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자전>, <인간중독>을 관통하는
최근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히든페이스>가 꾸준히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이 영화는 동명의 콜롬비아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 그러나 줄거리의 뼈대만을 가져왔을 뿐, 김대우 감독의 인장이 훨씬 진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히든페이스>, <인간중독>(2014), <방자전>(2010), <음란서생>(2006)까지. 김대우의 작품에는 중요하게 반복되는 코드가 있고, 그것은 높은 수위(?)만은 아니다. 김대우라는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중요하게 들여다보는 지점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세계관에 대해 파악해도 좋을 것 같다. 세계관이라 하면 거창하지만, 사실 누구나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색안경이 있다. 이것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아래부터 <히든페이스>, <방자전>에 대한 약한 스포일러(결말 포함하지 않음)가 있다.
김대우의 작품은 늘 삼각형으로 시작된다. 세 사람이 있고, 이들의 지위는 정확히 상, 중, 하로 나뉜다. 그 지위를 결정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신분일 수도 있고(<방자전>, <음란서생>), 계급이나(<인간중독>), 돈일 수 있다(<히든페이스>). 그리고 미모와 매력은 늘 지위를 뛰어넘는 변수로 등장한다.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잘 된 '방자전'을 예로 들어보자. 몽룡(류승범)은 상, 춘향(조여정)은 중, 방자(김주혁)는 하에 위치한다. 이것은 영화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계속 보다 보면 이들의 위계를 자연스레 파악하게 된다.
그런데 '상'과 '하'의 인간은 꼭 '중'의 인간을 동시에 좋아한다. 춘향을 마음에 품는 몽룡과 방자처럼. 파국의 씨앗이 움트는 순간이다. 부딪혀선 안 될 욕망이 충돌한다. 위의 인간은 거슬려하고, 아래의 인간은 모욕을 느낀다. 하지만 손 쓸 새 없이 자꾸만 강해지는 욕망. 이제 중간의 인간은 고민하기 시작한다. 위로 가길 소망하면서, 아래에 대한 끌림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김대우의 작품은 줄곧 수위 높은 노출이나 애정씬 등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런 장면에 등장하는 이유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펄펄 끓는 욕망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런 욕망은 각 인물이 자신의 지위를 자각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아래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중간의 인간은 자신의 모순을, 위의 인간은 자신이 휘두를 수 있는 힘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동시에 일어나며 파국의 수레바퀴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삼각형은 3명에게 한정되지 않고 돌고 돈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 그를 중심으로 다시 삼각형이 형성된다. <방자전>에서 감초로 등장하는 마 노인(오달수) 조차 삼각관계에 대한 비밀이 있다. 그리고 김대우는 위의 스틸컷에서 보듯이 3인이, 등장하는 구도의 화면 역시 좋아한다. 아마도 그의 세계관을 잘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다.
그의 신작 <히든페이스>도 여지없이 삼각형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수연(조여정), 성진(송승헌), 미주(박지현). 그런데 중반부에 삼각형에 대한 비밀이 드러나고, 90도로 회전하는 구도를 보는 것이 또 하나의 반전이자 즐거움이다.
<히든페이스>와 <방자전>을 연결하며 보면 재밌는 부분들이 드러난다. 두 영화 속에서 조여정은 각각 춘향(<방자전>)과 수연(<히든페이스>)으로 등장한다.
조여정을 중심으로, 춘향이 수연의 전생이라는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 춘향은 돈 많은 집안에(<방자전>에서 춘향의 엄마 월매는 성공한 기생이다), 미모에, 재주까지 갖췄으나 신분 탓에 천한 취급을 받다가, 동일한 조건으로 현대에서 환생한다. 그녀의 어머니 혜연(박지영)은 오케스트라 단장이고(월매가 기방을 운영한 것과 겹쳐진다) 재력이 넘치며, 수연은 첼리스트이고 여전히 아름답다. 신분의 벽이 없는 곳에서 그녀는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며 인생을 원 없이 즐긴다. 달리 말하면 <방자전> 속에서 온갖 고생을 했던 춘향이 현대에 환생해서 자기 욕망을 마음껏 실현하며 사는 이야기가 바로 <히든페이스>라고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히든페이스>를 보며 문득 짠했다. 춘향아.. 행복하니?).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곧 공개될 'PD저널' 글에 썼다.
이런 생각을 하니 김주혁 배우가 생각이 났다. 나는 김대우 감독의 작품 중에 <방자전>을 가장 좋아한다. 춘향을 몹시 사랑해서 가지고 싶어 하지만 그녀를 지키기 위해 뒤로 물러서야 하는, 그의 양가적인 연기는 인상적이다. 영화에서 방자는 남자다우면서 코믹하고 어딘가 모르게 비애감이 흐르는데, 이는 모두 김주혁의 훌륭한 연기 덕이다. 만약 그가 <히든페이스>의 성진 역을 맡았다면 어떨까? 춘향-방자 커플이 현대에서 만나 못다 한 사랑을 이루면서, 새로운 갈등에 부딪히는 재밌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타이타닉>(1998)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케이트 윈슬렛이 <레볼루셔너리 로드>(2009)에서 다시 만난 것처럼.
자신의 시각을 꾸준히 유지하며 조금씩 확장하는 감독을 좋아한다. 그런 점에서 김대우는 독특하고, 자신의 세계를 맛깔스럽게 펼쳐낼 줄 안다. 그의 최고작이 비교적 오래 전의 <방자전>이라는 점은 좀 아쉽지만, 그는 자신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지금보다 나은 평가를 받을 만한 감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