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Nov 15. 2024

[평론가의 삶] 재미없는 영화 좀 그만보고 싶다

생각보다 사소하고 하찮은 평론가의 일상 이야기



직업이 평론가라는 말을 들으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영화도 보고 돈도 벌고, 정말 재밌겠네"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막 재밌지는 않다. 나를 놀라게 할 만큼 좋은 영화를 만나서 '이 일이 정말 즐겁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작품은 일 년에 다섯 편이 채 안 된다. 대부분은 평범하거나, 별로거나, 정말 별로다.


간혹 내가 싫어할 것이 너무나 분명한 작품을 마주친다. 내용 없이 요란스고 잔혹하며, 관객의 관심 한 번 끄는 것이 전부인 영화. 하지만 다 봐야 한다. 욕을 할 땐 하더라도 어째서 별로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하니까.


그럴 때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영화관에 들어간다. 참 희한한 직업이지. 남들은 즐겁게 가는 영화관에 억지로 들어가서 꾹 참고 영화를 보는 게 일이라니. 막상 보면 예상외로 괜찮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영락없이 별로인 영화도 있다. 이럴 때 일반 관객은 영화관에서 나와버릴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냥 도 닦는 마음으로 2시간을 견딘다. 시사회가 아니라 내돈내산 한 티켓으로 볼 때는 득도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평론가는, 재미없는 영화를 무수히 많이 보는 직업이다.


가끔 문학평론가가 부러울 때도 있다. 글은 빨리 읽어버릴 수 있으니까. 영화관은 빨리 감기가 안 되는 통에 영화를 2배속 할 수도 없고. 그동안 원치 않은 작품에 헌사한 내 시간은 얼마나 될까. 일생의 상당 부분일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러고 보면 평론가도 직장인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이 작업이 의미가 있든 없든, 일단 거기에 내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가끔 나를 고양시키는 즐거운 일(영화)도 있지만, 이걸 왜 하나 싶은 순간도 많다. 참, 그러고 보면 달갑지 않은 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 업의 속성인가 보다. 평론가도 예외는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