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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May 03. 2020

윤성현, <사냥의 시간>을 위한 변명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윤성현, <사냥의 시간>에 대하여

영화 <파수꾼> 스틸 컷

윤성현 애정을 가지고 지켜본 감독은 아니. 싫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색채와 재능이 명백히 내 취향이 아니다. 애정이 없으면 평가도 냉정해진다. 평단의 극찬을 받았던 <파수꾼>(2010)은 과대평가된 영화다. <사냥의 시간>을 두고 스토리도 캐릭터도 별로라며 '윤성현의 퇴화'라는 지적하는 이들이 있지만, 잘못된 지적이다. 윤성현은 <파수꾼>때부터 스토리나 캐릭터가 성글었다. 그럼에도 부실한 면을 숨기고 관객을 현혹하는 한 방이 있는 감독. 그것이 윤성현에 대해 내가 가졌던 느낌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사냥의 시간>에서 그의 장기가 여실히 발휘된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일각의 평가처럼 <사냥의 시간>이 형편없는 실패작이냐면, 그렇지 않다. 여기서 비평을 늘어놓으며 영화를 비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사냥의 시간>이 과한, 때로 부당한 악평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는 확신이 있다. 또 <파수꾼>과 달리 <사냥의 시간>에 관객들의 평가가 혹독해진 이유가 몇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점들에 대해 말해볼 생각이다.  


공간 창조의 실패

윤성현은 개봉전부터 <사냥의 시간>이 한국적 디스토피아를 그려냈다 언했다. 그러니까 그는 <사냥의 시간>이 '헬조선'을 영화적 공간으로 구현한 작품이기를 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이 점은 실패라고 평가한다.


스모그, 시위대, 그래피티... 외국 슬럼가를 연상케 하는 풍경은 어디서 본 듯 하다. 물론 음악과 함께 제시되는 오프닝은 꽤나 멋들어지고, 공 들였다는 느낌도 준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한국영화에서도 슬럼가 느낌을 낼 수 있네' 정도의 감상에 도달한다. 이런 때깔을 내는 것 자체가 의미있을 수 있지만, <파수꾼> 이후 9년만에 신작을 낸 감독에게 이런 점은 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공간은 현실에 실재하지 않으며, 만들어진 곳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미국 슬럼가, 파산한 남미, 한국을 적당히 섞었으나 그 사이 어딘가를 그저 부유다.  디테일의 부재 때문이. 새로운 공간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이기 마련이며, 그런 이야기들이 배경으로 제시돼야 관객들은 그 공간을 실재하는 것으로 믿게 된다. 그러나 '달러가 필요하다'는 것 말고 이곳에 입체적인 숨을 불어넣는 이야기찾기 힘들다. 그래서 (이곳이 한국이라는 티를 내려고 쓴 듯한) '예비군' 같은 단어도 도리어 생뚱맞다는 느낌다. 말하자면 윤성현은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데 큰 재능을 가진것 같지 않다.


살아남은 이미지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살아남은 것은 서스펜스를 엮어가는 이미지들이다. 준서(이제훈) 바에서 상수(박정민)에게 전화하는 장면은, 폰에 뜨는 '상수'의 이름과 어둠속에서 폰을 매만지는 한(박해수)의 실루엣이 교차하며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또 봉식(조성하)이 준서에게 전화할 때 바닥에 피가 흥건히 흐르는 장면이나, 새벽에 준서, 장호(안재홍), 한이 대치하는 장면에서는 한국영화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차가운 폭력적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이 이미지들은 영화의 불안정함 속에서도 살아남았다고 평가하고 싶다. 다만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가 끈끈하게 이어지지 않고 다소 끊어진 채 따로 빛나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화가 많은 레퍼런스를 떠올리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사냥의 시간>을 두고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 등이 언급되었다. 그러나 붉은 이미지를 배경으로 맹목적인 도주와 추격이 반복 때 나는 이 영화의 지향이 차라리 샤프디 형제의 <굿타임>(2017)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파수꾼>과 <사냥의 시간>의 차이

그러니까 나는 윤성현의 작품 중에서 <파수꾼>이나 <사냥의 시간> 모두 적절한 성취와 실패를 지닌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파수꾼>은 관객에게 호평을 받고, <사냥의 시간>은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내가 볼 때 윤성현의 가장 뛰어난 장기는 어떤 감정이나 관계에 매우 깊이 침잠해 섬세한 디테일을 잡아낼 줄 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파수꾼>의 경우에도 스토리나 캐릭터는 별다를 게 없으며, 어찌보면 전형적이다. 그러나 세 명의 친구 사이의 미묘한 긴장, 물고 물리는 위계, 우정과 증오가 뒤섞인 불안한 균형만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관계의 균형에 누군가가 들어와 균열을 낼때 일어나는 파동영화 마지막까지 추동한다. 


