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홍수정 Apr 24. 2021

내게 주어진 유일한 목적지, <서복>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두 남자를 대비하며 메세지를 향해가는 <서복>

<서복>은 서복(박보검)과 민기헌(공유)을 대비시키며 메세지를 향해가는 영화다. 너무 빠르게 죽어가는 기헌과, 너무 빠르게 성장하는 서복. 환상에 시달리는 기헌과 환상을 만들어내는 서복. 삶에 대한 끈을 놓지 못하는 기헌과 너무 일찍 놓아버린 서복. 이미지 상으로도 공유는 핼쑥하고 무채색에 가깝다면 서복은 새 잎사귀 같은 생명력을 풍기며 컬러감이 도드라진다.

그러나 둘은 똑같이 망가졌고, 삶의 의미를 상실했으며, 목적지를 잃고 부유한다. 그러니까 <서복>은 같은 듯 전혀 다른 두 남자가 힘겹게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순수한 듯 하지만 삶에 통달한 서복은 선지자에 가깝고, 기헌은 구도자에 가깝다. 기헌은 종종 삶의 의미를 나직이 읊는 서복의 모습을 망연히 바라본다. 흰 가운을 입고 물을 가르는 서복의 모습은 예수의 이미지와도 겹친다. 인간과 다른 불사의 몸이지만 고통을 감내하며 기헌에게 깨달음을 준다는 측면도 그렇다. 영화의 말미에 연구소로 돌아간 뒤 한 번 잠들었던(죽었던) 서복은 다시 깨어난 뒤 연구소를 파괴하고 나오는데, 이때 철벽을 뚫고 나오는 서복의 이미지는 죽은 뒤 무덤에서 살아나는 예수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이용주 감독은 <불신지옥>에서도 종교적인 코드와 현실의 갈등을 접목시키며 영화의 메세지를 향해 접근하고는 했다.


고통인 것을 알지만, 내게 유일한 집을 향해

<서복>의 두 남자는 목적 감각을 상실한 상태다. 한 명은 연인에 대한 죄책감에, 한 명은 삶의 무의미함에 아파한다. 또 주변의 인간들은 삶에 대한 집착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린다. 그들이 겪는 통증은 인간사의 근본적인 괴로움과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삶의 고통 가운데서 우리가 끝내 가야 할 곳은 어디냐고 영화는 묻는다. 이에 대한 답은 서복이 알려준다. 연구소는 그에게 고통만을 안겨주는 곳이지만 그의 유일한 집이자 고향이다. 또 임세은(장영남)은 비록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그를 창조했지만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가족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분명히 드러나듯이, 서복은 연구소를 벗어날 힘이 있음에도 제 발로 돌아간다. 이곳이 그의 목적지이자 숙명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잠시 동안의 외출도 더욱 빛이 나는 것 같다. 이것은 아마도 <서복>이 전하는 삶에 대한 비유일 것이다. 우리는 죽을 것을 알면서, 사실은 인생에 그다지 큰 즐거움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일상을 살아간다. 과도하게 포장하지 않으면서 좌절하지도 않는 담담한 수긍. 마치 순례자의 발걸음 같은 그 여정이 삶 아니겠냐고 영화는 말하는 것만 같다.



잘 짜여졌지만 아쉬운 점도 많은

푸르스름한 바다를 배경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천천히 방황하는 두 남자의 이미지가 기억에 선명히 남는다. <서복>은 내게 아련하고 공허하면서도 어딘가 포근한 인상으로 각인됐다.

특히 처음 재래시장을 본 서복이 우주복과 같이 하얀 옷을 입고 시장을 천천히 둘러보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이때 서복을 중심으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하며, 그는 마치 '시장'이라는 새로운 우주를 부유하는 우주인처럼 느껴진다. 이때 익숙한 시장은 낯선 외계의 공간처럼 느껴지고, 서복이 느끼는 신기한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일상의 익숙한 공간을 이질적이고도 색다른 하나의 우주로 이미지화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서복>은 아쉬운 점도 많은 작품이다. 일단 그 단단한 구성력이 내게는 조금 과하다는, 지나치게 잘 짜여졌다는 인상을 준다. 이것은 마치 자리에 마주 앉은 상대방이, 말쑥한 옷을 입고 완벽한 미소를 띠며 날씨, 건강, 직업 등의 티피컬 한 화제들을 술술 읊을 때 느껴지는 약간의 위화감과 부자연스러움에 가깝다. 나는 영화는 상품보다 사람에 가깝다고 느낀다. 빈틈없이 아귀가 착착 들어맞는 전개에 이미 답을 예정한 질문들. 이것은 관객에게 사유의 틈을 주지 않으며 작품 안에서 헤맬 어떠한 공백도 주지 않아 도리어 부자연스럽다.

 

또 CG와 이미지는 이쁘지만 영화의 디테일은 다소 떨어진다. 이런 점은 영화의 감독이 이용주 감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아쉽다. <건축학개론>에서 봤듯이 그는 일상에서 날것의, 생생히 살아있는 디테일을 건져낼 줄 아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배우들, 박보검과 장영남

사실 내가 <서복>을 보며 가장 놀랐던 부분은 박보검의 연기력이다. 이 영화에서 박보검은 순수하면서도 삶의 고통을 감내하는 젊은 청년의 모습을 뚝심있게 전달한다. 특히 그는 거대한 통증을 견디는 서복의 이미지를 탁월하게 소화한다. 이런 장면들이 자칫 허무맹랑해 보이는 SF 설정을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잘생긴 얼굴의 탓인지 박보검은 내게 스타에 가까웠다. 하지만 <서복>을 통한 가장 큰 수확 중 하나는 박보검이라는 배우의 발견이다.

다만 <차이나타운>(2014)에서도 박보검의 연기를 좋게 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아픔에 시달리며 모성애를 자아내는 젊은 청년의 얼굴을 특히 잘 소화한다는 인상도 있다. 연기의 폭을 넓혀가며 더 좋은 활동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또 하나, 장영남의 연기를 언급하고 있다. 그녀가 탁월한 연기자라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영화의 초반에 등장해 '사람들 참 겁이 많다'며 냉소하는 장영남의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 후 쓰라린 모성애를 간직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성 캐릭터 중에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팔색조가 많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언젠가 장영남이 그런 역을 맡는다면 정말 잘 해낼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든다.


공유의 경우 연기가 나쁘지 않지만, 연기의 틀이 단단해지며 언젠가부터 익숙한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것 같다. 그가 맡는 캐릭터는 크게 두 가지, 약간 장난기 있으면서도 로맨틱한 역할이거나, 어딘가 충직하며 로열티 있는 것으로 양분되는 감이 있다. 비열하고 폭력적인 모습, 소심하고 찌질한 모습, 괴짜, 피해자, 히피, 권력자, 그 외 예상치 못했던 다양한 역할로 돌아와 관객을 놀라게 해 주길 기대한다.


박병은의 경우 기본적으로 그의 연기가 훌륭한 것을 알고 있고, 배역에 진지하게 접근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입을 크게 쓰지 않고 약간은 경직된 듯 진지한 표정으로 연기하는 이미지가 다소 많이 반복되는 느낌이다. 힘을 쭉 빼고 가볍고 경쾌한 느낌을 많이 가미해 더욱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적 징벌을 향한 욕망, <소년 아메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