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국 영화계는
※ 연말을 맞아 쓰는 2025년 한국 영화계 결산.
PD저널에 기고했습니다.
[PD저널 =홍수정 영화평론가] 아무리 한 해를 바삐 보내도 연말에 남는 것은 언제나 아쉬움이다. 지난 시간은 늘 가슴을 찌릿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그것이 '영화'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2025년 예상대로 한국영화는 고전했고 일본 애니는 극장가를 달구었으며 넷플릭스에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스크린에서는 <주토피아 2>가 축포를 터뜨렸다. 이토록 혼란한 시간을 정리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2026년을 새로 맞이하며 지난해 한국영화를 산업, 세대, 장르의 차원에서 복기하려 한다. 지난 한 해,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나?
먼저 '산업'의 차원에서 2025년 한국영화는 OTT의 거센 파도를 그대로 맞았다. 이 부분에 대하여 "코로나 이후 불황을 회복하지 못했다"라거나, "좋은 작품이 부족했다"라는 투박한 지적 이상의 세심한 분석이 필요하다. OTT의 시대가 본격화하며 극장의 관객 수는 명확히 줄었는데, 체급 감량을 가장 먼저 체감케 한 것은 '천만 영화'의 종말이다. 규격화된 공식으로 제작되던 천만 영화의 시대는 끝이 났다("'천만 영화' 시대는 갔다" 글 참고).
2025년 이러한 경향이 더 확대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중규모 영화의 실종'이다. 천만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관객 수 300~400만 명 사이를 오가며 중규모 작품의 싹이 마른 것이다. 올해 한국영화 중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좀비딸>은 관객 수 564만 명을 기록했는데, 2위인 <야당>은 338만 명, 3위인 <어쩔수가없다>부터는 200만 명대로 떨어진다. 괜찮은 평가를 받으며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소위 말해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은" 중규모 웰메이드 영화를 찾기 어렵다. 한국영화계 허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심각하게 보아야 할 현상이다.
하지만 다행인 건, 척박한 땅에서도 성과를 내는 독립영화가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올해 큰 화제를 몰며 단단한 마니아층을 형성한 <세계의 주인>, 평단과 대중의 지지를 얻은 <3학년 2학기>, 의미 있는 시도를 감행한 <3670>과 <하얀 차를 탄 여자>까지. 독립영화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시그널이다. 다만 영화계 위기가 인디신에도 드리워지며, 재능 있는 영화인의 활약을 구조적으로 받쳐주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남아있다.
다음으로 한국영화계를 '세대'의 차원에서 살펴보자. 올해는 강형철(<하이파이브>), 박찬욱(<어쩔수가없다>), 봉준호(<미키17>) 등 올드보이들이 귀환한 의미 있는 해다. 그럼에도 이들이 공통적으로 자신의 영화적 세계를 답보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물론 위의 세 작품은 절대 간단한 평가로 일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세대의 차원에서 투박하게 말해보자면, 이 작품들은 수십 년째 같은 이름이 한국영화계 간판으로 꼽히는 지금 상황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만든다. 쉽게 말해, 한국영화계 '넥스트 제너레이션' 말이다.
물론 한국영화계를 이끌 재능 있는 감독은 많다. 다만 20년 전 박찬욱, 봉준호, 홍상수, 김지운이 그랬듯, 지금 전성기를 맞이해 왕성하게 영화적 세계를 넓혀가는 창작자 세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아무래도 아쉽다. 옆 나라에서는 하마구치 류스케, 미야케 쇼, 네오 소라 등 젊은 감독들이 일본 특유의 정서를 희미하게 공유하며 뉴 제너레이션으로 자리잡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생각할 때 자꾸만 곁눈질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장르'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올해 영화계에서 독특한 변화는 '스펙터클'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영화를 스펙터클로 보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고.
지금 관객은 신선한 소재와, 완결성 높은 서사를 선호한다. 올해 예상을 깨고 흥행을 거머쥔 <주토피아 2>,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좀비딸>, 는 모두 이 요건에 부합한다.
반면 관객들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스펙터클이다. <대홍수>와 <아바타: 불과 재>에 대한 혹평이 이를 방증한다. 10년 전만 하여도 '볼거리'를 제공했다는 점 하나로 괜찮은 평가를 받았겠지만, 지금 관객은 거기 휩쓸리지 않은 채 오히려 스토리의 허술함을 지적한다. 이건 대중적 장르 영화를 제작하는 이들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또 하나, 여성 영화의 의미 있는 진격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여성 영화가 부상하는 것은 한국만의 일도 아니고, 2025년 만의 현상도 아니다. 하지만 노년 여성 킬러를 앞세운 <파과>, 서늘한 여성 버디 무비를 표방한 <하얀 차를 탄 여자>, 여성 주연의 오컬트물 <검은 수녀들>과 같이 새로운 시도를 통해 여성 영화의 외연을 넓힌 작품이 있었다. 이런 경향은 2026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여 기대를 품게 만든다.
당연한 듯 보였던 것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허물어진다. 또 불가능해 보였던 것들이 가뿐히 성사되곤 한다. 우린 지금 콘텐츠의 패러다임이 뒤바뀌는 결정적 시간의 한가운데 있다. OTT와 유튜브는 유통의 구조뿐 아니라 콘텐츠의 지형과 소비 방식을 바꾸어놓았고, 그 위에서 새로 등장한 관객들은 이전과 다른 기준으로 영화를 본다. 허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의 위기는 누군가의 기회이니까.
나는 지금을 완연한 새 시대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하나다. 완전히 달라진 시대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다시 눈을 찡그리며 지난 시간을 노려본다. 부디 의미 없는 몸짓으로 남지 않기를. 과거가 미래를 도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원문 https://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81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