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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홍수정 Feb 19. 2022

널 사랑해. 하지만 넌 나한테 안 돼 <리코리쉬 피자>

<리코리쉬 피자> 스틸컷

'힘의 역학관계'를 빼고 PTA를 논하지 말 것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를 보며, 사랑과 우정 사이에 끼어있는 그 미묘한 권력관계의 꿈틀거림을 보지 못한다면 사실상 영화를 보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보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친 것이죠.


그의 영화에서는 단 두 명의 인간이 만나도, 힘의 논리에 따라 강자와 약자가 나누어집니다. 강자는 약자를 (상징적 의미에서) 아그작아그작 씹어 삼킵니다. 그러나 약자라고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아요. 거부하고, 반항하고, 전장을 바꿔가며 그들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전쟁을 계속하죠. 이들 사이의 위계, 역학관계는 그렇게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어가며 꿈틀거리고 인물들을 집어삼켰다가 뱉어냅니다. 어제의 약자가 오늘의 강자가 되어 상대의 목을 물어뜯는 광경. 이렇게 말한다면 전쟁영화를 연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PTA)의 영화에서는 사랑이 넘치는 연인 관계도, 애틋한 사제 관계도 모두 이런 '전쟁'을 벌이죠. 그리고 그들이 엎치락뒤치락 거리는 모습 뒤로 당대 미국 사회의 풍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는 어느 때는 1970년대로, 어느 때는 50년대로, 또 어떤 순간에는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없는 모호한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PTA의 눈을 통해 미국 사회를 건너다보는 것이지요.


이번에도 역시나 PTA는 예민하고 긴장감 넘치는 세계 안에 우리를 데려다 놓습니다. 그런데 그곳이 학교라는 점이 독특하죠. 자그마치 1973년의 미국 학교 말입니다. PTA가 여태 종교 집단, 황무지처럼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곳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것과는 대조적이네요. 비교적 말랑말랑하죠? 그러나 <리코리쉬 피자>는 단순하거나, 유약하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은 20대 알라나(알라나 하임)와 그녀를 좋아하는 10대 소년 개리(쿠퍼 호프만).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변모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리코리쉬 피자>를 이해하는 첫 번째 관문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이 영화는 끝내주고, PTA는 PTA라는 것 말입니다.

<리코리쉬 피자>는 장면마다 잠재된 것이 매우 풍부한 영화인데, 짧은 필력으로 모두 언급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첫 장면부터 이야기해 보도록 하죠.


※ 아래부터 스포일러가 있어요

<리코리쉬 피자> 예고편 캡처

시작과 동시에 요동치는 둘의 관계


알라나가 걸어옵니다.

그녀 위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과 낭만적인 음악.

그녀의 등장을 환상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장치들이죠.


특이한 광경이네요.

모래바람이 연상될 정도로 거칠고 서걱거리는 PTA의 세계에서 이렇게 촉촉한 시작이라니. 그의 필모에서 이런 영화가 또 있었을까 생각해 보니 <부기나이트>(1999)가 떠오릅니다. 포르노 스타의 일대기를 다루며, 섹스 산업을 통해 당대 미국 사회를 들여다본 작품이죠. 이렇게 예상할 수 있겠네요. <리코리쉬 피자> 역시 성(姓)을 둘러싼 자본과 권력의 역학 관계를 건드릴 것이라고.


알라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의 졸업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개리가 다가와 추근거려요. 함께 데이트를 하고 싶다며. 이미 20대인 알라나는 15살 개리를 가볍게 무시하지만, 이런 상황이 마냥 싫지 않은 눈치입니다. 재미있다 느끼는 것이죠. 그녀는 개리를 적당히 구박하며 도발하고 있네요.

그들 사이의 투닥거림이 하나의 롱테이크로 이어지는데, 이 장면의 흐름이 매우 좋습니다. 몇 분의 대화 안에서 우리는 그들이 처음 만나고, 줄다리기를 하며, 서로에게 얽혀가는 과정을 보게 되죠.


