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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픽사가 내놓은 신작 <소울>을 극장에서 접하고서 나는 쉽게 언어화 할 수 없는 묘한 기쁨과 편안함을 느꼈다. 한참 동안 영화를 곱씹고 나서야 비로소 그 감정의 형태를 조금씩 글로 옮기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 글은 그 감정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과, 그곳에 다다른 뒤에 느낀 점을 고백하기 위해 썼다.
<소울>을 보며 일차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어떤 경계, 틈새, 중간지대에 대한 감각이다. 마치 이 영화가 견고한 두 지대 사이의 미세한 틈을 천천히 벌려서 그 기묘한 공간 위에서 이야기를 펼쳐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의 주인공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는 오디션에 합격하고 신나게 길을 걸어가다 맨홀로 쏙 빠져버린다. 조는 그 짧은 찰나에 죽을 위기에 처하고 저승으로 향하는 길 위에 도착하게 된다. 이 갑작스럽고도 담대한 전환은 토끼굴에 빠져 다른 나라에 도착해버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그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혼들을 위한 '태어나기 전 세상(The Great Before)'에 도착한다. 지상과 지하 사이의 맨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사경'에 빠진 상태, 이승도 저승도 아닌 그 사이의 어딘가. <소울>은 어느 한 쪽에 속하지 않은 중간지대들을 자꾸만 우리 앞에 소환해낸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무아지경'이다. 영화에서는 '거기(The Zone)'라고 불리며, 몸과 영혼 사이에 위치해 사람이 무언가에 몰입할 때 진입하는 영역으로 공간화된다. 밤하늘처럼 까만 배경에, 어딘가 몰두한 영혼이 별처럼 둥실 떠있고, 괴짜 선장이 신나게 배를 몰고 나타나 상처받은 영혼을 구해내는 환상의 공간. 이 곳 역시 두말 할 것 없이 앞서 말한 경계적 공간이다.
그러니까 <소울>은 일상 속 어딘가에 끼여 있어서 우리의 눈길이 머물지 않는 그 공간들을 자꾸 불러낸다. 우리의 굳은 관념에 균열을 내며, 견고한 것이 아니라 틈입하는 것, 오래 건제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그 무언가에 관심을 기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배경이 이런 곳으로 설정되는 것은 <소울>의 메세지와도 연관이 있다.
조의 여정이 이어지며 <소울>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그것은 결국 조와 22번(티나 페이)이 찾는 '불꽃'의 재료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나 영리하게도 영화는 그 해답을 하나의 단어로 답해주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모험을 찬찬히 공유하며, 이 중에서 불꽃의 재료는 무엇이겠냐고 우리에게 반문한다.
그간 픽사의 작품들과 비교해 보아도 <소울>에는 유독 무지로 남겨진 부분이 많다. 조가 소멸 전에 다른 영혼에게 '왜 도망치지 않느냐'는 취지로 묻자 다른 영혼은 충격적이게도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무아지경과 같이 멋진 공간도 그저 대명사에 가까운 '거기'로 불린다. 22번이 반복해 말하는 '재징(Zazzing)'은 존재하지 않는 단어이며, '불꽃'은 곧 '삶의 목적' 아니냐는 질문에 제리는 웃으며 지나친다. 여러 가지 물음에 <소울>은 거의 필사적으로 언어화 된 답변을 거부한 채, 관객인 우리가 직접 보고 느낄 것을 고집한다.
자각의 순간에 도달하기 위해 <소울>은 특별한 설정을 가져온다. 불꽃을 이미 안다고 생각해 더 이상 그것을 찾지 않는 남자와, 오로지 불꽃만을 모르는 한 영혼을 결합해 그것의 의미를 재탐색하는 것이다. 세상에 처음 온 영혼이 다른 이의 몸을 통해 생생하게 느끼는 지구의 순간들. 그러니까 <소울>은 마치 지구에 처음 도착한 것 같은 새로운 영혼으로, 온 몸을 통해 지구의 삶을 감각하라고 말한다. 불꽃은 그 순간들에 숨어있다고 말이다.
결국 '불꽃'이, 우리 삶에 불을 지피고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그 무언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는 마지막에 드러난다. 그것은 하나의 단어로 요약될 수 없지만, <소울>을 본 우리는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피자를 처음으로 한 입 베어 문 순간의 즐거움, 부끄럼 없이 환풍구에 벌렁 누워 바람을 느끼다 우연히 하늘을 본 순간의 벅차오름. 헤어샵의 의자에서 우연찮게 고백한 인생 이야기에 다른 이들이 집중할 때의 위안. 하늘에서 팔랑팔랑 떨어지던 잎새가 손에 안착할 때 느껴지는 경외. 음악을 사랑하는 어린 제자를 볼 때의 감격. 이 모든 순간들이 삶의 불꽃을 만든다는 점을 말이다.
고요한 밤에 피아노를 치던 조는 우연히 그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때 이미지들이 연속적으로 떠오르며 풍성한 감상을 자아내는데, 이것은 한 음 한 음이 자유로이 모여 마침내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재즈의 선율과도 닮았다. 그렇게 조의 불꽃들은 한 곡의 재즈로 변모한다. 하나의 언어로 정돈할 수 없고 오로지 영화를 통해 닿을 수 있다는 면에서, 불꽃의 정체는 이 영화의 배경인 경계적 공간과도 조응한다.
어째서 우리 내면에 여러 인격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인사이드 아웃>). 우리를 지켜보는 죽은 자들의 세계가 있을까(<코코>). 세상에는 과학이 해결해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 끝내 미지로 남겨지는 주제들이 있다. 픽사는 그 주제를 가져와 자신만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채색하고 우리를 설득시킨다. 그리고 올해는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뻔한 교훈을 들고 나타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뻔한 교훈들을 픽사가 이야기할 때면 언제나 눈물이 난다. 그런 면에서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꾸며낸 것을 알면서도 너무 아름답고 따듯해서 믿게 되는 동화와 같다.
그러니 누구든 한 번쯤 그 뻔한 교훈을 믿어보기를 바라겠다. 오늘 하루도 '재징'하기를, 가슴의 불꽃을 태우며 지구에서의 삶을 만끽하기를 바라겠다. 영화 <소울> 속의 그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