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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Mar 07. 2017

영생과 소멸의 모순관계

영화 <로건>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로건>을 보러 간 우리는 울버린의 장례식에 초대되었다.

이 영화가 울버린 시리즈의 마지막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다.

로건은 이미 늙어버린 육체를 이끌고 도시를 헤맨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질려버린 듯 본인의 능력을 의미 없이 소비한다.

우월한 신체에 매몰된 질식할 듯한 일상.

이제 울버린의 얼굴에 새겨진 것은 잔뜩 피로해진 표정이다.

어쩌면 울버린뿐 아니라 관객 역시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울버린 시리즈는 마블 시리즈 중에서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를 받아 왔다.

영원히 재생 가능할 것 같았던 우월한 신체가 가져온 역설적 권태.

시리즈의 반복이 가져온 히어로의 노화.

영화 <로건>은 이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울버린의 노쇠한 신체에 그가 직면한 한계를 새겨 넣는다.     



그러나 시리즈는 끝날지 몰라도 히어로는 영원히 남아야 한다.

여기에 울버린 제작진들이 직면한 모순이 있다.

영원히 기억될 퇴장이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한 제임스 맨골드의 선택은 서부극이란 고전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희생과 운명적 죽음의 코드는 고전적 작법을 따르는 것이다.

사람을 죽인 자는 영원히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는 최후의 반성.

이를 피할 수 없었던 제작진은 결국 가장 우아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화답한다.

이는 히어로물이라는 매우 현대적인 장르가 영화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맞이하는 죽음이다.       



서부극 혹은 고전적 서사가 주는 가장 중요한 효과는, 그것이 관객에게 주는 강한 각인에 있다.

시리즈의 종말과 영웅의 영생이라는 모순.

영화는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과격한 방식으로 이 모순을 돌파한다.

울버린은 영생할 것 같았던 자신의 신체를 바닥까지 비워낸 채 무대 뒤로 퇴장한다.

건재함을 연기하며 고상하게 작별하는 대신, 관객 앞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다.

X자 묘비 하나 남기고 떠나는 단촐한 작별은 관객에게 기억되고픈 히어로의 마지막 도박 수다.     



존재론적 비극일까.

타인의 기억 속에서 영생하기 위한 최후의 방법은 자멸하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히어로가 직면한 숙명적 슬픔이 있다.  

노쇄한 울버린은 스스로의 한계를 모두 안고서 이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선택을 한다.

<로건>은 울버린 시리즈 중 유일한 청등급이다.

가장 어른스럽고도 외로운 작별이 여기 있다.

영웅의 퇴장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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