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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May 02. 2021

배우와 캐릭터, 그 기적같은 만남 <더 파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 남자의 시간 속으로

영화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시각에서 진행된다. 반나절이 지난 줄 알았는데 몇 년이 흘러있다. 나간 딸 애는 연락이 없고, 모르는 이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안소니의 시간은 자꾸만 조각조각 끊어지고, 엉뚱한 지점에서 다시 시작되고는 한다. 담담하게 진행되는 그의 일상은 당황스러움과 상실감으로 자꾸 채워진다. 그는 매 순간마다 입을 꾹 닫고 놀란 가슴을 숨기지만, 옅게 떨리는 눈동자는 그의 당황스러운 심경을 알게 한다. 그는 애써 농담을 건네며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애쓰는데, 그런 모습이 관객의 가슴을 두드린다. 그렇게 <더 파더>는 한 고령의 남자의 일상 속으로 우리를 초대해 그곳에 고요히 머무르게 한다. 그곳에는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빛깔의 감정이 있다. 


한 명의 배우와 하나의 캐릭터. 그 기적적인 만남

이 영화에서 안소키 홉킨스는 주인공인 아버지 '안소니'를 연기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늘 보던 안소니 홉킨스가 이렇게 연기를 잘했나,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그의 딸인 '앤' 역할은 올리비아 콜맨이 연기하는데, 재밌게도 올리비아 콜맨은 2018년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도 '앤 여왕' 역할을 맡은 바 있다. 안소니가 불안한 목소리로 "앤!"을 외치는 모습을 볼 때면 고심하게 된다. 지금 저 '안소니'는 그저 만들어진 캐릭터인가. 순간적으로 현실의 안소니 홉킨스가 한 조각 튀어나와 영화에 묻어버린 것인가. 혹은 우유에 에스프레소가 번지듯 캐릭터와 배우가 서로에게 침투해 새로운 그 무언가를 창조한 것인가.   


단언컨대 <더 파더>는 안소니 홉킨스와 만나 잊혀지지 작품으로 남았다. 우리가 영화 속 '안소니'를 보며 받는 감흥은 단순히 캐릭터나 연기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양들의 침묵>(1991), <한니발>(2001), <두 교황>(2019) 등을 거치며 그의 평생에 걸친 연기를 봐 온 우리가, 삶의 막바지에 이른 한 노인을 연기하는 안소니 홉킨스의 모습을 볼 때에서 오는 감상과 맞닿아 있다. 


영화에서 우리는 '안소니'라는 남자와 그것을 연기하는 안소니 홉킨스를 함께 본다. 이 순간들은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흥을 자아낸다.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듯, 안소니 홉킨스와 '안소니'라는 캐릭터의 만남도 단순한 결합 이상이다. 그리고 안소니 홉킨스는 기가 막힌 연기력으로 이 신비한 만남의 결과물을 스크린에 새겨넣는다. 이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평생 한 가지에만 몰두해 온 장인이 힘을 빼고 쓱 만들어낸 세공품 같다. 그의 움직임과 표정, 손동작 하나까지 모두 담백하지만 아름다우며 감동적이다. <더 파더>(2021)는 대체불가능한 배우와 영화 속 캐릭터가 기적적으로 만나 마술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 사례로 우리 곁에 오래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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