반면 윤성현은 앞서 말한 것처럼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데 큰 재능이 없고, 서사와 캐릭터의 연출이 평이하다.

그러니까 윤성현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새로운 규칙을 제시하는게 아니라, 이미 현실에 존재하는 세계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포착해 깊이 곱씹는데 장기가 있는 감독이다.


<파수꾼>은 현실에 있을법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인물들 사이 관계에 집중한다. 여기에 '사망사건의 전모'라는 장치도 더해져 단점들이 가려지면서 윤 감독의 장기들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반면 <사냥의 시간>에서 윤 감독은 본인의 장점을 덜어내고 우화적인 가상의 세계 창조하는데 공을 들이는데, 이 점이 오히려 그의 고질적인 약점들(서사, 캐릭터 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윤성현의 기량에 아주 큰 차이가 없음에도 두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의 다른것은 감독이 집중한 면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티스트에게 장기와 지향이 다른것은 흔한  일이다. 윤 감독에게 <파수꾼>은 자신의 장점을, <사냥의 시간>은 지향을 좇은 작품이라고 느껴지며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 다만 그가 상업영화계에서의 지속적인 생존을 바라다면 둘을 구분해 적절히 배합하는 센스 필요할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들, 그리고 최우식

<사냥의 세계>에서도 이미지 다음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여전히 인물들 사이의 관계와 감정이다.

윤성현의 영화에서 남성들은 자주 친구관계와 서열관계를 아슬하게 오간다. 그는 왜 이런 관계를 예민하게 주시할까. 또 윤성현의 친구들은 어째서 자주 삼각구도를 유지하는 걸까. 구도, 채무자도 아닌채로 위성처럼 맴도는 상수(박정민)의 위치는 어디인가. 장호(안재홍)는 왜 자꾸 기훈의 옷을 훔쳐입을까. 혹은 기훈은 왜 자꾸만 그런 착각을 하는걸까. 윤성현의 영화에서 행복한 가정과 어딘가 결여된 가정의 아이들이 친구로 만나 한 무리를 이루는 이유는 뭘까. 인물들 사이에 숨겨진채 발화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눈길을 잡아끈다.


이제훈, 안재홍, 조영하, 박해수 등 배우들의 열연도 빛이 나는데 그 중에서도 나는 최우식의 퍼포먼스에 놀라움을 느꼈다. 그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배우하기 좋은 얼굴, 눈이 크고 선이 굵은 얼굴은 아니다. 그래서 역으로 그의 깨끗한 페이스 <사냥의 시간>이나 <기생충>처럼 우화적인 영화에 딱 들어맞는 느낌이 있다.

또 그는 장면마다 놀라운 집중력으로 영화에 설득력을 부여하는데, 다른 배우들은 물론 최우식의 표정 하나로 설득된 장면이 한둘이 아니다. 그가 골똘한 표정으로 현실을 고민할 때 나는 저 세계 어딘가에 생존을 갈망하는 청년이 있다고 느끼고, 그가 개구진 표정으로 친구들을 떠날때 그런 선택 이면에 또다른 사연이 숨어 있으리라 믿게 된다.

찢어진 눈, 마른 몸에 장난스런 웃음. 최우식 만큼이나 자신의 특징을 알고 매력으로 발산하는 젊은 배우는 드물다. 그가 이런 에너지를 유지한다면 향후 좋은 배우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냥의 시간>을 관람할 시간

<사냥의 시간>을 둘러싼 반응들은 한국 영화계에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진다. 감독과, 영화사 및 홍보사, 그리고 관객 사이에 쌓인 작은 오해들이 얼마나 큰 파장을 가져올 수 있느냐가 그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오해에서 쌓인 불만은 영화가 오롯이 뒤집어 쓰게 된다. 오해를 벗을 시간도 없이 소비의 시간은 지나가곤 한다.

영화에 대한 감상 어떻게 참견하겠냐만은 관람의 재미라는 것도 시각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사냥의 시간>이 편견없이 소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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