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의 '스브스 프리미엄'에 기고한 글입니다.
최근 한 남자 배우의 혼외자에 대한 뉴스를 계기로, 결혼 없는 출산에 대한 논의가 빠르게 번지고 있다.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 사이에는 이전과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제 연애, 성, 결혼, 그리고 출산을 어느 정도 독립적인 변수로 대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 같다. 연애가 곧잘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던 예전과 달리, 지금 우리는 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손에 쥐게 되었다.
여러 선택지가 주어질 때, 사람은 찬찬히 생각하기 시작한다. 결혼이란 무엇이고,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래서인가. 이들을 각각 해체한 뒤, 그 본질을 탐구하는 콘텐츠가 늘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시리즈 <트렁크>도 그런 작품이다.
<트렁크>에는 계약 결혼 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직, 'NM(New Marriage)'이 등장한다. 이들은 의뢰인에게 기간제 배우자를 보내준다. 이 도발적인 설정은 동명의 원작 소설에 기반했다. 그러나 원작이 '결혼 제도'의 의미를 되묻는다면, 이 시리즈는 계약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에 천착한다. 거기에는 우리의 고민과 욕망의 한 단면이 비춰 보인다. 아래부터 <트렁크>와 <나의 해방일지>에 대한 스포일러가 나오니, 유의해 읽어주길 바란다.
정원(공유)은 전처 서연(정윤하)에게 버림받았지만, 여전히 그녀를 놓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서연이 제안한다. '1년 동안 다른 여자와 결혼 생활을 해. 그 시간을 무사히 견디면 너에게 돌아갈게.' 그러니까 전처가 전남편에게 계약 결혼을 권하는 상황.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녀를 붙잡고 싶은 정원은 제안을 받아들인다.
곧 기간제 와이프(?) 인지(서현진)가 나타난다. 하지만 정원은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지 역시 아내 역을 충실히 해내지만, 자신의 과거 얘기는 하지 않는다. 얼핏 보아 여느 부부와 다름없는 그들은 함께 공유하는 역사가 없다. 껍데기만 말끔한 결혼.
또 하나, 그들 사이에는 '성(性)'이 결여돼 있다. 정원은 인지에게, 당신이 정말 아내라면 함께 잘 수도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건 맘에 들지 않는 상대를 향한 도발일 따름이다. (후반부를 위한 복선이기도 하다) 성생활을 즐기는 서연과 달리, 정원과 인지 사이는 육체적이지 않다. (후반부에는 양상이 달라지지만, 이 글에서는 초반부에 집중하겠다)
관계의 물꼬를 트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정원이 위험한 상황에서, 인지는 몸을 던져 그를 보호한다. 기대하지 않은 희생. 정원은 미안함, 고마움, 그리고 부채감을 함께 느낀다. 우연히 생겨난 빚으로 관계는 활력을 얻기 시작한다.
인지의 행동은 그녀가 자주 언급하는 '매뉴얼'에 가깝다. 남편을 대하는 아내의 매뉴얼. 남편의 입가를 휴지로 닦아주는 일. 악몽에 시달릴 때 도닥이는 일. 그가 싫어하는 것을 함께 싫어하고, 공격당할 때 편들어주는 일. 중요한 날 넥타이를 만져주는 일. 그가 찾을 때 옆에 있는 일.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마치 탱고를 추듯 자연스럽고 리드미컬하게 수행하는 일.
그런데 이 단순하고 건조한 일련의 행동이 변화를 불러온다. 정원은 처음으로 수면제 없이 깊은 잠이 든다. 한없이 망가진 그가 회복하는 신호탄일까. 둘은 서서히 친해지고 가까워진다. 의무에서 시작된 일이지만, 한 인간을 보살피고 아끼는 그 손길은 기어이 삶을 바꾸어 놓는다.
이 결혼의 목적지는 아마도 탈출일 것이다. 정원을 지배하려는 서연으로부터, 그리고 인지를 옭아매는 스토커로부터. "습관처럼, 분리불안처럼" 이어지는 삶으로부터 독립하는 것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는 <나의 해방일지>를 떠올리게 한다. 해방을 꿈꾼다는 점에서 그렇고, 인간이 인간을 챙기는 담백한 애정의 마법을 믿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의 해방일지>에서도 구 씨(손석구)와 미정(김지원)은 서로의 과거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서로를 '추앙'하겠다는 결심을 끝까지 우직하게 지켜낸다. 만남의 손익을 따지거나, 성적 충동을 앞세우지도 않는다. 그저 서로를 열렬히 응원하며, 그 힘으로 각자의 구원을 향해 간다는 점에서 두 드라마는 닮았다.
앞서 언급했듯 성, 결혼, 사랑이 따로 다뤄지는 요즘이다. 또 성에 대한 의식도 개방돼 꽤 높은 수위의 콘텐츠도 자주 보인다. 이런 때에 가족도, 연인도 아닌 이들이 만나 애정 행위도 절제한 채로, 오로지 '관계'에 침전하는 작품이 출몰하는 것은 흥미롭다. 우리의 어떤 욕망이 이런 작품을 불러오는 것일까.
<트렁크> 속 인지와 정원은, 남들에게 관계를 인정받거나(결혼) 서로에게 사랑을 확인받는(성관계) 일에 관심이 없다. 그저 서로를 돌볼 뿐. 그런데 이것이 사람을 숨 쉬게 한다. 별거 아닌 물이 생명을 살리는 것처럼. 여기에는 거창한 제도나 어지러운 욕정이 아니라, 그저 '단출하고 애정 어린 챙김'을 갈망하는 우리의 내밀한 욕망이 들어 있다. 어쩌면 <트렁크>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슬며시 비춰 보이기 위해 우릴 찾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화려하게 빛나는 여러 선택지 사이에서 말이다.
원문 https://premium.sbs.co.kr/article/sqGS96Fc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