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Oct 05. 2020

필사하는 법에 대하여

기의 훈련법 중 하나라는 필사.

일반적인 독서가 눈의 유희와 머리의 깨달음에 머문다면 필사는 손의 훈련으로 나아간다. 필사는 단어를 하나하나 곱씹어 읽는 독서법으로 이해된다. 개인적으로는 최근까지 필사에 큰 관심이 없었다. 책을 손으로 글자화하는 시간에 눈으로 한번 더 보는게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생각 에서다. 하지만 최근에는 필사의 유용함을 새로 느끼고 있어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물론 이건 내가 애용하는 나만의 방식이니, 당히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필사의 방법에 대한 말들이 많지만, 맘에 드는 책을 고르고 따라 쓰는 것이 보편적인 경우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마치 'listen and repeat'처럼 눈에 익은 문자를 바로 따라쓰는 방식은 큰 의미가 없다. 생각하지 않고 하는 필사는 심할 경우 받아쓰기로 전락해버린다.


필사가 정말 효과가 있으려면 눈으로 보는 시간과 손으로 쓰는 시간 사이에 간극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음식을 입에서 우물우물 씹다가 그대로 뱉어내는 것이 아니라, 씹어 삼켜 넘기고서 다시 토해내는 것처럼 나의 내장을 관통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방법은 이렇다. 우런 맘에 드는 문장을 꼼꼼히 읽는다. 뜻과 표현까지.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음미, 혹은 망각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노트북 혹은 노트 앞에 자세를 고쳐앉는다. 방금 본 문장이 전달하려던 의미를 그 저자의 문체 그대로 구현해 본다. 당연히 실패하겠지만 좌절할 필요는 없다. 이 훈련은 그 실패에서 시작되니까. 찬찬히 내가 쓴 문장을 원래의 문장과 비교해 본다. 내가 구현하려 했으나 하지 못한 것들이 보일 것이다.  지점을 자각하고 느끼며, 원한다면 다시 한 번 쓰는 것 까지가 내가 생각하는 필사다.


이런 필사의 장점은 나만의 문체 혹은 '쪼'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금 본 문장의 내용을 그 문체대로 구사하려고 해도, 손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생각을 활자화하는 나만의 방식, 내게 좀 더 익숙하고 편안한 문체를 절로 구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필사는 늘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되는 나의 문체를 자각하고 부수어, 글쓰기의 외연을 넓힐 수 있는 좋방법이다.


글을 반복해서 써 본 사람은 안다. '나만의 문체'는 쉽고 빠르게 글을 쓰는 편한 도구인 동시에 나의 제약이자 한계이며, 그것의 외연을 넓히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이때 필사는 하나로 굳어져가는 글쓰기의 틀을 부수고 고인 물을 휘젓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필사는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며 모범적인 사례를 찾는 사람 만큼이나, 굳어진 습관을 깨고 성장하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사실 필사를 자주 하지 못한다. 바쁜 일상 중에 책을 열어 활자를 읽는 것도 어렵지만, 좋은 문장을 다시 한 번 들쳐보는 일은 더욱 어렵고, 노트를 펼쳐 필사를 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새 문체를 구사하는 일은 외국어를 배우거나 안쓰던 근육을 키우는 일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치 않은 것을 새로이 습득하는 일이라 녹록치 않은 것이 당연하다. 넘치는 의지로 애만 써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제대로 된 방식의 반복적인 훈련이 우리에게 성취를 안겨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홀로 배우는 글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