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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Aug 16. 2021

[단상] <랑종>의 잔혹함이 우리에게 던지는 이슈

다국적 영화의 윤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스포일러 있어요

영화 <랑종> 스틸컷


<랑종>을 보고서 나홍진이 한국이 아닌 태국을 배경으로 이 영화를 제작하겠다 마음먹은 이유 중에 그 '폭력성과 외설성'도 있나 궁금해졌다.


우리는 국경을 넘은 곳에서의 폭력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둔감해진다.

폭력을 비도덕하게 용인한다는 뜻이 아니다. 멀리 있는 곳의 폭력은 피부로 느끼기 어려울 뿐 아니라, 우리의 도덕 잣대를 그대로 갖다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불명확하기 때문에, 그저 하나의 이야기로 감각되기 쉽다. (이와 관련해서는 허문영 평론가가 '아덴만의 미혹(美惑)'이라는 글에서 이미 훌륭하게 언급한 바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내 나라에서 이렇게 잔인한 영화가 나왔다고 한다면 정색할 사람들도,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한다면 한 발자국 물러나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 된다.

일단 남의 나라 이야기니까 내 기준으로 비판하기 뭐하기도 하고, 저 나라에서는 그래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런 모호성이 마음껏 폭력을 구경할 수 있는 면죄부를 관객에게 부여한다. '문화의 상대성'이라는 건 늘 어느 정도 무책임과 방관의 수단으로 작용하게 된다.


영화 <곡성> 스틸컷

나홍진에게 그런 의도가 없다고 쳐도, <랑종>이 태국 국적이라는 점은 이 영화의 잔혹함에 대한 국내 비판을 잠재우는 효과가 분명히 있었다.  

또 나홍진은 이미 <곡성>에서 '효진' 역을 맡은 김환희 배우의 연기를 두고 그 잔혹성과 관련해 한 차례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이것은 <곡성>이 얼마나 훌륭한 영화인지, 김환희 배우와 그 부모님이 연기에 흔쾌히 수긍했는지와는 또 다른 이야기다) <랑종>이 만일 국내에서 제작되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큰 비판에 직면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랑종>에서 '밍(나릴야 군몽콘켓)'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어쩔 수 없이 이것이 <곡성>의 효진이의 성인 버전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된다. 나홍진의 세계관에서 빙의됐다는 점은 '성적인 행위'를 통해 표출되는데, <랑종>의 밍은 <곡성>의 효진이에게서 뉘앙스로만 제시되었던 성적인 요소들이 폭발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거기다 근친, 배뇨 등 자극적인 요소들이 많고, 이것이 한 캐릭터에게 집중되어 있다. 이 영화가 정말 잔혹하다면 그것은 피와 살이 튀어서가 아니라, 신의 존재를 캐릭터 학대를 통해 증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 연출이 과한 것이었는지 여부는 이 글에서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영화 <랑종>의 스틸컷


그런데 <랑종>에서 정말 중요한 이슈는 따로 있다.

그것은 이 영화가 얼마나 잔인한가, 그것이 우리 사회의 금기를 깨는가, 그런 영화적 표현은 용납가능한가의 문제가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국외에서 제작되었다 하여, 우리가 <랑종>의 잔혹성에 대해 끝까지 따져 묻지 않아도 되는가의 문제이다.

<랑종>을 계기로 국내 제작자가 해외 감독과 손잡고 영화를 만드는 일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랑종>의 밑그림은 나홍진이 그렸다. 우리는 이런 영화를 마주하며 관객으로서 흔들릴 때에, 어떤 윤리적 기준을 붙들어야 하는 걸까. 국내 영화에 들이대던 잣대? 혹은 감독이 속한 국가의 잣대?


다국적의 영화의 윤리를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나는 <랑종>이 이 문제를 우리에게 새롭게 던졌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영화의 마케팅의 90%는 나홍진의 네임 밸류에 기대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랑종>은 <곡성>을 잇는 작품인데, <셔터>의 감독과 힘을 합쳐 태국 공포영화의 감성까지 더했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이 영화의 연출과 수위에 관한 민감한 질문은 대부분 감독인 반종 피산다나쿤에게 던져졌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수위를 그가 온전히 결정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랑종>은 둘의 합작이라고 하면서 홍보를 할 때는 나홍진이, 책임을 물을 때는 반종 피산다나쿤이 나타나는 기이한 광경을 보는 것이 새로운데,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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