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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Aug 31. 2021

<갯마을 차차차>에서 보이는 New Sexy

드라마계의 새로운 대세 될까?


내게 멜로드라마는 콘텐츠 그 자체보다 동시대 여자들의 욕망을 엿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그런 측면에서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은 드라마가 있어 얼른 들고왔다.


tvN에서 방영하는 <갯마을 차차차>에 등장하는 여주·남자의 구도는 여태 우리가 멜로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보아오던 그것과 조금 다르다.

먼저 혜진(신민아)은 34살의 치과의사이다. 그녀는 자기 관리도 잘하고, 가끔씩 기분 전환을 위해 (할인코드를 야무지게 챙겨서) 명품 구두도 산다. 간섭받는 것을 싫어하고 대단히 정의롭지도 않지만, 병원 원장이 과잉진료를 하라는 압박을 가하자 "히포크라테스 선서도 까먹었냐"며 병원을 뛰쳐나올 정도의 소신과 성질머리는 있다. 그녀는 요새의 기준에서 볼 때 능력이 뒷받침되어서 남부러울 것 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멋진 여자다.


하지만 우연히 방문한 바닷마을 '공진'에서는 바보가 되고 만다.

자잘한 사고가 겹치며 좌충우돌하는 동안, 혜진은 도시에서의 멋진 모습과 달리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댄다. 말하자면 '공진'은 혜진으로 하여금 (도시에서 통하던 학벌, 직업 등을 내려놓고) 그녀가 가진 순수한 생존력을 테스트하는 장소이다.


그리고 이 때에 두식(김선호)이 나타난다.

마을의 '반장'인 그는 마을의 사정에 빠삭하고, 아저씨부터 할머니들까지 동네 사람들을 정스럽게 살피며, 어떤 문제 상황에서도 해결책을 척척 내놓는다. 그는 이 바닷마을의 왕성한 생명력을 그대로 품고 있는 매력있는 청년이다.


일단 여기까지만 해도 여태 멜로드라마에서의 남녀 구도의 역전이라고 볼 수 있다.

여태 멜로에서는 남자가 모든 사회적 성취를 거둔 상태에서 우연히 시골에 갔다가 자연의 순박함을 닮은 풋풋한 여자를 만나, 성공가도를 달리느라 미처 찾지 못한 순수한 사랑을 찾는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이때 여성 시청자들의 욕망은 그런 남성을 만나 그의 성취를 자신의 것으로 간접 소유하는데 있었고, 쾌감은 그것이 마침내 달성되는 포인트에서 왔다. 그러나 <갯마을 차차차>에는 이런 구도가 거꾸로 형성되어 있다.


이 드라마에서 두식의 캐릭터도 흥미롭다.

그를 단순히 도시 남자와 대비되는 '바닷마을 사나이'의 카테고리에 넣는 것은 너무 투박한 분류일 것이다. 그의 진정한 매력은 그가 순박한 시골청년이라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실전을 통해 인생살이에 통달한 어른이라는 데 있다. 그가 가진 삶의 지혜와 튼튼한 생존력은 어른 남성이 갖는 안정감을 뿜어낸다. 말하자면 책 속의 지식이 아니라 삶에 해박하다는 것이 그의 매력이다.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혜진의 상태이다.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와 감정적인 교류가 없는 혜진은 심리적인 고아와 같은 상태이다. 물론 그렇다고 극중에서 그녀가 어리광이 심하다거나 외로움을 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혜진의 배경이, 아이처럼 마냥 서투른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주는 두식의 모습과 희미하게 공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갯마을 차차차>에서 2021년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새로운 이상형, New Sexy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능력이 좋을 필요는 없지만(내가 있으니까) 건강하고 단단한 생명력이 있고, 사회에 익숙할 뿐 아직 삶에는 서투른 내가 허둥댈 때에 부드럽게 길을 알려줄 수 있는 남자. 


물론 이때 그는 자신의 매력을 몰라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마도로스 같은 남자의 매력이다아"를 자기 입으로 외치는 대참사는 없어야 한다. 이것은 마치 남자의 경우로 치환했을 때, 소년만화의 어여쁜 여주가 자기 매력에 무지하거나 적당히 여우같은 것은 괜찮으나, 자기 매력을 전면에 내세워서 무기처럼 마구 휘두르면 독자들의 텐션이 다운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며, 전통적인 남녀 구도가 역전된 드라마가 많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여태 그런 작품이 딱히 없어서 조금 의아하기도 했다. (내가 이런 드라마를 개인적으로 선호한다는 뜻은 아님)

하지만 앞으로는 능력있는 여주와 그녀에게 없는 무언가를 가진 남주가 등장하는 드라마는 점점 더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와중에 등장한 <갯마을 차차차>는 내게 새로운 변화를 암시하는 하나의 신호탄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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