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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Feb 02. 2020

경쾌해진 우민호의 <남산의 부장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부자들>과 <마약왕>을 보고서 우민호 감독의 작품에 아무런 기대를 가지지 않았다. 영화의 리듬은 둔탁하고 지루한데 그 둔함을 희석하기 위해 자극적인 장면들과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같은 가벼운 대사들을 수시로 소비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래서 <남산의 부장들>도 기대를 가지지 않고 숙제하는 마음으로 극장을 향했다.

일단 <남산의 부장들>은 실화에 기반하고 있음에도 장르 영화의 속성을 유지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실화의 자극성 대신 장르영화의 쾌감을 추구하는데 좀 더 몰두한다. 물론 이것은 실화의 무거움을 피하려는 선택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영화의 리듬이 경쾌해졌다는 것이다. 외설적인 전시에 몰두하던 과거에 비하면 카메라의 앵글도 다채로워졌다. 물론 이런 성과의 상당 부분은 역사상 훌륭한 정치 첩보 영화들에 빚진 것이다. <남산의 부장들>에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등 거장들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보다 사소한 순간들이다. 김규평(이병헌)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는 순간, 거사를 마치고 나올 때 바닥에서 미끄러지는 순간처럼 스쳐지나가는 짧은 장면들에서 엿보이는 센스가 좋아졌다. 특히 김규평이 쏟아지는 머리카락을 수시로 쓸어올리는 부분은 영화에 긴장감도 부여하지만(벽장 안에서 들키는 장면) 영화에 자주 경쾌함을 부여한다. 이 동작은 김규평이 무언가를 시도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지만 칭찬하고 싶은 감각이다. 


아직은 우민호 감독의 영화를 호평하기는 어렵겠지만 <남산의 부장들>은 그의 필모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품으로 보인다. 전작들에서 특히 약점으로 느껴졌던 부분들, 외설성이나 느리고 둔탁한 리듬감이 사라졌다는점도 주목할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룰 수 있을지 그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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