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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an 21. 2019

TRPG의 시대가 올까? 침×펄×풍의 <던전월드>


요즘 내가 가장 재밌게 보는 예능은 이말년의 <침착맨>이다. 이말년의 예능감은 요즘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 이런 시기에는 뭘 해도 재밌다. '딱딱 복숭아 vs 물렁 복숭아 중에 뭐가 더 맛있나' 같은 주제로 토론을 하는 '침vs펄 엄근진토론'이나, 스팸 도시락을 전략적으로 먹는 '식욕저하 다이어트 먹방'도 재미있다. <침착맨> 방송은 대체로 가볍고 발랄하다. 적당히 저질스럽고 아무말이 넘쳐난다. 그래서 더 정이 가고 웃음이 터진다. 이것은 리즈 시기에 있는 예능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의미를 담지 않고 뛰어노는 놀이터 같은 방송. 그러다 인기가 더 많아지면 제재가 들어오고 그렇게 무거워지다가 노잼 되는 것이 공중파 예능의 슬픈 숙명이지만, 유튜브 방송의 경우 그럴 위험도 적을 것 같다.


최근에는 침착맨 방송에서 TRPG인 <던전월드>도 선보였다. 나도 여기서 TRPG를 처음 접했는데, 게임북을 놓고 플레이어들이 자기 역할을 맡아서 RPG 게임을 하는 것을 말한다. 온라인의 RPG를 아날로그로 하는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영상을 참고하시라) 


이 영상은 생각 이상으로 재밌다. 재미의 성격도 다른 예능과는 좀 다르다. 일단 게임의 세계관 보이지 않으므로, 설명을 들으며 상상해야 한다. 그게 마치 어릴 때 동화책을 듣는 것 같은 흥미를 자극한다. 그리고 이말년, 김풍, 주호민 모두 예능감이 좋고 스토리 진행도 잘한다. 특히 스토리에 강한 주호민의 재능이 십분 발휘된다. 게다가 주사위 굴림이 들어가므로, 그때그때 운에 따라서 바뀌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맛이 꿀맛이다. 


이 방송을 보고 TRPG가 너무 재미있어서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모든 TRPG가 재밌지는 않았다. 아마도 플레이어의 개인적인 역량에 어느 정도 좌우되는 것 같다. 적당한 연기력과 드립력, 그리고 몰입 능력을 요한다. 게다가 상급으로 갈수록 게임이 매니악해져서 구경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TRPG가 매력 있는 컨텐츠라는 것이다. 영상화 기술이 점점 발달하는 시기에 오히려 시각을 차단하는 이 게임은 분명 희귀성과 경쟁력을 지닌다. 최근 70년대 복고 열풍에 맞추어 추억의 전자오락 게임이 다시 각광받고 있다. TRPG의 매력도 재조명받을 수 있을까.  


유행은 돌고 돈다더니 게임도 그런가 보다. 이 매력적인 콘텐츠가 더욱 대중적인 게임으로 떠오를 수 있을까? <침착맨>이 새로운 유행의 포문을 열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정말 TRPG의 시대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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