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an 27. 2020

재능이라는 '생물'

흔히들 재능은 '선물'이라 말하지만 사실 재능은 '생물'이다. 선물은 생명 없는 무기체지만, 재능은 살아 숨을 헐떡이는 유기체다.  

재능은 반짝이지만 뭇 사람들의 통념과 달리 '보석'이 아니다. 보석은 그대로 두어도 변하지 않으며, 소복히 쌓인 먼지만 후후 불어내면 다시 반짝인다. 그러나 재능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눈알을 번쩍이며 태어나 주인의 가슴속에 내던져진 작고 여린 짐승이다. 그래서 재능은 정성들여 키우지 않으면 쉬이 숨을 거둔다.

 

재능이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특질은 그것이 죽었을 때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유기체이므로 숨을 거둔 후부터 썩기 시작한다. 보석은 처박아 두었을 때 존재감을 감추지만, 재능은 오히려 독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사방에 악취를 풍기며 자신을 홀대한 주인에게 복수를 가한다. 그것의 주인은 제때 키우지 못한 재능의 시체를 안고서 제 가슴 속에 피어나는 악취와 독에 감염돼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그래서 죽은 재능을 지닌 자들은 주변에 독기를 뿜어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재능이 지닌 빛 만을 바라보며 그것의 어두운 이면을 모른다. 정성껏 키워낸 재능의 위풍당당한 자태에 경탄할 뿐, 그것을 홀대한 자들이 온 몸으로 감내하는 지독한 통증을 보지않기 때문이다. 재능은 선물이 아니라, 선물이 될 가능성을 지닌 성질 나쁜 짐승이다. 그것은 성미가 채워지지 않을 때 주인의 가슴을 햘켜 시뻘건 피를 흘리게 한다. 마치 제가 여기 숨쉬고 있음을 알아달라는 듯 말이다. 그래서 자기 안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평생에 걸쳐 소중히 키워내는 것은 재능을 갖고 태어난 자들에게 주어진 엄중한 과제이자 의무다.  


글을 쓰는 경우를 얘기해보자면, 내가 생각하는 글쟁이들은 글을 잘 써서 쓰는 것이 아니다. 쓸 수 밖에 없어서 쓰는 것이다. 언어화되지 않은 풍경을 자기만의 언어로 붙잡아 종이 위에 새기지 않고서는 가슴 속의 답답증이 풀리지 않아 지랄이 나는 사람들이 글을 쓴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남이 쓰면 배알이 뒤틀리고 넘을 수 없는 글을 보며 분함에 눈물이 차오르는 들은 시키지 않아도 펜을 잡는다. 남의 글을 흉내내고 훈련한다면 머지 않아 글을 잘 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작가가 되지는 못한다. 작가는 작가의 재능을 타고난 자들이 지독한 열병을 앓고 나서야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재능을 게으르게 방치하는 자들을 싫어한다. 그것을 변하지 않는 보석이라 여긴 어리석었던 과거의 내 모습과, 기아처럼 삐쩍 말라버린 재능을 부여잡고 뒤늦 가슴을 치던 시절의 고통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건대, 재능은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운명이 햘퀴고 간 자리에 남은 상흔이며, 주인을 노려보며 옅은 숨을 내뱉는 작고 고약한 생물체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 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