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의 '스브스 프리미엄'에 기고한 글입니다
팀 버튼은 재미있는 감독이다. 그의 작품에 대단히 감격한 적 없지만, 신작이 나올 때마다 또 기다려진다. 그건 아마도 하나의 장르가 되어 버렸을 정도로 그의 작품 세계가 독특하기 때문일 것이다.
팀 버튼은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2016),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 <가위손>(1991) 등 필모그래피도 화려하다. 그중에서도 젊을 적 손길이 느껴지는 <비틀쥬스>(1988)는 독특하다. 팀 버튼이 창조해 낸 기이하고도 유쾌한 사후 세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상상력의 감독답게 저승마저 기이하고 사랑스럽게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작품이 무려 36년 만에 속편으로 돌아왔다. 이름은 <비틀쥬스 비틀쥬스>. 작품을 본 관객이라면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를 이해할 것이다. 이것은 주인공의 이름이자, 그를 호명하는 주문이다. 또 이어질 시리즈에 대한 예고이기도 하다(다음 속편의 이름은 당연히 '비틀쥬스 비틀쥬스 비틀쥬스'가 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는 아주 오랜만에 돌아온 작품에서 아쉬움을 느낀다.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 팀 버튼의 저승은 더욱 화려해졌지만 특유의 감성은 오히려 옅어졌다. 이 점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이어지는 글에는 <비틀쥬스 비틀쥬스>와 전작 <비틀쥬스>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해 읽어주길 바란다.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 팀 버튼은 전작에 대한 '재탕'을 서슴지 않는다. 전작의 인물과 세계관은 물론, 주된 재미 요소가 그대로 반복된다. 그런데 사실 자기 복제 자체는 큰 문제가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재탕'할 부분과 '리뉴얼'할 부분을 영리하게 구분하는 능력이다. 시리즈의 핵심 가치는 이어져야 하고, 장식적인 부분은 과감하게 바꾸어 신선도를 유지해야 한다.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 전작에 이어 주인공 비틀쥬스(마이클 키튼)와 리디아(위노나 라이더)가 등장했다. 또 이 작품은 전작의 진행을 그대로 따라간다. 어린아이가 저승 세계에 대해 알게 되고, 어떠한 이유로 그곳에 가게 되고, 깜짝 반전 등장, 이승으로 돌아오는 구조다.
'비틀쥬스' 시리즈에서는 이 '반전'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두 영화의 반전을 한번 비교해 보자. 1편 <비틀쥬스>의 경우 유령 아담(알렉 볼드윈)과 바바라(지나 데이비스)는 있는 힘껏 사람을 놀라게 하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그런 트릭을 재미있어한다. 심지어 리디아는 귀신에게 더 애착을 느끼고, 그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동분서주한다.
흔히 생각하는 유령은 무섭거나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 그러나 이곳의 귀신은 어수룩하고 따듯해서, 인간보다 더 인간미 넘친다. 이것은 (유령에 대한) 인식의 반전이다.
<비틀쥬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리디아는 유령 부부와 함께 춤을 춘다. 이 장면이 특히 신나는 이유는, 그녀가 함께할 수 없는 존재들과 춤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순간의 쾌감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허물어진 채로 다 함께 몸을 흔드는 그 순수한 유희에서 온다. 저승의 문을 조심스레 연 팀 버튼은, 마지막에 이르러 문짝을 완전히 떼어내고 두 세계의 구분을 지운 채로 즐거워한다.
한편 2편 <비틀쥬스 비틀쥬스>에서 반전은 아스트리드(제나 오르테가)의 남자친구에 숨어 있다. 돌아가신 아빠를 만나게 해 주겠다던 그의 말은 거짓으로 밝혀진다. 이것은 정체의 반전이다.
그러나 1편의 반전에 비교한다면, 이것은 다소 깊이가 얕다. 등장인물에 대한 생각이 바뀔 때(<비틀쥬스 비틀쥬스>) 보다는, 오랜 고정관념이 깨어질 때(<비틀쥬스>) 관객이 느끼는 충격과 쾌감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신나는 댄스 장면이 등장한다. 영혼들이 타는 기차, '소울 트레인'에서는 소울 음악이 울려 퍼지고 유령들이 어깨를 들썩인다. 하지만 이 역시 전작의 댄스 장면에 비해 인상적이지 않다. 두 세계의 경계 위에서 몸을 흔들던 팀 버튼은, 이제 '소울(soul, 영혼을 의미하는 동시에 음악의 한 장르를 지칭한다)'이라는 단어로 장난을 친다. 그 춤은 여전히 흥겹지만 어쩐지 싱겁다.
영화의 막바지 결혼식 장면은 전작에 비해 훨씬 화려하다. 모니카 벨루치의 등장도 이번 작품에 색을 덧칠한다. 마지막에 이르러 비틀쥬스를 비롯한 유령은 사라지고, 갈등은 완전히 봉합된다. 이승과 저승은 안전하게 분리된다. 아쉽지만 여기에는 전작에 감돌았던 여운이 없다.
팀 버튼은 줄기차게 크리쳐와 귀신이 오가는 으스스한 세계를 선보여 왔다. 그런데 이 세계가 매력적인 이유는 단순히 뛰어난 상상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이곳이 현실의 인식을 다각도로 엎는 기발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팀 버튼의 근사한 작품 <빅 피쉬>(2004)에서 진정한 감동은 마지막의 반전에서 오는 것처럼.
그렇다면 <비틀쥬스 비틀쥬스>는 실패한 작품일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사랑스럽고 징그럽고 조악하며 멋들어진 저승 세계는 여전하니까. 다만 이번 작품이 어쩐지 심심하다고 느낀 관객에게, 36년 전의 <비틀쥬스>를 조심히 권하고 싶다. 더 작고 초라하지만 진한 냄새를 풍기는, 팀 버튼 날 것의 세계가 여기 있다.
원문 https://premium.sbs.co.kr/article/KrWKoOv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