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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Apr 30. 2018

드라마 <라이브>에서 느껴지는 아쉬운 변화

<라이브> 16화를 보고



요새 유일하게 챙겨보는 드라마는 tvN의 <라이브>다. 김규태 연출, 노희경 각본을 맡은 작품이며 이 드라마에 관한 글은 종영한 후에 올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늘 글을 올리게 된 이유는 요새 <라이브>를 보며 느꼈던 어떤 경향 때문이며, 이 생각은 어제 16화 방송을 보며 좀 더 확실하게 굳어졌다.


<라이브>는 사실 흠 없는 드라마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이런 말을 하기 민망할 정도로 거친 부분들이 많이 보인다. 굳이 러브라인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도(사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노희경은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다룰 때 다소 투박해 보이기도 하고, 드라마의 카메라는 타인의 비극을 헤집어서 들여다보는 데 너무나 거리낌이 없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에 대한 애정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삶과 사의 경계에서 살아있는 자들을 향해 던지는 끈질긴 시선에 매료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정확하게는 노희경은) 상처가 벌어져서 피가 뚝뚝 흐르는 환부를 들여다보며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를 생각한다. 그렇기에 다리를 절룩거리며 서로를 부축하고서 길을 걷는 이들에게 지구대는 살아있음('라이브')을 가장 풍부하게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그런 시선과 공간, 그리고 경찰이라는 직업의 특수성은 드라마의 알싸한 감성을 톡톡히 전달한다.

노희경에게 삶이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기에 그녀의 인물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마지막을 마주하리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라이브>에서 기한솔(성동일) 대장은 암에 걸렸고 삼보 형님(이얼)은 퇴직을 앞두고 있다. 초반에 드라마의 전반에 감돌던 죽음의 공기는 이제 인물들 앞에 성큼 다가왔다.

 

그 때문일까. 나는 최근 들어 <라이브>가 점점 더 스스로의 감성에 취해 간다는 생각이 든다. 초반에 <라이브>의 인물들이 도처에 놓인 비극에도 울음을 꾹 참고 뚜벅뚜벅 걸었다면, 요즘에 그들은 자주 자리에 주저앉아서 신세 한탄을 길게 늘어놓는다. 이 과정에서 선량한 경찰/나쁜 시민의 대비가 빈번하게 등장하며, 그들은 마치 히어로 무비가 스스로의 감성에 취하는 것과 유사하게 스스로의 비극과 비애감, 공공의 적에 대한 분노감에 거리낌 없이 젖어든다. 드라마는 스스로의 시선을 회의하지 않고 '나쁜 시민에게 당하는 불쌍한 경찰'의 소재가 선사하는 감정의 스펙터클에 얼큰하게 취한다. (물론 적지 않은 에피소드들이 실화에 기반했음을 알고 있으며 내가 하려는 비판은 실제 경찰들의 노고와 무관하다.) 특히 16화에 등장했던 "내가 일 대 일로 붙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데 경찰이니까 안 하는 거예요. 경찰 우습게 보지 마요.", "야, 너는 경찰을 왜 건드려~" 같은 대사들을 들으면서 나는 예전과의 온도차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죽음의 문턱에서 끈질기게 삶을 긍정하던 <라이브>는 요즘에 이르러 특정 직업에 대한 자의식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인물들의 직업을 존중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나를 진짜 당황시키는 것은 이 작품의 태도 변화다. 마치 현실을 혐오하면서도 주어진 삶을 힘껏 사랑하던 (그 모습에 반해서 내가 쫓아다니던) 친구가, 어느 날부턴가 나를 붙잡고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나 진짜 힘들다? 근데 나 좀 멋있지 않아?")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한국 드라마 중에서 후자의 태도를 가진 작품은 많지만 전자는 적다. 그리고 노희경은 전자를 해내면서도 날카롭고 또렷한 톤이 매력적인 작가가 아니었던가. 이것이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인지, 확고한 태도 변화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부디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어쨌거나 나는 죽어가는 동료를 부여 안고 경찰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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