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커>는 실망스러웠으나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경이로웠다. 그의 비쩍 마른 상체와 힘없는 머릿결 한 올 마저도 연기를 하는 듯 보였다. 호아킨 피닉스는 이전부터 상당히 몸을 잘쓰는 배우였다. 그의 작고 단단한 골격과 우울한 얼굴은 깊은 내상을 입은 짐승의 냄새를 풍긴다.
그의 이런 재능은 <조커>에서 유감없이 빛을 발한다. 많은 이들이 그의 고통스럽고도 아름다운 춤을 말하지만 나는 조커의 '태'를 말하고싶다. 아서는 영화 내내 움츠러든 상태지만, 그가 살인과 화장을 마치고 마침내 조커로 분했을 때 그의 몸은 180도 달라진다. 특히 조커가 골똑히 생각에 잠긴채 서 있을 때, 난장판을 뒤로하고 유유히 걸을 때 그의 모습은 하... 거기에는 멋짐을 과시하지 않고 자신감을 연기하지 않아도, 자신의 정체성을 또렷하게 자각한 자가 뿜어내는 섹시한 아우라가 있다.
그러나 영화 <조커>는 실망스러웠다. 이 영화는 '조커'의 탄생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겹의 불행을 겹쳐놓는다. 아서는 아빠로부터 버림받고, 관객으로부터 외면받고, 존경하는 코메디언도, 친구도, 옆집 여자도... 한국의 막장드라마를 떠올리게 하는 그의 불행은 미처 다 나열하기도 힘들어 흡사 캐릭터를 학대하는 느낌을 준다.
이런 서사의 단순함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그런데 진짜 문제는 아서가 겪는 각고의 불행이 '조커'의 캐릭터를 완성하는 풍성한 체험이 아니라, 오로지 그의 분노를 소환하는 자극적인 에피소드로 소비된다는 것이다. 강약조절이 없이 이어지는 불행의 나열은 피로감을 불러온다.
또한 조커의 광기를 설명하기 위해 소환되는 그 사건들은 그의 미스테리를 삭제한다. 이 영화에는 조커를 위해 마련된 공백이 없다. 그러나 때로 악당의 카리스마는 공백과 미스테리에서 오는 법이다. 그는 설명이 불가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공포스럽다. 우리는 그 공백에 나름의 상상을 채워넣으며 악당에게 서서히 매료된다. 그러나 <조커>는 어떤 여유도 없이 오로지 파국을 향해 숨가쁘게 달려간다.
그리고 개인적인 감상을 하나 덧붙이자면, <조커>의 조커는 한 마디로 원하는 사랑을 받지 못해 삐진 어린애처럼 보인다. 미안하지만 이 조커에는 내가 바라던 품격이 없다.
영화 <조커>는 자신의 단순함과 피로감을 돌파하기 위해 호아킨 피닉스에게 매달리는 길을 선택한다. 카메라가 마치 애무하듯 호아킨 피닉스의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마다 나는 영화의 절박함을 느꼈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배우라 한들 영화의 얕음을 구원할 수 있을까. 나는 그에 대한 명징한 답을 <조커>가 보여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