마침내 대화가 끝나고 알라나는 싱긋 웃으며 돌아섭니다. 이때까지 우리에게 알라나는 '누군가의 여신'으로 보여요. 하지만 다음 순간, 사진 기사가 알라나를 희롱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굳은 표정의 알라나. 그 짧은 순간에 알라나는 누군가의 여신에서 희롱의 대상으로 전환되어 버립니다. 이런 반전은 여느 영화에서 잘 등장하지 않기에 갑작스럽고도 날카롭게 느껴지죠.

어찌 보면 이 순간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 <리코리쉬 피자>는 처음부터 알라나를 환상적으로 등장시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짧은 순간은 매우 중요한데, 영화의 테마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죠. 매력적인 그녀는 누군가에게는 첫사랑, 누군가에게는 희롱의 대상인데 이 두 가지는 서로 분리되지 않아요. PTA는 우리에게 그 모두를 똑똑히 보라고 단호히 요청합니다.


알라나와 개리는 처음으로 함께 밥을 먹습니다. 이때 알라나는 개리가 자신보다 훨씬 돈을 잘 번다는 것을 알게 돼요. 부러워하는 알라나.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개리는 자신이 미성년자라 이동에 제약이 있음을 깨닫고, 알라나를 매니저로 고용하죠. 둘은 함께 비행기를 타는데, 다른 남녀가 번갈아 찾아와서 그들에게 추파를 날립니다.


자, 여기까지.

이 짧은 순간에 둘의 위치가 얼마나 많이 변화했는지 아시겠죠. 그들의 관계는 나이, 돈, 신분, 매력을 이유로 끊임없이 엎치락뒤치락합니다. 때로는 알라나가, 때로는 개리가 상대를 부러워하며 더 갈구하는 것이지요.


가장 이상하고도 중요한 장면 - 경찰서에 끌려가는 개리


개리는 '물침대'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프로모션을 위해 여자 모델에게 섹시한 의상을 입히고, 물침대를 홍보하게 하죠. 그 장소에 알라나가 놀러 오는데, 알라나는 모델의 섹시한 의상에 관심을 보입니다.


바로 다음 순간,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장면이 등장합니다. 개리는 갑자기 경찰에게 난폭하게 끌려가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습니다. 곧 오해가 풀리고, 어안이 벙벙한 채 경찰서에 앉아있는 개리를 알라나가 밖으로 이끌어냅니다. 둘은 서로를 끌어안아요.

이 장면이 이상한 이유는, 영화의 전개에 전혀 필요 없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개리의 경찰서 방문은 둘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해요. 그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난폭하게' 치고 들어오는 이 장면은 영화의 전개를 방해하고 끊어놓습니다.



잠시 경찰이 들이닥친 순간을 되짚어 볼까요?

경찰은 알라나가 섹시한 여자 모델에게 관심을 보이는 순간에 들이닥칩니다. 이때 모델은 사실상 물침대보다는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어필하고 있죠. 미성년자임에도 개리는 성을 파는데 익숙해 보여요, 그리고 알라나가 거기에 관심을 보이는 순간, 경찰이 난입해 개리를 제압하지요.


그러니까 이 순간에 영화는 알라나가 개리의 '성을 파는' 일에 개입되지 못하도록 저지하고 있습니다. 그곳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죠. 이것은 개리에 대한 영화의 경고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너는 살인자"라는 경찰의 말 역시 (정확한 의미가 중요하기보다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개리는 혼자의 힘으로는 경찰서를 나오지 못하고, 알라나로부터 "나오라"는 허락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알라나의 손길이 그를 구조하고, 영화는 다시 진행되기 시작하죠.


이 장면은 둘의 관계에 영화가 난입하는 가장 과격한 장면인 동시에, 섹스가 산업에 이용되는 것에 대한 PTA의 태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장면이지요.

