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 메일 선망하는 모범생의 영화
※ 아래 글에는 <소방관>과 <친구>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곽경택 감독의 <소방관>은 포장지를 갈아 끼운 <친구>(2001)처럼 느껴진다. 비록 다른 소재를 취했지만, 영화의 지향, 시선 등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곽경택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코드가 한몫을 한다.
<친구>에서 유명한 부분은 준석(유오성)과 동수(장동건) 사이의 기싸움이지만("니가 가라, 하와이") 이 영화의 화자는 상택(서태화)이다. 친구 무리를 조용히 따르던 모범생 말이다.
상택은 똑똑하고 착한 학생이지만, 이 무리 안에서 그는 보호받는 유약한 포지션이다. 상택은 준석·동수와 어울리며 그들의 남성성을 구경하고 거기서 오는 쾌감을 수혈받는다. 그러나 그는 졸업 후에 전혀 다른 길을 걸으면서, 준석·동수가 거친 삶의 대가로 떠안은 위험으로부터 멀찍이 거리를 둔다. 상택은 준석과 동수의 거칢을 선망하고 이를 영화 보듯 감상하지만, 언제나 그들과 다른 안전지대에 머문다. 일진과 어울리며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피하지 않는 자리. <친구>는 그 자리에 상택을 위치시킨다. 그래서 마냥 착한 얼굴, 상택에게는 이상한 이중성이 있다.
<소방관>에서도 이런 구도는 반복된다. 다만 이제 성숙한 남자들은 더 이상 싸움 따위에서 남성성을 찾지 않는다. 이 세계에서 멋있는 남성의 자리는 진섭(곽도원)이 차지한다. 직업적인 신념 하나만을 손에 쥐고 소방관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 화마 속에서도 위험에 처한 목숨 만을 생각하는 남자. 그는 후배들이 선망하면서도 따라잡기 벅찬, 강인한 수컷이다.
<소방관>의 화자는 철웅(주원)이다. 그는 진섭을 존경하고, 그와 같은 소방관이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철웅은 현장에서 얼어붙는 바람에 동료마저 희생시키고 휴직할 정도로 서투르다. 그는 자신의 나약함을 잘 알고 있다. 철웅의 선택은 소방 간부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다. 진섭은 그런 철웅을 못마땅하게 여기지만('기껏 기다려 줬더니 현장을 떠나겠다고?') 그의 결정을 존중한다.
공교롭게도 그는 <친구>의 상택처럼 강한 남성을 동경하고, 그의 활약을 지켜보며 쾌감을 공유하지만, 강한 남성이 짊어지는 위험은 나눠지지 않고, 그의 희생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그의 정신을 기리며 안전한 곳에서 눈물 흘린다.
그래서 <소방관>은 <친구>와 스토리만 다를 뿐, 구성이 같다. 똑똑하지만 용기 없는 모범생이 전하는 강인한 남자의 이야기. 쳐다보는 방향이 다를 뿐, 시선이 작동하는 방식은 똑같은 것이다. 그 시선은 늘 목숨을 던질 정도로 신념이 강한 알파 메일을 쫓는다(<친구>의 마지막에서 준석도 '친구'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한다). 어릴 때에는 '싸움짱', 성숙한 뒤에는 '영웅적인 직업인'.
훗날 시간이 흘렀을 때, 곽경택의 시선 안에 또 어떤 남성상이 들어올지 모를 일이다. 강인한 남성의 이미지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니까. 하지만 이 애타는 부름만큼은 그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안전지대 속 모범생이 부르는 강인한 남성의 노래. 닮고 싶은 동시에 멀어지고 싶은 이중적 마음. 그건 곽경택 영화에서 변하지 않을 본령이다. 준석(<친구>), 철웅(<소방관>)을 이을 제3의 남자는 또다시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