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을 놓쳐서, 굳이 첨언하기 어색해서 미뤄두었던 2018년의 리스트를 올려보려 합니다. 결산이라는 것이 이상해서 별 것 아니지만 그것을 정리하여야 작별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이미 <씨네21>에 올해의 베스트 5 리스트를 제출했었지만, 아래는 그와 별도로 작성한 리스트들입니다. 언급하고 싶었던 2018년의 몇 가지들.
1.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거리와 경계에 대한 장률의 탐색이 어떤 경지에 오른 작품. 신비롭고 완숙하다.
2. 너는 여기에 없었다
마치 폭력에 실신하듯 멈칫거리는 영화와, 그것을 일깨우듯 부드럽게 쓰다듬는 몸짓들. 오래도록 잊지 못할 이미지.
3.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자신의 영화를 이끌어 온 바르다가 그 자리에서 다시 걷고, 찍고, 기다리는 것을 보는 진귀한 경험. 바르다라는 영화를 담은 영화. 2018년에 본 영화 중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쏟았던 작품.
4. 쓰리빌보드
관객을 갖고 노는 언어의 향연, 징그럽도록 위풍당당한 이미지들, 끝내 빠져들어 헤매게 되는 이야기. 마틴 맥도나의 이름을 깊이 각인시킨 작품.
5. 카우보이의 노래
유쾌하고 잔혹하며 냉담하고 아득하다. 이 작품을 계기로 코엔 형제가 이 시대의 거장의 반열에 올랐음을 느꼈다.
과소평가된 <수성못>
삶과 죽음이 꾸물꾸물 접합하는 눅눅하고 축축한 공기. 치열한 일상도, 치미는 분노도 모두 슬며시 무화시키는 수상한 공간. <수성못>은 2018년에 본 영화 중에서 지금의 청춘의 일면을 가장 솔직하고도 또렷하게 응시하는 작품이었다. 과소평가된 측면이 있다고 느낀다.
동의할 수 없는 <소공녀>
미소(이솜)는 어째서 삶의 기본적인 물질에 대하여 구차한 애착조차 없는 걸까. 그것은 '취향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간단하게 버리거나, 그저 판타지적 설정으로 보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가. 나는 그녀가 영화를 위하여 인간성이 거세된 인물처럼 어색하게 느껴졌고, 그녀의 행로로부터 무언가를 느끼기도 어려웠다. 이 영화에 대한 상찬에는 동의할 수 없을 것 같다.
<살아남은 아이>의 김여진
2018년의 내게 가장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 배우는 <살아남은 아이>의 김여진이다. 이미숙(김여진)의 캐릭터가 다소 평면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눈빛, 목소리, 표정, 호흡으로 하나의 풍성한 인물을 창조해낸다.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존엄을 지키고, 한 곳으로 질주하면서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이미숙을 말이다. 이 놀라운 배우의 연기 세계를 2019년에 더욱 자주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18년은 제가 등단 이후 처음으로 일 년 간 온전히 비평을 썼던 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더욱 기억에 진하게 남는군요. 제가 생각하는 비평은 홀로 영화에 관한 객관과 주관 사이를 떠도는 힘겨운 작업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독자들의 반응은 제가 작업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낯간지러운 이야기를 고백하자면, 비평을 시작하며 제가 평생 몰랐던 새로운 희열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글을 꼼꼼히 읽고 그에 관한 생각을 전달하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느껴지는 충만한 기쁨이 그것이죠. 그래서 늘 나의 글을 읽는 누군지 모를 당신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비평이라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서로의 생각 안에서 만날 때에 우리는 비로소 뜬 구름을 손으로 잡고 그 감촉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