하지만 이런 경고도 무색하게, 개리는 그 후에도 계속해서 알라나의 성적인 매력을 사업에 이용하려고 하고, 이것은 트러블을 일으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마저 이야기하도록 하죠.

   

직원에서 사업 파트너로


개리는 손님의 전화를 받는 알라나에게 "섹시하게" 응대할 것을 주문합니다. 그러자 거기 반감을 느낀 알라나가 선을 넘게 행동하며 개리를 도발하죠. '섹시한' 통화로 물침대를 판 알라나는 전화를 끊고 나서 당당하게 말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난 누구보다 섹시해. 당장 침대 프레임을 구해와."


이 장면에서 둘의 관계의 지형은 순식간에 변화합니다.

먼저 개리는 사장으로서 직원인 알라나에게 지시를 내리는데, 알라나는 개리의 주문을 자기 방식대로 소화해 버립니다. 이때 개리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지죠. 그리고 성과를 낸 알라나는 개리에게 역으로 지시를 내립니다("프레임을 구해와"). 짧은 순간에 둘 사이의 역학 관계는 역전됩니다.


이 장면은 PTA가 얼마나 디테일하고도 효율적으로 관계를 묘사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이와 비슷한 장면이 <팬텀 스레드>(2018)에도 등장하는데요, 늘 연인의 기준에 충족되지 못해 주눅 들어 있던 여자는, 어느 순간 연인의 판타지를 역으로 재현하며 그를 압도하는 동시에 완벽히 제압해버리죠. <팬텀 스레드>의 마지막 장면과 흐름이 상당히 유사하다고 느껴지네요.


그런 의미에서 함께 언급하고 싶은 장면이 있습니다.

<리코리쉬 피자>에는 요상한 가게 사장이 등장해요. 그는 일본 요리 가게를 운영하며 일본인을 아내로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꾸만 일본인 아내와 대화할 때 우스꽝스러운 발음과 발성으로 말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일본인 아내는 (그렇게 전달하지 않아도) 정상적인 영어를 모두 알아듣는 듯 보이고, 경영에 필요한 조언을 합니다(광고에 요리에 대한 언급을 추가해라, 물침대 전단지를 가게에 놓지 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자리는 누군가로 간편하게 교체되고, 사장은 자신의 아내가 이쁘다고 자랑할 뿐 그다지 존중하지 않습니다.

이 장면은 동양 문화의 아름다움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면서, 그에 대한 존중은 없는 미국의 태도를 냉소하고 있습니다. 사장이 자신의 아내를 배려한답시고 하는 말은 통역이 아니라, 일본식 영어에 대한 희화화로 보일 지경이죠.


그리고 이런 태도는 세상이 알라나를 대하는 태도와 일치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알라나의 성적인 매력에 관심을 보일 뿐, 그녀의 능력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조차 가끔 등장해 옷차림을 지적할 뿐이고, 엘라나를 칭찬하는 유일한 남자는 게이입니다. <리코리쉬 피자>에 이르러 PTA는 과거의 미국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던 시선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상기시키죠.


일본 가게 사장 역시 알라나를 개리의 여자친구쯤으로 보는데, 이때 알라나는 굳이 스스로를 "비즈니스 파트너"라고 소개하죠. 그러니까 영화에는 두 가지 중요한 서사의 축이 등장하는데요, 하나는 알라나와 개리의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알라나가 여성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과정입니다. 시장 후보로부터 "알라나가 오고 나서 일이 더 편해졌다"는 칭찬을 받았을 때 알라나의 미소를 기억하시죠? 하지만 그녀가 스스로를 입증하는 과정이 그리 녹록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뒷부분에서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글은 유독 길이가 긴데요, 그래서 오늘과 내일에 1, 2부로 나눠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내일은 영화의 후반부를 되짚으며,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하도록 하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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