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un 07. 2020
유튜브 댓글에서 보이는 '서사 부여하기' 놀이
요새 가장 흥미롭다고 느끼는 문화현상은 유튜브 댓글에서 보이는 '서사 부여하기' 놀이다.
예를 들면 남녀의 데이트 영상 밑에는 "전교 1등 모범생 여주와 날라리 남주의 첫 데이트"라는 댓글이 달리고, 멋진 연예인 사진 밑에 "임무수행 중인 스파이가 잠시 무방비하게 방심하다 찍힌 모습"이라거나 "같은 하숙집에 사는 학점 좋고 인싸에 성격까지 좋은 과 언니가 지나가다 인사하는 모습 같다"는 댓글을 달리는 식이다.
나는 하나의 이미지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상상을 공유하며 벌이는, 이 자발적인 '서사 부여하기' 혹은 망상놀이가 꽤 유의미하다는 생각을 한다.
짧은 영상이 난무하는 지금의 유튜브 시대를 두고, 많은 이들이 '서사없는 이미지 조각들이 홍수처럼 난무하는 시대'라는 혹평을 했다. 그런 평가 속에서 이런 댓글놀이는 내게 새로운 세대가 단순히 이미지 조각들을 수동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중요한 사인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짧은 영상이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마치 인형의 옷을 갈아입히듯 영상에 다양한 이야기를 덧입히며 그렇게 달라지는 이미지의 느낌을 맛보며 유희한다. 이처럼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이미지를 소비하던 세대가 있었나?
또한 '서사 부여하기' 놀이는 비주얼의 시대에서도 역설적으로 인간의 감성을 움직이는데 서사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자주 이미지를 앞에 두고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본다. 한복을 곱게 입은 여인이 잔잔한 바람을 맞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이미지가 가슴을 친다면 그 안에서 어느 도령과의 비극적인 이별을 보았기 때문이다. 굳게 입을 다문 채 칼을 뽑고 돌진하는 전사의 모습에 가슴이 뛴다면 그것은 사생결단의 순간을 앞에둔 치열한 전장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운 이미지와 적당한 맥락, 그리고 서사의 완전한 결합은 보는 이의 감성을 굴복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유튜브 영상이나 짤 밑에 그리도 많은 스토리성 댓글이 달리는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조각난 이미지를 정형적인 서사에 붙여 더 풍부한 해석과 상상을 끌어내 맘 속 깊은 곳의 감상까지 흔들어 맛보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한마디로 영상을 더 맛있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려는 유희적인 행동.
매체와 유행이 바뀌어도 관객이 짧은 영상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 이야기가 이렇게나 이미지의 소비를 다채롭게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 창조적인 놀이가 자발적으로 이뤄진다는 것. 이런 무수한 의미를 던진다는 점에서 그 장난스런 댓글들은 내게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