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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Aug 16. 2018

드라마 <라이프>에 러브라인이 필요한 이유


이수연 작가의 입봉작인 <비밀의 숲>(2017)을 즐겨 보았기에 그녀의 차기작 <라이프>(JTBC,  2018.07.23. ~ 방영중)도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놀라운 점은 이수연이 불과 1년 사이에 또 한 번 성장했다는 것이다. 나만의 예단일지도 모르겠으나, 처음 <라이프>에 관한 소식을 듣고 나는 병원을 배경으로 한 <비밀의 숲>을 예상했다. 그러나 <라이프>는 분명 <비밀의 숲>과는 다르다. 스릴러의 강도는 조금 약해졌지만, 그 대신 <라이프>에는 <비밀의 숲>에 없는 것이 있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 지점이 <라이프>에 '러브라인'이 등장하는 이유와 연관이 있다.


처음에 나는 <라이프>가 단순히 이보훈 원장(천호진)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한 축으로 하고, 병원과 의사들 간의 줄다리기를 다른 축으로 하는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해서 드라마를 보다 보면 좀 이상한 점들이 감지가 된다. 초반에 우리가 선하다고 생각한 의사들도 적지 않은 잘못들(약을 잘못 투약하거나, 의료과실을 숨기는 것)을 하였고, 이를 일갈하는 구승효(조승우)의 논리가 설득력이 없지 않다는 점이 그러하다. 지방의료를 위해서 지방으로 옮기는 것이 어떻냐는 의뭉스런 물음과, 의사들 간의 폐쇄성을 비판하는 날 선 지적들. 구승효의 이죽이는 얼굴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들을 쉽사리 거부하기 힘든 까닭은 그 질문들이 자체적인 논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라이프>가 가진 구별점이자 장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얼핏 의료계의 순수성과 자본주의 논리의 싸움으로 보이던 병원의 풍경은,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논리가 대립하는 담론의 장이 되어 간다. 이런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 이노을(원진아)의 시선이다. 구승효의 의도가 선한지 악한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병원에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구승효가 그 변화의 시작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의심과 기대 사이에서 조금씩 방황하며 인물들은 제각각의 시선대로 상국대학병원을 지켜본다.


 

즉, <라이프>에는 '다양한 시선'이 있다. 그것들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이익이 맞으면 단번에 편을 먹기도 한다. 우리는 <라이프>를 보며 하나의 사건을, 혹은 한 명의 사람을 명쾌하게 재단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고 있는 셈이다. 시선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대상은 주로 구승효다. 그는 누군가에게는 능력 있는 기술자, 누군가에게는 의뭉스러운 외부인, 누군가에게는 언제든 손을 잡을 수 있는 영악한 비즈니스맨이며,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인 악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노을과 구승효의 러브라인이 등장한다. 현재까지 보기에 그녀는 최소한 구승효에게 이성적인 관심이 있고, 자신의 마음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구승효의 도덕적인 결백성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악인이라 불리는 사람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있을 때, 그 사람은 어떤 시선으로 악인을 보게 될 것인가. 혹은 이성적인 호감은 상대의 도덕성을 평가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이들 사이를 오가는 감정은 이 드라마의 주된 테마를 함축하는 질문을 품고 있기에, 단순히 한국드라마적인 과잉이 아니라 작품의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또 다른 러브라인인 예진우(이동욱)-최서현(최유화), 그리고 예선우(이규형)-이노을(원진아)이 드러내는 시선이 무엇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최서현은 이 병원의 파업에 관한 기사를 쓰려던 의료 전문 기자이며, 예선우는 병원과 각을 세울 심평원의 심사위원이다. 중요한 것은 최서현, 예선우 모두 병원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해야 하는 동시에, 그 병원의 내부자와 감정적인 연결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구승효를 바라보는 이노을처럼, 복합적인 감정의 층위를 가지고 병원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다만 이수연 작가가 아직까지는 러브라인을 그리는 데 있어서 아주 노련한 것 같지는 않다. <라이프> 속의 러브라인들은 그 설명적인 기능을 뺀다면 크게 재미있는 편은 아니다. 이것이 이수연이 멜로를 다루는데 서투른 탓인지, 혹은 멜로 장면을 드라마의 정서에 맞춰 절제한 탓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이수연의 전작인 <비밀의 숲>의 뛰어난 점 중 하나는 모든 인물이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으며, 스스로의 상황에 충실한 선택을 하는데 그것들이 제각각 설득력이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드라마의 주인공을 위하여 조연들에게 설득력 없는 선택을 강요하고서, '사랑 혹은 신념' 때문이라고 대충 얼버무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녀의 인물들은 비중이 작아도 제각기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이제 <라이프>에 이르러 들은 타인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시선을 지닌  상국대학병원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모든 캐릭터들이 자신만의 시선을 가지도록 하는 것. 이것이 이수연 작가가 작품 속 인물들을 존중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그래서 <라이프>에 등장하는 러브라인은 단순히 흥미 유발만을 위하여 삽입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것은 오히려 다양하고도 복합적인 층위의 시선을 보여주려는 과정의 일환이며, 드라마 <라이프>와 이수연의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로도 보인다. <라이프> 속의 모든 장면에 애정을 가져도 좋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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