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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Oct 02. 2024

<베테랑2>, 응원하는 이유

※ 'PD저널'에 기고한 글입니다

<베테랑2> 스틸컷

<베테랑>(2015)에 이어 <베테랑2>가 약 10년 만에 돌아왔다. 류승완도 인정하듯 전작이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는 선악의 대비가 뚜렷하고, 악을 추격하고 포획하는 과정의 쾌감에 상당하다는 데 있다. 이토록 선명한 스토리라인 위에서 "어이가 없네"를 비롯해 다양한 밈이 쏟아져 나왔다. 말하자면 <베테랑>은 대중이 편안하게 즐기기에 최적화 된 형사 액션물이다.


그래서 <베테랑2>는 전작의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개봉한 날에 기대는 깨어졌다. 선악의 대비는 이전보다 흐릿하고, 범죄자를 때리는 맛은 충분히 통쾌하지 않다. 대신 <베테랑2>는 동시대의 이슈를 짚고, 개성 있는 액션 시퀀스를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베테랑2>는 단순히 전작보다 성숙하고 재미 없는 작품이 아니다. 여기에는 한때 충무로의 액션 키즈라 불렸던 류승완의 새로운 고민이 있고, 그걸 드러내는 연출이 있다. 이런 부분을 이야기한 다음에야 <베테랑2>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아래부터는 <베테랑2>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해 읽어주길 바란다. 


<베테랑2> 스틸컷

<베테랑2>에서 가장 두드러진 연출은 '텍스트(문자)'를 활용한 부분이다. 가령 선우(정해인)가 형사들에게 강훈(안보현)의 전적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일 때, 그의 얼굴 위로 글자가 겹쳐 보인다. 단순히 우연이라 생각하기에 그 글씨는  너무 또렷하다. 선우가 폭주족을 공격해 사적인 복수를 감행할 때도, 오토바이가 질주하는 도로 위로 글자가 지나간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순간에 류승완은 영상 위로 텍스트를 새긴다. 류승완의 전작들을 생각할 때 이례적인 연출이다. 


최근의 콘텐츠 환경에서 영상과 글자의 결합은 흔하다. 라이브 방송이 대표적인 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매체의 라이브 방송에서 시청자는 수시로 채팅을 통해 소통하고, 그 글자들은 라이브 방송의 한켠에 마치 콘텐츠의 일부처럼 덧입혀진다. 


류승완은 이런 현상을 유심히 보고, 그것을 영화에 녹여낸다. 다만 <베테랑2>에서 텍스트는 주로 범죄를 쫓아간다. 파렴치한 범죄자 석우(정만식)가 퇴소할 때, '정의부장'(신승환)이 시청자를 선동할 때에도 그들을 담은 영상 위로 글자가 쏟아진다. 이 세계에서 텍스트는 오로지 범죄가 일으키는 자극에 전율하고 그것을 향해 모여드는 피라냐 떼에 가깝다.


<베테랑2> 스틸컷

또한 <베테랑2>에서 특히 두드러진 것은 바로 '입'이다. 입은 음성화 된 텍스트가 흘러나오는 출구다. 그러니 텍스트를 바라보던 류승완이 입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영화에서 해치는 마지막 살인을 시도할 때, 검은 마스크를 끼고 있다. 영화에서 마스크를 낀 것은 그가 유일하다. 이 때 우리는 도리어 마스크 뒤에 숨은 입에 주목하게 된다. 


해치와 도철(황정민)은 살인이 예비된 장소에 도착하는데, 이곳은 온통 검은 동굴이다. 검고 깊은 동굴은, 검은 마스크 뒤에 숨겨진 해치의 입을 연상시킨다. 이곳은 최후의 살인을 위한 공간이다. 그러니까 결국 '입'은, 자극만 쫓으며 날선 언어를 쏟아내는 인간의 입은, 사람을 죽이는 최후의 장소인 셈이다. 


또한 해치가 검은 마스크를 쓸 때, 입과 다른 의미에서 부각되는 것이 '눈'이다. 핏발이 선 채로 사람을 죽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눈. 범죄의 현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 그 눈은 피해자가 괴로움에 몸부림 치는 순간을 차분하고 집요하게 응시하며 그 순간을 즐긴다. 


이어 류승완의 관심은 '스크린'으로 옮겨간다. 마지막 순간 해치와 도철이 싸울 때, 해치는 도철의 얼굴을 하얀 장막(기억의 문제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을 향해 밀어넣는다. 도철은 입과 코가 막힌 채 숨쉬지 못해 괴로워한다. 사람을 질식시키는 이 하이얀 막은 영화관의 스크린을 연상시킨다. 그러니까 자극만을 추구하는 눈이 도착하는 최후의 장소는 바로 영화관의 스크린이라고, 그것은 기어이 인간을 파멸시킬 것이라고 류승완은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해법 또한 영화 안에서 제시한다. 해치와 도철이 대결하는 곳에 도철의 동료들이 도착할 때, 이 징그러운 장막은 찢어지고 도철은 다시 숨 쉰다. 자극에 물든 스크린으로부터 인간을 구해내는 것은 다른 이들과의 연대인 셈이다.


그러니  <베테랑2>는 범죄 마저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자극에 굶주린 현대인들과 그들이 뱉어내는 언어, 그들의 시선을 쫓아가는 영화다. 또 이런 현상이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우리가 서로를 돕는다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이 다는 아니다.


<베테랑2> 스틸컷

위에 말한 모든 것을 압도하며 <베테랑2>를 은근하게 뒤덮는 것은 "잘 모르겠다"는 정서다. 파렴치한 범죄자와, 그들을 골라 응징하는 해치 중에 누가 진정한 악인인지 알 수 없다. 사적 복수를 옹호하는 쪽과, 살인은 모두 나쁘다는 보는 쪽. 도철은 후자를 수호하지만, 그의 마음은 종종 경계를 넘어 전자에 다가간다. 주목을 끄는 범죄 앞에서 형사와 관중을 구분하기 어렵다. 직접 살인하는 해치와 그것을 부추기는 정의부장 사이에 누가 더 나쁜가? 경계는 자꾸만 흐려지고 기준은 허물어진다. 실은 잘 모르겠어. 영화는 혼잣말을 한다. 


전작에서 나쁜 놈들 사이를 경쾌하게 질주하던 <베테랑>은 10년 만에 전혀 다른 표정으로 돌아왔다. 선명한 악(惡)을 좇고 패던 영화는 이제 안개 사이를 더듬으며 이리저리 주먹을 뻗는다. 도철은 종종 미끄러지고 때로 얻어맞는다. 악의 정체가 불문명한 세계에서는 뚜렷한 선도 없는 법이다. 


그리고 이런 불분명함이 아쉽다는 반응도 있을 수 있다. 영화적 쾌감이 덜하기 때문이다. 실은 <베테랑2>도 쉬운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전작의 설정에 약간의 변주만 첨가하고 흥행 공식을 답습하면서. 그러면 소위 '사이다' 전개라는 얘기를 들으며 더 많은 관객을 모았을 것이다. 


그러나 류승완이 그 길을 걷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이것이 그의 솔직한 생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솔직함이 퍽 마음에 든다. 적어도 '대만 카스테라' 같은 몇 개 키워드만 나열하며 세상의 불행을 이해하는 척 하는 영화 보다 소탈하지 않은가. 한 때 세상을 놀려 먹던 악동은 이제 낯설어진 세상을 고민한다. 그리고 고민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감독의 역할이 아닐까. <베테랑2>를 응원하고 싶은 이유다. 



원문 https://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8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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