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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Feb 08. 2021

이토록 부드러운 카타르시스, <버로우>

그 영화적 흐름이 주는 위안

※스포있음


<소울>이 상영되기 전 잠시동안 만날 수 있는 픽사의 단편애니메이션 <버로우(Burrow)>의 내용은 간단하다.

한 마리 토끼는 자신의 보금자리를 짓기 위해 토끼굴을 판다. 하지만 아무리 굴을 파도 두더지, 오소리, 지렁이 등 땅 속 이웃들과 마주치는 통에 온전한 자신만의 공간은 찾을 수가 없다. 토끼는 이웃을 피해 아래로 아래로 땅을 파다 물길을 잘못 건드린다. 토끼는 용기를 내어 다른 동물들에게 솔직히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땅속 마을이 수몰 될 위험에 빠졌음을 알린다. 우여곡절 끝에 함께 땅 위로 피신한 동물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다시 자신들의 포근한 공간을 마련하게 된다는 해피엔딩 스토리.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스토리가 아니다. <버로우>만의 영화적 흐름은 특별하다. 그 점을 언급하지 않고 못배길 것 같아 노트북 앞에 앉았다.


처음 자신의 집이 두더지가 사는 옆 집과 이어져 있음을 알게 된 토끼는 깜짝 놀란다. 토끼가 동물들을 피해 도망치며 새로 짓는 굴들이 화면에 거듭해서 나타난다. 갖은 형태의 굴들이 반복된다. 그 아기자기한 장면들 위로, 자신만의 공간을 찾는 토끼의 집념에서 뿜어져나오는 긴장감이 고조된다.

곧이어 잘못 물길을 건드린 순간,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토끼는 자신이 모두 망쳤다는 표정으로 이웃 동물들을 찾아간다. 민망하지만 후련한 고백의 순간. 그리고 동물들이 땅 속을 도망치다 마침내 지상 위로 도망친 순간, 지하에서 지상으로 배경이 바뀌며 화면이 밝게 전환된다. 그 순간 지상 위로 터져나온 물길이 작은 분수처럼 쪼르르 흐르다 사라진다. 부드러운 카타르시스의 순간. 동물들은 잠시 환호성을 지르다, 무슨 일 있었는 듯이 각자 흩어진다. 이렇게 대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던 순간은, 걱정한 토끼가 무안할 정도로 명랑하게 해소되어 공중에 흩어진다. 긴장과 해소, 걱정과 해결 사이. 그 온도차는 왠지 모를 위안을 전한다. 마치 우리를 향해 '거 봐, 걱정하지마. 별 일 아니잖아'라고 말하는 듯 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토끼는 더 이상 이웃과의 연결을 거부하지 않으며, 땅 속 마을 어딘가에 자신의 굴을 마련한다. 얇은 통로로 연결되며, 보이지 않지만 서로를 느낄 수 있는, 그렇게 신나고 따듯한 땅속 나라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영화의 제목 '버로우(burrow)'처럼 자신만의 세계로 수렴하는 이들을, 이토록 부드럽게 세상속으로 이끄는 영화가 또 있을까.


<버로우>를 시종 관통하는 것은 서서히 고조되다 부드럽게 해소되고 밝게 흩어지는 그 '영화적 흐름'이다. 명랑하며 우아한 에너지의 흐름. 그 장면들은 오로지 긴장과 해소 간의 온도차 만으로 언어화되지 않은 위안을 전한다. <버로우>가 동심을 품은 애니메이션인 이유는 단지 귀여운 작화로 그려졌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영화적 흐름만으로 이토록 따스하고 낙관적인 삶의 위로를 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 분의 시간 동안 그려진 선과 색을 바라보는데, 어쩔 수 없이 마음이 꿈틀댄다. <버로우>를 훌륭한 단편 애니메이션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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