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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Jan 21. 2018

<코코>에서 보이는 픽사 감성의 변화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픽사의 감성은 '달콤쌉싸름하다'는 말이 잘 어울린다. <토이스토리>는 아이가 떠나가는 과정을 '장난감'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인사이드 아웃>은 유년기의 친구인 빙봉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윌-E>는 버려진 지구에서 홀로 일하는 로봇의 모습을 시종 멜랑콜리하게 바라, <업>은 아내와의 과거를 추억하는 노인의 감성을 더듬는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나온 시절에 대한 작별'을 다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픽사 애니메이션의 특별한 점은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어느 시절에 대한 감상'자신들만의 감성으로 그려낸다는 점에 있다.



        " 코코, 픽사 감성의 변화 "

러나 <코코>에 이르러 픽사의 전통적인 감성에 어딘가 변화가 생겼다. 이러한 변화는 <코코>와 <업>을 비교하면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코코>는 <업>과 많이 닮았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모험을 떠나고, 동경해 온 우상을 만나지만 그는 사실은 악당이며, 주인공들은 꿈의 성취 이면의 가치를 배운다. 그 가치가 가족에 대한 유대라는 점 역시 비슷하다.



   " 코코가 잃어버린 픽사의 감성 "

그러나 <업>과 달리 <코코>에서 픽사는 결정적인 변화를 하나 보여준다. 예전 픽사의 주인공들은 과거 작별하되 그것을 후회하진 않았다. 그것은 늘 '선택과 후회'의 문제가 아닌 '시간과 회상'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업>의 프레드릭 역시 아내와의 추억과 작별하고 꼬마와의 모험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코코>에서 헥의 후회는 그 성격이 좀 다르다. 그는 딸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집을 떠나온 것을 후회하며 돌아가고 싶어 한다. 전의 픽사가 과거를 추억하는 것에 그쳤다면, <코코>는 그것을 후회 되돌리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결말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태껏 픽사가 '과거에 대한 애도와 작별'로 마무리를 지었다면, <코코>는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받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물론 미구엘이 "헥터를 용서하지 않더라도 기억하자"는 말을 하지만, 그 이후의 스토리를 보면 헥터는 사실상 용서받았고 과거의 문제도 해결된다.) 작별, 그리고 용서. 이 두 가지 태도는 얼핏 비 보일 수 있나 이들이 관객에게 전달하는 감성은 전혀 다르다. 단순한 '작별'이 해소되지 않은 감정을 그대로 봉합하고 간직한다면, 적극적인 '반성'은 그것을 들추어내고 해소시킨다.  이전의 픽사는 관객들에게 이제 그만 상실을 인정하고 성장하라는 이야기를 부드럽게 건네어 왔다. 때문에 과거는 해결되지 않는 대신 보는 이 마음 한편에 쓰라린 상흔으로 오래 남았던 것이다. 해소하지 않되 간직하는 것. 2017년의 픽사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이러한 감성이다.        



           " 코코가 성취한 것들 "

그러나 픽사새로이 성취한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업>에서 가족(아내와의 추억)이 정리의 대상인 반면 <코코>에서 가족은 본격적으로 대립하는 존재다. 나는 비록 장난스럽게나마 가족을 대립의 대상으로 정면에 내세운 것이 과감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또한 <업>에서의 깨달음이 프레드릭슨의 일방적인 성장에서 온다면, <코코>에서의 깨달음은 미구엘과 가족 간의 쌍방향적인 이해에서 온다.  

게다가 <코코>는 픽사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낭만적인 작품에 속한다. 중남미의 찬란한 색채, 멕시코풍의 음악, 선명한 기타의 선율, 빛을 내는 금잔화, 반복적으로 속삭이는 'remember me'라는 메세지. 이것들은 영화의 감성과 지역적 색채가 버무려질 때 오는 로맨스를 물씬 풍긴다. 제목이 '마마 코코'가 아닌 <코코>라는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증손자 미구엘이 아닌 아버지 헥터가 코코를 부르는 호칭이며, 꿈을 위하여 두고 온 것에 대한 압축적인 상징이다. 픽사가 이 작품을 통하여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어서 꿈을 성취하라'는 것이 아니 '꿈을 향해가는 과정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것이다.



   " 픽사가 여전히 기대되는 이유 "

<코코>에 이르러 픽사는 조금씩 과거를 만회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과거는 아무리 아름다워도 떠나간 시간일 뿐이며 성숙하게 작별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 말하던 그 시절의 픽사를 나는 좀 더 좋아한다. 그러나 이를 두고 섣부른 평가를 내릴 수 없는 것은 픽사가 부지런히 새로운 길을 찾고 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소재를 찾고, 얼마나 아름답게 그것을 그리며,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2017년의 픽사는 보여준다. 새로운 변화가 내심 아쉬우면서도, 계속해서 희망을 갖고 픽사를 지켜보고 싶은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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