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의 삶] 재미없는 영화 좀 그만보고 싶다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Nov 15. 2024
생각보다 사소하고 하찮은 평론가의 일상 이야기
직업이 평론가라는 말을 들으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영화도 보고 돈도 벌고, 정말 재밌겠네"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막 재밌지는 않다. 나를 놀라게 할 만큼 좋은 영화를 만나서 '이 일이 정말 즐겁다'라고 느끼게 만드는 작품은 일 년에 다섯 편이 채 안 된다. 대부분은 평범하거나, 별로거나, 정말 별로다.
간혹 내가 싫어할 것이 너무나 분명한 작품을 마주친다. 내용 없이 요란스럽고 잔혹하며, 관객의 관심 한 번 끄는 것이 전부인 영화. 하지만 다 봐야 한다. 욕을 할 땐 하더라도 어째서 별로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하니까.
그럴 때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영화관에 들어간다. 참 희한한 직업이지. 남들은 즐겁게 가는 영화관에 억지로 들어가서 꾹 참고 영화를 보는 게 일이라니. 막상 보면 예상외로 괜찮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영락없이 별로인 영화도 있다. 이럴 때 일반 관객은 영화관에서 나와버릴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냥 도 닦는 마음으로 2시간을 견딘다. 시사회가 아니라 내돈내산 한 티켓으로 볼 때는 득도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평론가는, 재미없는 영화를 무수히 많이 보는 직업이다.
가끔 문학평론가가 부러울 때도 있다. 글은 빨리 읽어버릴 수 있으니까. 영화관은 빨리 감기가 안 되는 통에 영화를 2배속 할 수도 없고. 그동안 원치 않은 작품에 헌사한 내 시간은 얼마나 될까. 일생의 상당 부분일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러고 보면 평론가도 직장인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이 작업이 의미가 있든 없든, 일단 거기에 내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가끔 나를 고양시키는 즐거운 일(영화)도 있지만, 이걸 왜 하나 싶은 순간도 많다. 참, 그러고 보면 달갑지 않은 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 업의 속성인가 보다. 평론가도 예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