 자국을 발견하고, 앞마당에 묻은 과자상자를 찾으면서 둘은 이 집을 하나의 놀이공간처럼 아기자기하게 활용하며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나 후반부에 이르러 영숙은 집의 바닥에 피처럼 붉은 글자를 바닥에 새겨서 서연에게 협박성 메시지를 전한다. 애정과 증오의 말은 저택의 몸통을 통해 전달된다. 그렇게 둘 사이의 소통의 도구는 작은 전화기에서, 그들이 머무는 집 전체로 확대된다. 결국 둘은 직접 대면해 서로를 해치려 들기에 이른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접속은 결국 비극을 불러온다.  


영화 <몸값> 스틸이미지

이런 서사적 특징은 이충현 감독의 전작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콜>을 찍은 이충현 감독은 2015년 단편영화 <몸 값>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몸 값>과 <콜>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는데, 가볍게 시작된 만남이 충격적인 결과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닮았다. 그러니까 이충현 감독은 모든 접속과 소통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연히 찾아온 접속은 관계를 만들어내고, 어느 순간부터 주인공은 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손댈 수 없이 제멋대로 변화하는 관계는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그 우연과 파국 사이에서 이 감독의 시선이 머무는 듯하다. 그리고 주인공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긴장과, 둘 사이의 균형이 마침내 무너져 쩍하고 균열이 벌어지는 순간을 <콜>은 응시한다.


영화 <콜> 스틸이미지

영화에서 배우들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주지만 전종서의 연기는 특히 인상적이다. <버닝>(2018)으로 주목받은 그녀는 이 작품으로 광기어린 영숙의 모습을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소화한다. 상대를 흥미롭게 관찰하는 차가운 눈빛, 신경질적이고 과장된 동작, 아이 같으면서도 동물적인 제스쳐까지. 그녀가 연기하는 영숙은 갇힌 공간에서 뛰쳐나와 누군가를 향해 돌진하는 기이한 습성을 완벽하게 체화하며, 이 영화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그렇게 전종서는 계산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몸에 새겨진 듯한 아우라로 새로운 악역 하나를 창조해낸다. 

영화의 마지막은 둘 사이의 인연이 끊어지지 않으리란 점을 암시한다. 이 영화의 제목인 ‘콜(Call)’은 전화 통화를 의미하는 동시에 누군가를 ‘부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마치 애증 관계의 연인처럼 영숙은 다시 기어코 서연을 불러낼 것이다. 그렇게 부름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우연한 접속과 잘못된 소환,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번져가는 비극. 넘어오지 말아야 할 것의 범람, 다른 말로 침범. <콜>은 그 침순간을 영화로 표현하기 위해 골몰한다. 그리고 집과 불의 이미지를 통해 마침내 그 목표에 가닿는다. 그거 알아? 어떤 부름은, 따끔한 침범의 감각으로 남는단다. 영화 <콜>은 그렇게 우리에게 속삭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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