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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지금 극장가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감각적인 작품일 것이다. 영화를 보며 몇 번이나 놀랐음을 고백해야겠다. 가장 빼어난 것은 스크린에 화려하게 수놓는 코믹스의 비주얼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가 어째서 영화의 형식으로 존재하여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만화의 컷들이 빛을 뿜고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영상은 더없이 황홀하다.
여기에서는 영화의 성취를 모두 언급하는 대신 눈에 띄는 것 하나를 언급하고 싶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다중우주와 차원 이동이라는 과학적 개념을 스토리의 중심으로 끌어온다. 전통적인 스파이더맨의 서사 위에 과학적 개념을 하나하나 더하다가, 막판에 이르러 이것들을 한데 뒤섞어서 폭발시킨다. 과학과 코믹스가 뒤섞이며 황홀경이 탄생한다.
그런데 인상 깊은 것은 스파이더맨과 악당이 맞붙는 마지막 장면의 배경이다. 차원 이동기 앞에서 싸우는 그들 뒤로 붉고 둥근 것들이 무수히 지나가는 배경이 펼쳐진다. 이것은 물론 기본적으로 스파이더맨의 의상에서 착안된 색감일 것이다. 그런데 한편 그 모습이 몸속을 흐르는 혈액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킹핀이 다른 차원을 불러들이고 스파이더맨이 이를 막는다는 설정까지 고려한다면 킹핀은 이상증식하는 바이러스, 스파이더맨은 이를 막는 백신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비주얼은 몸속의 미시세계 구현한 의학 영상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장면이 몸 속 세계를 직접 암시한다거나 그렇게 해석해야 된다는 뜻은 아니다. 차원이 열린 설정은 우리가 어디서도 보지못한 첨단과학적 설정인데, 그런 장면이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 대신 우리가 이미 익숙한 어떤 이미지를 다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작품이 품는 정서 역시 마찬가지다. 새로운 스파이더맨들이 등장해서 새로운 정서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결국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전형적인 감성을 건드리며, 윗세대의 가르침과 아랫세대의 성장이라는 전통적 서사를 확인시킨다. 그것들은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이 지닐 본능적인 정서에 가깝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현대물리학으로 새로움을 더하는 대신, 전통적 서사와 전형적 정서들을 다시 소환한다. 이것이 영화에 어떤 안정감을 부여한다. 외국인이 등장하는 프로그램들도 이런 전략을 자주 쓴다. 처음에는 그들의 이국적 외모에 주목한 다음 우리와 같은 식성이나 잠버릇 등 공통점을 찾는데 주력한다. 이미지에서 오는 신선함을 활용한 다음, 본능적인 공통점들로 이질감을 지우는 것이다. 인간이 공유하는 본능은 우리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사레로 미국의 애니메이션 <릭 앤 모티>를 들고 싶다. 이 작품은 첨단과학의 이론들을 끌어와서 말 그대로 갖고 논다. 이 기괴한 성인 애니메이션은 내가 본 모든 작품들 중에서 과학적 지식을 가장 많이, 그리고 재미있게 활용한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끊임없이 인간의 본능을 확인하는 지점이 있다. 릭과 모티는 첨단 과학을 활용하여 우주를 구하려는 행동도 하지만, 많은 시간 맛있는 것을 먹거나 파티를 하며 본능적인 쾌감을 즐긴다. 또한 가족간의 사랑이나 인간의 이기심 같은 익숙한 정서를 건드리기도 한다. 과학과 본능의 만남. 이 조합은 과학이 지닌 낯섦을 본능이 희석시키는 장점이 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도 마찬가지다. 이 영리한 작품은 생소한 과학적 개념으로 스파이더맨에 새로움을 불어넣으면서도,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것들을 끌어와서 작품에 안정감을 부여한다. 차원의 통로는 몸속의 세계와 닮았고 광활한 우주는 거미줄과 겹쳐 보인다. 미지의 차원에서 온 캐릭터들은 주인공과 같은 아픔을 공유한다.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을 겹쳐 놓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소화력은 실로 놀랍다. 우리가 새로운 자극을 즐기면서도 작품을 익숙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은 이런 치밀한 전략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