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해

'새 해'를 생각하면 커다란 제야의 종이 울리고 새 날을 영접하는 사람들의 상기된 얼굴이 연상된다. 이 이미지는 올 해도 어김없이 반복된다. 나는 신년의 첫날마다 머릿속 '새 날'의 화려한 이미지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1월 1일' 사이의 괴리에서 얼마간의 민망함을 느낀다.


진실을 말하자면 일상에 절인 나의 몸은 머리가 만들어낸 계획보다 이미 익숙한 어제의 일상을 향해가게 될 것이다. 새 해, 새 날은 우리가 만들어낸 관념이며, 제야의 종이 울릴 때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그 관념의 그릇에 담은 우리의 염원이다. 어제와 달랐으면, 나이 든 만큼 성숙했으면, 나쁜 일은 끝이 나고 좋은 일들이 시작됐으면. 오늘이 내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으면.


그 염원들이 어디를 향해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같은 장소에 모여 무언가를 소원하는 얼굴만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는 염원을 향해 모아진 손과,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는 눈과, 다정한 것들을 고백하는 입이 있다. 그 낭만적이고 주술적인 광경 앞에서 무수한 영화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래서 내게 새 해는 영화적이다. 올해도 영화적인 찰나를 마주할 수 있었던 것 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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