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승리호>를 연출한 조성희 감독은 자신만의 영화적 세계관이 상당히 뚜렷한 감독이다. <늑대소년>(2012),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2016) 등 전작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몽환적이고 시대적 배경이 불분명한 희뿌연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또한 매우 동화적이라, 아이는 어른같고 어른은 아이같다. 아이와 어른이 한데 어울려 놀고 싸우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어느 한 켠에는 어두운 비밀을 숨어 있어서 세계 전체에 내밀한 긴장이 흐르며, 낯선 손님의 등장으로 균열이 일어나고 고요히 요동친다. 이것이 조성희 영화의 기본적인 세계관이다.
조성희의 장점은 그 이상한 세계를 '영화적으로' 설득한다는 데 있다. 대자연의 자욱한 안개를 마주했을 때 무슨 말이 필요할까. 우리는 그 무드에 조용히 스며들 따름이다. 조성희의 영화도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그저 비주얼로 성큼 다가온다는 장점이 있었다. 때로 과도하게 '개연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한국 영화판에서 그런 대범함은 귀하다.
하지만 <승리호>가 과연 조성희의 장점이 발휘된 작품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아니라고 본다. <승리호>는 조성희 작품답지 않게 자꾸만 여러가지를 주절주절 설명하는데 시간을 소비한다. 일단 처음 시작되는 10분 동안 영화는 자신의 정서와 무드, 다른말로 '느낌'을 관객에게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세계는 오락적인가, 음울한가, 낙관적인가, 비정한가, 여리고 섬세한 10대의 세계인가, 거칠고 외로운 단독자의 세계인가. 하지만 <승리호>는 시작되고서 한참 동안 자신만의 정서를 또렷이 전달하는 대신, 여러겹의 설정들을 설명하느라 갈피를 잃은 듯하다.
한국에서 거진 처음 시도되는 '우주 SF 장르'라는 점은 높이 쳐줄만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처음 시도한 걸 이만큼 해냈다니 대단하다는 것이지, 객관적으로 훌륭한 수준의 영상이라는 말은 못하겠다. 설 명절을 앞두고 개봉되는 가족형 블록버스터의 느낌도 더해졌다. 신파가 강해졌고, 꺄르륵 꺄르륵 하는 둔탁한 유머도 추가됐다. 아이에 대한 인류애를 강조하는 부분도 다소 과하다는 인상이다. 한 마디로 여러가지 볼거리를 모아 하나의 패키지에 담느라, 다소 산만해졌고 조성희의 색깔은 흐릿해졌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왼쪽)과 <늑대소년>(오른쪽) 스틸컷
개인적으로 그를 한국 영화계의 차세대 주자로 꼽을 정도로, 전작에서 보인 조성희만의 장점은 흔치 않고 뚜렷하다. 70~80년대 스타일인 듯 촌스럽고 동화적인 비주얼도 독특하고, 여기에 디스토피아적인 암울함을 한 방울 가미하는 감각도 맛있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에서 돋보이는 세련된 리듬이 좋다. 그는 '전환의 타이밍'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 영화가 지루하지 않다. 무엇보다 이 모든 감각을 설명하려 들지 않고 그저 묵직하게 전달하는 뚝심이 좋았다.
하지만 <승리호>에서 옅어진 색채는 못내 아쉽다. 한국식 요리로 인기를 끌던 식당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자 퓨전 김치찌개를 내놨는데 그 찌개가 그닥 맛있지 않았을 때의 서운함. 지난해 <사냥의 시간>을 내놓은 윤성현 감독과 한국영화아카데미 동기라고 하는데, 둘다 영화계 신예로서 주목받고 넷플릭스에 진출한 뒤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으니, 이건 어쩌면 차세대 한국 감독들에게 공유되는 이슈일지도 모르겠다.
<승리호>에는 장단점이 공존하지만, 조성희의 필모에서 이 작품이 뼈아픈 이유는 그만의 태도를 견지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강박적으로 세계관을 설정하며, 스쳐 지나가는 소품 하나로도 일일이 세계관을 설명하는 영화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세계관은 논리로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적으로 설득하는 것이다. 감독은 자기 영화만의 정서와 무드로 관객을 압도할 줄 알아야 한다. 영화적인 설득은 관객의 머리가 아닌 눈과 마음에서 순식간에 마법과 같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그 점을 알았을 법한 조성희가 <승리호>에서 집중력을 잃었던 것일까. 그만의 장점이 담긴 작품으로 돌아오길 바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